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건설을 향한 입주민들의 원성이 높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수년째 배관누수가 거듭돼 입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물난리의 원인이 부실시공에 있다고 주장하며 전면 재공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시공사인 부영건설은 계약서에 합의한 보수기간이 끝났다며 수개월째 입주민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708세대 중 400세대 배관누수로 물난리
시공사 “하자보수 기간 끝났다” 팔짱만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는 경북 구미 구평 부영아파트 3단지. 총 708세대로 구성된 이곳은 2002년 임대아파트로 준공된 뒤 지난해 12월 말 분양전환됐다. 6여 년간 집세를 내며 임대로 지냈던 입주민들이 드디어 ‘내 집’을 장만하게 된 것이다.
집안에 버섯이 자란다(?)
하지만 현재 입주민들은 내 집 마련의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고통의 날을 보내고 있다. 곳곳에서 터지는 배관 탓에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는 이유에서다. 입주민대표 강양일 회장은 누수로 인한 입주민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입주 후 8번이나 배관이 터져 방바닥에서 검은 곰팡이와 버섯이 자라는 세대가 있는가 하면 일부 세대는 보수 공사를 위해 1년 중 6개월을 천장을 뜯어놓고 공사장 같은 집안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세대는 배관이 터져 발코니, 안방, 작은 방 등이 모두 물이 차올라 온 가족이 수개월째 거실에서만 생활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침대, 옷장, 가구 등 살림살이를 거실로 옮겨와 좁은 곳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피해가 비단 일부의 사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입주민들은 전체 708세대 중 400세대가 넘는 가정에서 배관이 터져 물난리를 겪었다고 주장한다.
강 회장은 “이들 400세대는 최소 2~3번의 누수 피해를 입었으며 최고 9번의 누수 피해를 입은 세대도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인 부영건설은 단지 내 배관누수 피해가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영건설 한 관계자는 “주변 다른 세대에 비해 3단지가 배관누수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영건설은 전체 세대의 반 이상이 반복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입주자의 주장에는 반기를 들었다. 피해가 있긴 하지만 입주자들의 주장은 일부 부풀려져 과장됐다는 것.
시공사의 이 같은 태도에 강 회장은 증거가 있다며 반박했다. 강 회장은 “최근 입주민대표회의가 관리사무소의 근무일지를 확보했다”며 “확인결과 지난 2005년부터 올해까지 접수된 누수피해만 1500여 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5년 이전의 피해사례까지 추가한다면 훨씬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부영건설은 입주민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부영건설 한 관계자는 “1500건이라는 수치는 말이 안 된다”며 “근무일지를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지금껏 누수 보수공사를 한 것은 500건 정도 된다”고 밝혔다.
현재 입주민들은 세대 내 배관 전면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부영건설은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며 수개월째 입주민과 맞서고 있다.
부영건설이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분양전환 계약서다. 지난해 12월 전환 계약 당시 입주민이 시공사와 ‘계약 이후 6개월 유예접수 보수 처리한다’는 내용의 계약에 합의했다. 계약서대로라면 시공사는 분양전환 계약이 체결된 지난해 12월 이후 올 6월까지의 배관누수에 대해서만 보수 처리하면 된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계약 자체가 부정하게 체결됐다고 항변했다. 강 회장은 “분양전환 당시 입주민들은 수년째 반복되어 온 배관누수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며 “이에 계약 전날인 지난해 12월14일 입주민 회의에선 배관누수 하자는 시공사가 보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지만 계약일인 15일 전임 입주민대표 박모씨는 단독으로 서울 본사를 찾아 현재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며 “우리는 전임 대표의 일방적인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입주민들은 독단적으로 분양전환을 서두른 전임 입주민대표 박씨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배임 및 수뢰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반면 부영건설은 전임 입주자의 배임 혐의는 회사와 관계가 없다며 계약서의 실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영건설 한 관계자는 “회사는 분양전환 이후 지난 6월까지 피해가 접수된 배관누수에 대해 보수처리를 완료하는 등 계약서에 따라 성실히 이행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민대표회의가 새 회장을 내세워 이전 계약을 무시하고 새로운 요구를 제시하면 회사가 이를 전면 수용해야 하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거듭되는 누수피해의 원인이 부실시공에 있다며 시공사인 부영건설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 회장은 “6개월간 부영건설은 배관누수 시 터진 배관의 일부분만 잘라내 땜질하듯 보수처리 했다”며 “하지만 제품 자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배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과 10㎝ 옆이 다시 터지는 등 문제가 재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하자보수 기간이 끝난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발생한 배관누수에 대해 입주민들이 자비로 보수한 금액만 1270만원에 달했다. 강 회장은 시공사의 거듭된 보수에도 문제가 재발하는 이유는 시공사가 부실시공 한 탓이라며 배관 전면 교체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계약서 vs 부실시공
부영건설은 입주자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수개월째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지자체 등이 나서 수차례 중재를 요청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부영건설 한 관계자는 “부실시공이라는 지적에 배관누수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있지만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며 “입주민들과는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부영건설의 이 같은 태도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부영건설은 수개월째 협의 중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며 “그러나 실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 대책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영건설이 입주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시공사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