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은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짧은 발표였지만 그 파장은 길게 번졌다. 이미 굳어졌다고 여겨졌던 시장 질서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노동은 동시에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형 마트 새벽 배송은 규제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형 마트가 멈춰 있는 동안 수요는 자연스럽게 다른 채널로 이동했고, 소비의 리듬은 제도가 아닌 생활에 맞춰 재편됐다. 우리의 하루는 이미 24시간으로 확장됐지만, 법은 과거의 박자를 유지했다.
그 결과 멈춘 곳과 열린 곳의 격차가 구조로 굳어졌다.
2012년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의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오프라인 유통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전통시장 보호라는 목표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 대형마트의 급속한 확장은 조절의 대상이었으며, 유통 시장은 균형을 원했다.
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그런 요구를 반영한 장치였다. 당시로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소비 환경은 완전히 변했다. 구매는 매장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고객의 발걸음 대신 클릭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플랫폼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시 시장을 설계한다. 법은 공간을 중심으로 작동하지만, 현실은 네트워크 위에서 움직인다. 이 간극이 새로운 불균형을 낳았다.
지난 10년 동안 그 틈을 타고 온라인 플랫폼이 성장했다. 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조건 속에서 새벽 배송은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빠름은 경쟁력이 됐고, 반복은 습관이 됐다. 소비자는 편리함을 경험한 뒤 이전 방식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표준은 굳어졌다.
새벽 배송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다. 고객을 묶어 두는 장치이자 플랫폼을 선택하게 만드는 기준이다. 새벽에 도착한 상품은 만족이 되고 그 경험은 다시 재구매로 이어진다. 안정된 매출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 시장의 지형은 이런 연결 위에서 형성됐다.
그동안 새벽이라는 시간대는 소수의 사업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했다. 습관이 굳어질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접근 가능 여부가 곧 점유율을 갈랐다. 시간은 가장 높은 진입장벽이 됐다.
대형마트 업계는 오래전부터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같은 상품을 팔면서 누구는 족쇄를 차고, 누구는 자유로운 상황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이다. 경쟁을 인정한다면 최소한 출발선은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정책은 그 요구에 대한 답으로 읽힌다. 묶였던 손이 비로소 풀리게 됐다.
정책의 파급력은 크다. 단단하게 굳은 시장 질서에 균열을 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주로 평가되던 구조에 변수가 추가된다. 자본은 다시 움직일 방향을 계산한다. 판을 뒤흔드는 힘은 언제나 제도에서 나온다. 규칙을 쥔 쪽이 흐름을 만든다.
정책 당국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자본은 방향을 안다. 누가 가장 많은 시간을 확보해 왔는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암묵적인 수혜와 조정을 동시에 만든다. 그래서 발표보다 해석이 더 빨리 번진다. 그 중심에 자주 거론되는 기업이 쿠팡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손익을 다시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칙이 변하면 추격의 조건도 달라진다. 전국 점포와 재고, 지역 거점을 가진 대형마트는 전혀 다른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비용 구조와 배송 방식 모두 다시 설계될 수 있다. 물류의 지도는 새로 그려질 가능성을 얻었다. 정책이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선택지들이 다시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은 다른 가치를 건드린다. 소비자의 편익이 커질수록 누군가의 밤은 길어진다. 편리함과 건강권이 같은 자리에 놓인다. 판단은 여기서 복잡해진다. 숫자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문제는 효율의 언어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국제암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 논쟁에 무게를 더해 왔다. 야간 노동의 위험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산업의 성장 뒤에 숨은 비용을 보자는 요구였다. 그래서 결정은 언제나 쉽지 않다. 속도를 높일수록 질문도 함께 커진다.
만약 이번 조치가 경쟁 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이는 완화가 아니라 재설계다. 정부가 판을 다시 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누구에게 기회가 늘고, 누구의 우위가 줄어들지는 시간이 가를 것이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균형점을 향한 탐색이 시작된 셈이다.
기업은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설비와 인력, 제휴 전략이 동시에 재검토 대상이 된다. 먼저 적응하는 쪽이 유리해지고, 변화의 순간마다 시간은 가장 비싼 자산이 된다. 소비자에게는 선택지가 넓어지지만 경쟁은 가격과 서비스를 더욱 압박한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부담 역시 함께 움직인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규제 손질을 넘어선다. 국가가 시장의 조정자로 전면에 서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역할이 커진 만큼 평가도 한층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새벽은 매일 반복되고, 반복은 결국 체제가 된다. 체제가 되는 순간 그것은 힘이 된다.
결국 답은 현장에서 나온다. 소비자의 문 앞에서, 그리고 노동자의 밤에서 정책의 성적표가 매겨진다. 발표가 아니라 경험이 기준이 된다. 시간이 판정을 내린다. 정치는 언제나 삶의 자리에서 채점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