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이동권은 왜 아직도 완전하게 보장되지 않는가, 장애인은 왜 여전히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하는가, 국가는 왜 수십년째 약속만 반복하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왔다.
질문 자체는 정당하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문제며, 사회는 이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당한 목적이 언제나 정당한 수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장연은 최근 기존 지하철에서 벌였던 이동권 시위를 버스로 옮겨 실행했다. 활동가들 40여명은 21일 오전 8시45분부터 종각역 인근 종로2가 버스정류장,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버스정류장 등에서 휠체어 시위를 벌였다. 한 시위 참가자는 버스 위에 올라 현수막을 펼쳐 보이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출근길 버스 시위로 일대는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으며 경찰관들은 현장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물론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집회와 시위는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위의 자유 역시 프리패스는 아니다. 타인의 권리와 공공의 질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순간, 사회는 그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시민들의 출근길이자 학생들의 등굣길이며, 노약자의 병원길이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의 대중교통은 분 단위로 삶의 리듬이 맞물려 돌아간다. 이 공간을 장시간 점거하거나 운행을 방해하는 방식의 시위는 수많은 시민의 일상을 직접적으로 멈춰 세운다.
전장연은 “불편해야 시민이나 언론에서 관심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회는 종종 조용한 호소보다 큰 충돌에 더 주목한다. 그러나 그 논리가 언제까지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관심을 얻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연대가 아니라 피로감이다.
장애인 권리에 공감하던 이들조차 “왜 하필 시민을 상대로 싸우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는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갈등의 방향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전장연이 요구해야 할 대상은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정치권이다. 그러나 버스 시위의 직접적 피해자는 정책 책임자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다. 직장에 지각한 노동자, 약속을 놓친 자영업자, 병원 예약 시간을 넘긴 환자,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던 보호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는다.
책임을 져야 할 권력은 뒤로 숨고, 시민들끼리만 감정적 대립이 격화되는 구조다. 이는 사회운동이 지향해야 할 권력 감시와 제도 개선의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강한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권리 진전도 가능했다고 말한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투쟁 방식도 진화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정책 데이터 공개 요구, 행정소송, 시민 캠페인, 지방선거 압박, 온라인 공론화, 국회 입법 로비 등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 기술과 제도가 발전한 시대에 시민의 발을 묶는 방식만이 유일한 저항 수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보다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이 사회적 지지를 넓힐 수 있다.
또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재원 마련과 행정 효율화, 시설 개선, 교통 인프라 확충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과제는 감정적 충돌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빠르게 진전된다. 시위가 여론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필요한 예산과 정책은 오히려 정치적 부담 속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다시 장애인 당사자들이다.
물론 이 기자수첩이 전장연의 문제 제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부끄러운 사회적 과제다. 저상 버스 확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특별교통수단 개선, 보행 환경 정비 등은 더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목적의 정당성은 수단의 성찰과 함께 갈 때 더욱 힘을 얻는다.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지지까지 얻겠다는 건 욕심에 불과하다.
사회는 약자의 외침을 들어야 하는 동시에 운동 역시 사회와 소통할 책임이 있다. 전장연의 버스 시위가 남긴 질문은 단순히 “불편했는가”가 아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방식이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며,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반복되는 충돌이 아니라, 권리 보장과 시민 일상이 함께 지켜지는 성숙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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