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개편’ 10년 표류, 왜?

  • 서진 기자
2026.01.26 14:23:57 호수 1568호

정부·협회 변덕 수험생들 한숨만

[일요시시 취재1팀] 서진 기자 = 당초 2027년 시행을 전제로 논의돼 온 건축사 자격시험 개편이 2032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수험생과 학계의 혼란은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10년 넘게 ‘국제기준에 맞춘 개편’을 강조해 온 협회와 정부가 정작 제도 정비에는 손을 놓은 채 자격시험 시행 시점만 늦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겉으로는 수험생과 정부 간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무 등록 단체인 서울 대한건축사협회와 대안 단체, 정부 사이의 입장 차이가 누적되면서 제도 논의가 장기 표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체는 수험생과 예비 건축사들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 연기?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14일 대한건축사협회(이하 대건협)에서 ‘건축사 자격제도 개편 방안 공청회’를 열고, 건축사 자격시험과 실무 수련 제도 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국토부는 올해 중 개편안에 대한 심의를 마무리하고 관계 법령 정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29년부터 개편 내용을 단계적으로 고지하고 2030년에 출제 기준을 마련한 뒤 2032년부터 개편된 건축사 자격시험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2027년 시행을 목표로 해 온 일정에서 5년가량 늦춰진 셈이다.

국토부는 “제도 개편은 수험생과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이라며 “충분한 의견수렴과 검토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필기시험 도입 ▲시험 횟수 조정 ▲과목 합격 유효기간 단축 ▲실무수련 항목 세분화 등이다.


현행 건축사 시험은 연 2회 시행되며, 대지계획·건축설계1·건축설계2 등 3개 과목으로 구성된 실기 중심 시험이다. 과목별 합격제며, 각 과목의 합격 기준은 5년 내 5회 제한이 있다.

개편안이 적용되면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분리된다. 신설 추가된 필기시험은 객관식 다지선다형, 서술형 문제가 포함된다. 시험 횟수는 2027년 연 1회로 준다. 과목 합격 유효기간도 2032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며, 3회로 제한된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시험 구조를 단순화하고 관리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시험 방식도 도마에 위에 올랐다. 컴퓨터 기반 시험(CBT) 도입은 10여년 전부터 업계 안팎에서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이번 개편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시험 횟수와 과목 구성에는 변화가 있지만, 설계 중심의 평가 방식 자체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10년 넘게 개편을 논의했지만 시험 방식은 사실상 이전과 동일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미국 건축사 자격시험의 경우 1997년 컴퓨터 기반 시험으로 전환되며 연필 시험 방식이 폐지됐다.

당초 2027년 시행 전제 논의
2032년으로 미뤄질 가능성↑

국토부는 시험 개편과 함께 실무 수련 제도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대건협 건축사등록원에 따르면, 현행 제도는 5년제 이상 건축학 교육을 이수한 뒤 건축사사무소에서 감독건축사의 지도·감독 아래 최소 3년(비인증 과정은 4년) 이상의 실무 수련을 완료해야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국토부는 실무 수련 항목을 현행 16개에서 20개로 늘리고, 세부 항목을 42개로 세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수련 내용 기록과 관리 책임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실무 수련은 반드시 건축사사무소에서만 가능하지만, 사무소별 교육 여건과 감독 역량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A 대표는 “제도의 허점을 국가가 보완하기보다 부담을 민간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개편안이 확정되면 일부 수험생에게는 기존 시험 체계 아래에서 준비를 이어갈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반면 개편이 다시 연기될 경우, 학습 계획을 세워온 수험생들에게 제도 불확실성이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새건축사협의회 임형남 회장은 현행 개편 논의를 두고 “시험을 어렵게 만든다고 현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건축사 양성 구조 전반이 왜곡돼있다고 진단했다.


임 회장은 지난 21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학과 실무에서 이미 충분한 교육과 경험을 쌓고 있는데도 시험이 이를 반영하지 못해 과도한 진입장벽이 유지되고 있다”며 “부분 합격제 폐지나 시험 강화는 결국 경쟁자를 줄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시험 탈락으로 실무 인력이 이탈하면서 설계를 실제로 수행하는 인력은 줄어들고, 자격증 보유자는 감리와 행정 업무에 집중하는 역할 왜곡도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편 시점이 반복적으로 미뤄진 배경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회 간 입장 차이, 잦은 담당자 교체로 논의가 계속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혼란의 대가는 고스란히 수험생들이 치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진적 보완 필요”
손 놓은 제도 정비

임 회장은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이나 프랑스는 비교적 시험이 느슨해도 건축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았다”며 “문제는 시험이 아니라 감리·행정·책임 구조 등 시스템 전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마련된 제도를 뒤엎기보다, 교육과 실무에서 배운 범위 안에서 설계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점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개편 논란의 근본에는 교육 과정과 자격시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교육·실무·시험이 하나의 경로로 설계돼있지만, 한국은 대학 교육과 실무 수련, 국가시험이 단계별로 분절돼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졸업 이후 학원 수강이 사실상 필수로 인식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대학에서 배운 건 설계고, 시험은 또 다른 공부”라는 말이 나온다. 건축사는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 자격이지만, 자격 취득을 위한 준비 구조는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돼 왔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일각에서는 대한건축사협회가 시험과 실무 수련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그 배경에는 기존 회원 중심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격 취득 문턱이 낮아질 경우 경쟁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도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사는 자격 취득 이후 대한건축사협회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시험과 실무 수련 제도가 협회 회원 확대와 직결되는 구조에서, 협회의 입장은 단순한 이해당사자 의견을 넘어 제도 설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20일 치러진 제2회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자는 총 7716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3월8일 치러진 제1회보다 304명 늘어난 수치다. 반면 합격 예정자는 526명으로, 전 회차보다 91명 줄었다. 이에 따라 합격률도 6.8%로 떨어지며, 3월 시험의 8.1%보다 하락했다.

구조 왜곡

합격률 하락이 이어지면서 건축사 자격시험이 인력 양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장기간 교육과 실무를 거친 인력이 시험 단계에서 대거 걸러지면서, 설계 현장과 자격 체계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jen9@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