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작가의 내면에서 분출되는 자유로움이 관객에게 전달돼 흥을 돋운다. '검은 먹'과 '구릿빛 동(銅)'의 조합에선 원시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동양화가 박방영 작가는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화풍으로 유명하다. 지난 5일 '나의 길 위에 너는 항상 있다'라는 주제로 전시를 연 박 작가를 <일요시사>가 만났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우주의 기운이 거장의 붓을 거쳐 종이 위에 자유로이 생동한다. 동양화가 박방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뉴욕에서 수학했다. 큰 붓으로 일필휘지하듯 그린 박 작가의 그림은 초심자가 보기에도 선의 깊이가 남다르다. 천지의 무한함을 옮긴 그의 그림은 태고의 신비를 머금은 듯 하다.
'일필휘지'
"예술은 결국 미를 추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미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양과 서양이 다릅니다. 서양은 드러냄(표현)에 본류를 두는 것이고, 동양은 드림(전달)에 방점을 둡니다. 동양의 미(美)라는 것은 본래 양양(羊)자 밑에 불화(火)자를 써서 '하늘에 봉헌을 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어요. 저는 미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 선택한 거고, 예술가가 예술적으로 살다 보면 따라서 영혼도 진화를 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삶의 노정이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박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끌어왔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나아가 세속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천지본연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세상의 권력가들도 어떤 (사회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물질적인 권력을 다 내려놓고,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진짜 자유로운 것 아니냐. 이런 말씀을 드리고, 그래서 본인의 그림 역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가 잎사귀를 떼어내듯 화려함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말씀드립니다."
큰 붓으로 일필휘지하듯…먹과 동의 조합
장자 '소요유' 바탕으로 자유로운 작업
박 작가는 한때 일명 난지도그룹을 결성해 전위적인 설치미술에 매진했다. 또 사실적인 인물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통일운동과 종교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잠시 붓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 시기 박 작가는 그림에 쓰일 먹을 갈고 닦는 대신 자신을 갈고 닦았던 셈이다.
"인생은 자신을 찾아내는 일이죠. (세속에서)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비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삶의 기준이 되죠. 이런 건 어떨까요. 마르셀 뒤샹 아시죠? 그가 처음 변기를 보고 작품이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뒤샹은 자신이 변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이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림은 물감이 질료가 아니라 생각이 질료라는 거고, 화가가 어떤 가치관(혹은 정신세계)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앞서 박 작가는 전통 한지를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에 푹 빠졌던 그는 오히려 미국에서 동양 미술의 장점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시다시피 그림은 평면입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서예에서 글씨는 입체로 인식해요. 왜일까요? 먼저 서양의 '라인(Line)'과 동양의 '선(線)'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걸 아실 필요가 있어요. 라인은 단순한 줄이지만 선은 여러 개의 줄이 모인 형체입니다. 즉 선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개념인 거고요. 따라서 (개념적으로) 서양화는 빛을 빌려야만 평면에 입체감을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동양화는 선이 곧 입체물이기 빛을 빌리지 않고도 우주를 표현할 수 있죠. 이 점은 동양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신이 중요
박 작가는 올해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작업실에서 홀로 살고 있다.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박 작가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작가로서 자기규정이 되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어렵다는 건 압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진정성이고요.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보면 언젠가 그 자리에서 향기가 나게 돼 있습니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건 100점이면 100점, 1000점이면 1000점. 이렇게 자신과 약속한 숫자를 채우라는 거예요. 어느 순간 몰라보게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박방영 화가는?]
▲홍익대 미대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
▲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 수학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 박사과정 수료
▲인사아트센터(02) 일본미술세계화랑(07) 등 국내외 개인전 16회
▲관훈미술관(85) 상해아트살롱(03) 등 국내외 단체적 다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두바이대사관 등 기관 작품소장 다수
▲G20정상회의갈라쇼(10) 퍼포먼스 초청 외
▲현 세한대학교 조형문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