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갤러리마리는 매년 ‘세화’의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세화는 한 해의 액운을 막고 복과 생기를 맞이하기 위해 집 안에 걸던 그림이다.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다가올 시간을 향한 기원과 태도를 담았다.
갤러리마리가 병오년을 맞아 ‘말 참 많네- All the Horses’ 전시를 준비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동반자였던 말은 때로는 거침없는 생명력으로, 때로는 고요한 사유의 풍경으로 우리 곁에 머물렀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11인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말의 형상을 통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생의 에너지와 내면의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기획됐다.
달리는 말
먼저 극사실적 묘사로 시간의 영원성을 묻는 이석주, 한국적 서정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석철주, 강인한 생명력으로 한국의 미학을 풀어내는 김선두의 깊은 울림을 마주할 수 있다. 강성훈이 조각한 선의 율동과 박방영의 거침없는 필치는 말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일깨운다. 추니박과 허진은 거대한 자연과 문명에서 말이라는 존재가 지닌 철학적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환상적인 서사를 들려주는 잠산, 초현실적 색채로 내면의 평온을 이끄는 반미령의 작품도 소개한다. 지오최는 바다와 정원이라는 지극히 서정적인 공간에서 안식을 노래했고, 이광의 작품은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인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김선두는 ‘불꽁이1’을 준비했다. 장지라는 한국적 소재 위에 짙게 밴 색감으로 우리 땅의 정서를 표현했다. 투박한 듯 섬세한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말은 민초의 삶과 닮아있다. 굽이치는 능선을 닮은 말의 곡선은 한국적 미학이 지닌 소박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한다.
박방영이 소개한 ‘적마의 꿈’에 등장하는 말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 ‘그어대기’라는 직관적인 기법을 통해 생명의 원초적인 기운을 쏟아냈다. 삶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유쾌하고도 강렬한 시각적 울림을 전달한다.
반미령은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세계를 꿈꾸며’를 소개한다. 숲과 빛 그리고 그 안에서 평화롭게 쉬는 말의 모습은 현대인이 갈망하는 내면의 안식처를 상징하며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화면으로 마음의 평온을 이끌어 낸다.
석철주의 ‘생활일기 26-5’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전통 수묵의 번짐과 현대적인 색감을 조화시켜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작가다. 기억 속의 풍경을 몽환적으로 재구성한 화면에서 말은 현실과 이상향을 잇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듯한 신비로운 생동감을 자아낸다.
역동적이고 거침없는
각자의 시선으로 표현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치료해 말에 태워 끝까지 돌본다. 이 비유는 오늘날까지 ‘사마리아인의 법’으로 남아 타인을 향해 책임을 묻는다. 이광은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깊은 울림을 경험하고 그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귀인 KL.1’은 고통 속의 사람들이 잠시 서로를 보듬고 각자의 길로 나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삶은 서로 귀인이 돼주는 관계망이다. 불교의 ‘인드라망’처럼 우리는 연기적으로 얽혀 서로의 카르마를 풀어준다.
잠산은 ‘Red Horse’를 소개한다. 그는 강렬하고 몽환적인 붉은 색채를 사용해 잊히지 않는 서사적 순간을 창조했다. 꿈과 기억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말은 전설의 주인공처럼 신비로운 아우라를 뿜어내며 관람객을 현실 너머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안내한다.
지오최는 ‘비파의 방주_생명의 모뉴멘트’를 통해 고독과 평화를 동시에 이야기 한다. 푸른 수평선과 말의 우아한 실루엣이 만나는 찰나를 포착해 번잡한 세상을 떠나 자아를 찾아가는 영혼의 여정을 한 폭의 서정시처럼 아름답고 고요하게 그려냈다.
추니박은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거대한 대지의 숨결을 화폭에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빨간 말이 있는 숲’을 준비했다. 웅장한 자연경관 속에 작게 배치된 말의 형상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극대화하며 과감한 먹의 운용과 현대적 색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거대한 서사를 구축한다.
허진은 ‘유목동물+인간동물’을 통해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동물의 형상을 빌려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다층적인 화면에 배치된 말은 현대 문명의 인공적 환경과 대비를 이루며 억압된 본능을 깨우고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실존적 갈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의 말
갤러리마리 관계자는 “전시 제목인 ‘말 참 많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수많은 말(馬)의 향연이자 작가들이 붓끝으로 건네는 수만 가지의 말(言)이기 때문이다”라며 “11인의 작가가 펼쳐놓은 이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단순히 동물의 형상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길 위에서 자신에게 건네는 찬란한 고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말들이 내딛는 힘찬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며 “그 움직임 끝에서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단 하나의 말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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