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클락(Clark) 지역에서 한국인 투자자들 간의 법적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인 투자자들의 150억원대 자금이 투입된 제이비 크레스타(JB Cresta Corporation)와 자회사 스카이 블루 골프 앤드 리조트(Sky Blue Golf and Resort Corporation)의 지분과 핵심 자산이 한 사람에 의해 체계적으로 탈취됐다는 것이다.
필리핀 고위층 관계자들과 수십년간 인맥을 형성한 피의자 정모씨는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인 투자자들을 손쉽게 기망했다. 필리핀 법원조차 “즉각 개입하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며 단순 경영권 분쟁을 넘어 단계적으로 설계된 조직적 경제범죄로 설명했다.
모회사
지분 강탈
법률적으로도 이 사건은 지분 탈취, 문서위조, 배임, 무권한 처분 행위, SEC 규정 위반 등 복수의 중대 범죄 요건을 동시 충족한다.
한국 투자자들은 2019년부터 총 104억원을 투자해 제이비 크레스타(JBC)의 법적·실질적 최대 지배주주였다. 계약에 따라 지분도 정상적으로 배정됐고, 각종 투자금도 정당하게 입금됐다. 정모씨는 투자자들에게 JBC의 자회사인 스카이 블루 골프 앤 리조트의 지분 2%만 요구했고, 투자자들은 이를 수락했다.
이후 정씨는 필리핀 국회의원 등 현지인 4명을 리조트에 이사로 등재하고, JBC의 대표이사와 이사진을 사임 등기한 후 지분을 모두 차지했다.
정씨는 스카이 블루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이용해 사실상 JBC와 스카이 블루 두 회사를 동시에 지배했다. 초기 지분은 2%에 불과했으나, 그는 주총에서 “경영권 없으면 못한다” “각서 써라. 자산은 내가 다 책임진다” 등 강압적 발언을 이어가며 실질적으로 경영 전권을 요구했다.
이는 명백히 위법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지분 조작과 회사 장악을 강행한 발언으로, 이후에 발생한 배임·사기·문서위조 행위의 고의성을 뒷받침한다.
정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장기간 활동하며 가족과 친인척, 측근들을 조직적으로 포진시켜 범죄 구조를 구축했다. 며느리·아내·직원 등이 지분 수령자 역할을 맡았고, 이들은 나중에 조작된 주주명부에 대주주로 등장한다. 범행의 첫 단계는 JBC 지분을 사실상 강탈하는 주주명부(GIS) 조작이었다.
피고발인들은 합법적 지배주주 63.98%를 주주명부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2007년 설립 당시 발기인 명단으로 회귀시키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도둑맞기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
조작 수법은 정교했다. 합법적 주주 전원을 삭제하고, 이미 지분을 처분한 과거 발기인 6명을 ‘부활’시켜 등록했다. 이어 회사 명의 자기주식을 75.02% 등재해 주총 성원이 불가능한 허위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 동일 기준일의 GIS를 여러 차례 제출하는 소급 패턴을 사용해 시점을 교란했고, 재조작(B 시리즈) 단계에서 첫 조작(A 시리즈)의 실수를 덮기 위해 다시 주주명부를 소급 조작했다. 최종적으로 정씨의 가족·직원·측근 명의로 지분을 분산해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정씨의 며느리인 현지인 S씨는 조작 전 보유주가 1주에서 조작 후 1378주(27.56%)로 급등하면서 비정상적 대주주로 등장했다. 이는 범죄이익이 고스란히 일가로 집중된 명백한 증거다.
필리핀 리조트 100억대 투자금 탈취 의혹
정씨일가 조직적 침탈 정황···현지 재판 중
정씨 일당은 2024년 11월4일 스카이 블루 주총에서 골프장·클럽하우스·부지를 230억원에 매각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모회사 JBC의 대주주(한국 투자자)는 반대했으나 불과 4일 뒤인 11월8일, 어떤 통지도 없이 주총을 강행해 매각을 승인했다.
필리핀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주요 자산 매각에는 주주 2/3의 특별 결의가 필요하고, 99.9%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 JBC 주총의 사전 결의가 필요하다. 정씨를 포함한 피고발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회사 단독으로 매각을 강행했다. 이는 배임 및 무권대리의 전형적 구성요건이다.
이 밖에 정씨에게 추가 피해를 입은 투자자도 있다. 한국인 투자자 함모씨와 김모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협약에 따라 스카이 블루의 증자에 참여했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 송금 내역은 스카이 블루 법인통장으로 확인되며, 일부는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입금됐다.

그러나 이후 정씨는 2년 이상 증자를 등록하지 않았고 투자자 지분도 SEC에 등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조작된 주주명부에서도 이들을 고의로 배제했다. 이는 투자금을 받은 뒤 지분 발행 없이 은폐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배임에 해당한다.
정씨 일당은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주주명부를 위조했다. GIS만 최소 8회 이상 조작, 존재하지 않은 이사회 회의록 작성, 이사진을 친인척으로 교체, 발기인 명단을 허위로 되살리는 등으로 지분 구조를 조작했다. 필리핀 SEC에 제출된 문서가 모두 허위였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기관을 기망한 중대 경제범죄로 해석된다.
필리핀 현직 국회의원이 범행 구조에 편입된 점에서, 이는 조직적이며 고도의 계획성을 띤 범죄임이 명확하다. 특히 허위 GIS 제출은 필리핀에서 최상급 중형에 해당하며, 조직적 공모가 입증될 경우 가중처벌 규정이 적용된다.
가족 동원
정치인까지
정씨 일당의 행위는 단순한 경영 분쟁이나 해석의 문제로 포장될 수 없다. 이는 투자를 미끼로 한 사기, 회사 지분의 조직적 탈취, 자산의 불법 매각, 공문서 위조, 정치권 유착까지 모두 결합된 완성된 범죄 구조다. 지배주주 63.98%가 삭제된 순간 이미 범죄는 시작됐고, 그 이후 벌어진 모든 행위는 배임과 절도, 사기의 연속이다.
범행 과정은 치밀했고, 관련자들의 역할 분담은 명확하며, 피해 규모는 수백억 원대에 달한다.
정씨는 2022년 무렵부터 주주명부를 의도적으로 조작해 이들의 존재를 회사 공적 기록에서 통째로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필리핀 회사법에서 가장 무겁게 다루는 범죄 중 하나인 ‘허위 회사 기록 작성’에 해당한다. 동일 기준일의 GIS를 여러 차례 다른 내용으로 제출한 소급 조작 방식은 범의가 명백하며, 판례상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GIS 제출은 형사 처벌의 핵심 근거로 인정돼 왔다.
여기에 더해 정씨는 2007년 발기인 명단을 다시 끌어와 당시 연락이 두절된 인물까지 포함시키는 조작을 감행했다. 이는 필리핀 형법 제161조에서 금지하는 ‘허위 회사문서 제출’에 해당하며, 필리핀 SEC는 이런 형태의 허위 제출을 조직적 경제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JBC가 보유하던 75% 이상의 자기 주식을 아내·며느리·측근 명의로 이전한 행위 역시 ‘자기 거래’로 간주되며, 이는 이사·대표이사에게 금지된 행위로 형사 책임까지 발생할 수 있다. 자기 주식 매각 과정에 이사회의 정식 승인이나 주주 동의가 없었다는 점은 배임과 자산 편취 행위를 동시에 구성한다.
스카이 블루 핵심 자산 매각 시도는 절차 위반의 총집합체다. 2024년 11월 8일 정씨 측은 한국 투자자에게 아무런 통지 없이 골프장 18홀, 클럽하우스, 대규모 부지, 장비 일체, 향후 개발 사업권까지 포함한 약 230억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일방적으로 승인했다.
이는 회사법상 ‘통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주주총회 결의의 적법성을 완전히 상실시키는 중대 위법 행위다.
증자한다며 돈만 받고 미등재
GIS·회의록·이사회 결의 위조
매각 상대가 한국의 모 자산운용사라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해당 부지가 필리핀 국유지로 BCDA 승인 없이는 어떤 처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BCDA 승인 절차를 고의로 생략한 것은 명백한 무권한 처분 행위며, ‘본질적으로 무효’로 규정한다.
필리핀 법원의 개입 그 자체가 이 사건의 심각함을 증명한다.
필리핀 법원은 지난해 9월26일, 단 한 차례의 정식 심리도 없이 72시간 임시 가처분명령을 발령했다. 이는 필리핀 사법부가 극도로 중대한 위험이 확인되었을 때만 사용하는 비상 조치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투자금 전체가 무의미해질 위험이 있으며, 매각 절차가 비정상적으로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법원이 정씨 측의 행위가 정상적 경영권 행사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형사 고소는 정씨의 범죄 의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고소장에 따르면 정씨는 스카이 블루 지분을 배정한다는 명목으로 약 46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발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 구성요건에 정확히 부합한다.
투자 유치 당시부터 이행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이는 ‘고의 기망행위’로 간주되며, 형량은 일반 사기보다 훨씬 무겁다. 특히 허위 주주명부 이메일 송부는 문서위조 및 위조문서 행사죄 성립의 핵심 근거가 된다.
한편, 정씨의 집안 배경을 보고 투자한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그의 아버지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24년 동안 기부활동과 장학사업에 헌신해 왔다. 서울대에 3차례 신양학술정보관을 기부한 것을 포함, 약 155억원을 기부한 인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1998년 신양문화재단 설립 이래 지난 12년간 장학금과 연구비 등을 지원했다. 특히 정 이사장은 모교인 서울대에도 신양학술정보관 건립, 난치병 연구기금, 의대 연구기금, 교수 초빙 기금 등을 지원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100회에 걸쳐 약 133억원을 기부했다.
장학재단
이사장?
정씨의 아버지인 정 전 이사장은 ‘신양 할아버지’란 애칭으로 불리며 서울대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52년 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전 이사장은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고무의 국산화 등 우리나라 산업화에 이바지해 온 인물이다. 서울대에는 신양학술정보관 1,2,3호관을 건립하는 등 총 155억 원 상당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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