전북 카지노 황제 비참한 말로

2025.11.27 08:37:08 호수 1559호

전일저축은행 그 남자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전북지역 최대 서민금융기관이었던 전일저축은행이 파산으로 사라진 지 10여년이 지났다. 원인 제공자인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겸 전 라마다 프라자 호텔 제주 카지노 회장 은인표는 거물을 꿈꿨다. 그의 심복으로 불린 정모씨가 카지노를 장악하기 전까지 말이다.



은인표는 2000억원대 부실·불법 대출, 교도관 뇌물, 연예기획사 특혜 대출로 징역 7년6개월형이 확정된 뒤 복역하다가 지난 2019년 출소했다. 그 이후에는 그를 둘러싸고 ‘법인 서류 위조’와 ‘자격 도용’, 카지노 영업권을 둘러싼 ‘주주 사칭’ 의혹까지 새로 불거졌다.

정치권과
주먹 세계

전일저축은행(이하 전일저축) 사태는 ‘한 사람의 탐욕과 감독 부실이 결합할 때, 서민금융이 어떻게 사금고로 전락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전형적인 표본이다. 은인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 금융과 정치권 등에 로비를 통해 카지노 왕국을 설립하기를 꿈꾼 남자로 해석된다.

전일저축은 한때 자산 1조2000억원 규모를 자랑하던 전북지역의 최대 저축은행이었다. 그러다 2009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1.13%까지 추락하며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후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부실 저축은행 정리 방식으로 ‘가교저축은행(브리지 뱅크)’ 모델을 택한다. 전일저축의 자산과 부채 상당 부분을 새로 만든 예나래저축은행으로 넘기는 계약이전 방식이었다.


2010년 4월엔 예금보험공사가 전일저축 일부 자산과 5000만원 이하 예금을 예나래저축은행으로 계약 이전하고 영업을 재개했다. 예나래저축 영업 개시 첫날인 그해 4월12일엔 6만여명에 달하는 5000만원 이하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창구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5000만원 초과 예금 및 후순위채 투자자들의 돈은 파산재단으로 넘어가 ‘언제, 얼마나 돌려받을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았다.

2011년 매체에 따르면 전일저축은행에 예금자 보호 한도(5000만원)를 초과해 돈을 맡긴 고객은 3550명, 후순위채 피해액은 162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전일저축은 더 이상 ‘서민 금융기관’이 아니라, 누군가의 대담한 도박이 남긴 잿더미로 남겨졌다.

‘연예계·카지노 사업가’였던 은인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금융권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그는 ‘연예계 대부’이자 제주도 호텔·카지노 사업을 벌이던 사업가로 유명세를 탔다. 호텔 카지노를 인수·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전일저축을 개인금고처럼 활용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300억 불법대출 179억 기획사 특혜
징역 7년6개월 살고 야인으로 지내

은인표는 2006년 6~8월 사이 호텔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업체 두 곳의 명의를 빌려 전일저축에서 총 189억여원을 대출받으면서 차명 대출 혐의를 받게 됐다. 현행 상호저축은행법은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및 우회(차명) 대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주주인 은인표는 자신과 관련된 리조트·카지노 법인을 위해 은행 자금을 동원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연예계 대부 은인표의 저축은행 인수자금은 어디서 나왔는가”라는 의문은, 결국 ‘저축은행 안에서 나왔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들어 수사망이 본격적으로 좁혀지면서 검찰은 ▲2006년 제주 리조트 인수 과정에서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전일저축에서 300억원대 불법 대출을 일으켜 은행에 손해를 끼친 혐의 ▲2008~2011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은인표가 편의 제공 대가로 교도관에게 약 8900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자신이 소유한 연예기획사(외주 제작사 등)에 적정 담보나 심사 없이 불법 대출을 지시해 전일저축에 179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은인표에게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등에 징역 4년, 뇌물공여에 징역 2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에 징역 3년을 각각 선고, 총합 중형을 내렸다.

항소심에서는 일부 불법 대출 금액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단이 내려져 유죄 인정액이 약 300억원대로 줄었지만, 전체 형량은 징역 7년6개월로 정리됐다.


이후 2016년 5월24일, 대법원 3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 및 법리 오해가 없다”며 이 판결을 확정한다. 이렇게 전일저축을 무너뜨린 은인표에 대한 형사 책임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중국에
먹히다

은인표를 둘러싼 정치·종교·정관계 인맥에 대한 로비 의혹도 제기됐다.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파렴치한 금융사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인표는 제주지역 유력 인사와 정·관계, 그리고 종교계(특히 일부 불교계 인사)를 연결고리로 삼아 사업 확장과 수사 국면 타개를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2008년 사기 혐의로 수감된 이후, 보석과 석방을 위해 수십억원대 변호사 비용을 쓰고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그가 불교계 고위 인사들을 매개로 정관계 인맥을 쌓아왔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로비 자금 규모나 최종 법적 책임까지 모두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은 ‘지역 저축은행이 정·관·종교권력과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전일저축 사태의 진짜 피해자는 은인표도, 금융당국도 아니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겼던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들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5000만원) 이하 예금자 약 6만명은 예나래저축은행으로 계약 이전돼 원리금을 일정 부분 보호받았다.

전일저축 피해자들은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였지만, 파산재단 자산 및 배당률을 감안하면 원금 회수율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했다. 이는 2011년 이후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전반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전국 24개 저축은행에서 2만3000여명의 투자자가 8170억원 규모의 불완전판매 피해를 입었지만, 파산재단을 통한 실제 보상은 평균 배당률 28.2%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이 있다. 전일저축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은행은 사라졌고, 대주주는 형을 살았지만, 피해자들의 상처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은인표는 2019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이름은 또 다른 사건에서 다시 등장했다.


출소 후
2라운드

2022년 11월경 과거 카지노를 운영했던 A 법인과 관련해 자격모용사문서작성, 자격모용사문서행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2022년 3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은인표는 A 법인의 등기임원·주주가 아님에도 A 법인의 주주명부·인감신고서·위임장 등을 위조해 법원등기소에 변경등기신청서를 제출, 등기 변경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A 법인의 대표 정씨는 과거 은인표의 동업자로 알려졌다.

이후 스스로를 A 법인의 사내이사로 등재하고 법인명까지 바꾼 뒤, 실제 주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은 “대표할 권리나 자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A 법인 실제 주주들은 은인표를 고소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가 수사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이미 저축은행 불법 대출로 중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인물이, 타인의 자격을 도용해 법인 지배권을 노린 혐의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이다.

지인들은 “은인표가 징역을 살고 있을 때 정씨가 대신 카지노를 관리했는데, 정씨가 카지노를 중국 사업가에게 팔아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호텔명이 ‘더케이 제주호텔’로 바뀐 라마다 프라자 호텔 카지노의 경우 중국인 1명이 지난 2014년 하순쯤 30% 지분을 매입하면서 2대 주주가 됐다. 제보자는 “은인표가 이 사실을 알고 정씨를 죽이겠다고 찾아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일저축 사태와 은인표 사건은 대주주 견제 장치의 실효성과 가교 저축은행·파산 정리 방식 한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상호저축은행법은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하지만, 은인표는 차명과 특수관계인을 동원해 300억원대 대출을 끌어냈다.

감독 당국은 왜 이를 제때 포착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예나래저축은행 설립과 계약 이전은 5000만원 이하 예금자를 신속히 보호하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들의 피해는 상당 부분 방치했다.

출소 후 법인 서류 위조하고 자격 도용
재조명되는 전일저축 사건···당국 주시

출소 이후 재범 위험 관리도 주목된다. 중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금융사범이 다시 법인 서류 위조와 자격 도용 사건에 연루된 것은, 금융·법인 등기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드러낸다. 상장·비상장 여부를 막론하고, 일정 규모 이상 법인에 대한 ‘실질 지배자’ 등록·공시를 의무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은인표는 이미 형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언론과 사법 기록에 이름을 깊이 새긴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일저축 붕괴는 단지 한 대주주의 일탈이 아닌 감독기관의 사전 경고 시스템 실패, 정·관·종교 권력과 결탁한 로비 구조, 가교 저축은행·파산 정리 제도의 한계, 서민·투자자 보호 체계의 허술함이 낳은 결과다.

한편, 한국금융연구원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일저축은행 파산배당률과 실제 회수율은 약 25%로 알려졌다. 지역저축은행 정리 과정에서 ‘찾아가지 않은(미수령) 파산배당금 및 예금보험금’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있다(6만1676명, 약 139억원).

5000만원을 초과한 예금자 및 후순위채 투자자들은 파산재단을 통한 배당절차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다. 배당률이 낮았던 만큼 실질 원금 회수율은 매우 낮고, 배당이 완료되지 않은 재단은 여전히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특히 전북지역이라는 지역성·저축은행이라는 영업 구조가 결합돼 피해자들의 집단 구제 및 실질 배당 시행에 있어 압박이 크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1년 2월 부산저축은행 등의 여러 상호저축은행이 집단으로 영업정지된 사건이 있다. 이후 대주주의 비리와 마감 시간 후 VIP 고객들에 대한 사전 인출 등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주된 원인은 부동산 등 리스크가 큰 사업들에 대해 제대로 된 심사 과정 없이 캄보디아 개발사업(캄코시티) 등에 프로젝트 파이낸스 형태로 무분별하게 불법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부실채권을 떠안은 저축은행의 사업 운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피해는
진행형

‘서민 금융기관’으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중심의 자금 유출이 문제가 됐던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 제도적 책임과 감독 당국의 사후관리도 중요한 쟁점이다. 전일저축의 해체·파산 과정에서 예금자 보호는 제도상 일정 부분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임정빈 판사는 자격모용사문서작성 및 동행사 혐의로 기소된 은인표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임 판사는 “피고인은 누범 기간 중 자숙하지 않고 재차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smk1@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