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신선식품의 아침 수령을 표준화한 새벽 배송 서비스는 퇴근 후 장보기가 어려운 직장인들의 갈증을 풀어주며 일상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오전 12시부터 5시까지 배송을 제한하자는 안을 내자, 각계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쿠팡노동조합은 지난 30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회와 정부는 일방적으로 새벽 배송 금지 주장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쿠팡노조는 “새벽 배송은 쿠팡 물류에서 생명과도 같은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며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야간 근로를 줄이자’는 주장만으로 금지하는 것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택배기사들이 오전 5시부터 배송하기 위해선 간선 기사,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밤새 일해야 한다. 만약 야간 작업 제한이 물류 전반으로 확장된다면 이들의 일자리도 없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택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기업·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소비자단체도 동조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이날 성명문을 내고 “새벽 배송 전면 금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소비자나 자영업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물류 종사자 등 다수 사회 구성원의 생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도 “생활 필수 인프라가 된 새벽 배송이 멈추면 소비자의 일상도 멈춘다”며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발이 일자 택배노조는 “새벽 배송 전면 금지안이 아니다”라며 “초심야시간대(0~5시) 배송을 제한하되, 오전 근무조가 긴급 품목을 배송하자는 방안”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며, 국내·국제적 기준에서도 ‘야간 근무는 연속 3일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면서 “쿠팡 새벽 배송은 5~6일씩 심야노동을 해 생체리듬 파괴, 수면장애,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 자살 충동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므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들은 대략 오후 8시30분(1차), 오전 12시30분(2차) 및 3시30분(3차) 하루에 총 3번씩 캠프에 들어가 물품을 직접 분류한 후, 싣고 나오는 작업을 반복한다”면서 “타 택배사 주간 배송기사들과 비교하면, 하루 4번(왕복 2회분)을 추가로 운행하며 과로사 기준을 넘는 장시간 과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11월 쿠팡CLS 새벽 배송기사와 물류시설 일용직(헬퍼) 등 모두 268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야간 근무 시 ‘3회전 배송’을 실시 중인 근로자는 76.8%로 조사됐으며,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9시간38분, 일주일에 평균 5.5일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 때도 ‘기후와 관계없이 배송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7%에 달했고, 개인 사정 등으로 근무일에 새벽 배송을 못하게 되면 계약 해지, 배송 구역 조정 등 불이익이 있냐는 질문엔 절반에 가까운 48.6%가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단체와 쿠팡노조 역시 무리한 근무 관행과 불합리한 처우의 개선 필요성엔 의견을 같이 한다. 다만 새벽 배송 제한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업계에선 택배노조의 제안대로라면 운용상 새벽 배송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류 상·하차 및 간선 이송·분류가 선행돼야 배송이 가능한 만큼, 어느 단계에서든 심야 작업 인력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의 시간대 제한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자 과로사 등의 원인을 서비스 자체로 지목해 자발적 야간 근무자까지 배제하기보다, 문제를 제도의 이행과 관리 부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따라서 인력을 확충을 통한 교대·휴게 정상화, 무리한 심야 작업 제지와 정기 건강진단 등 현행 의무의 이행과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접근이 합리적 해법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만약 건강권을 이유로 야간 노동을 일괄 제한할 경우 소비자 후생은 물론 산업과 고용 측면에도 부정적 영향이 뒤따를 수 있다. 응급의료 등 3교대가 필수인 업종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방식의 접근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야간 또는 새벽에 일하는 업종은 새벽 배송만이 아니다”라며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개장, 편의점의 24시간 개점, 야간 경비 업무 등 다른 수많은 야간, 새벽 근무 업종도 금지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어 “노동 환경 개선은 정치의 대단히 중요한 임무”라면서도 “감성적인 논리로 모두가 새벽에 일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 훈계하면서 새벽 배송 금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를 활용하는 생활인들에게도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국회 질의에서 “부처 내부에서 새벽 배송 전면 금지를 논의한 사실은 없다”며 “소비자 입장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가에선 연말 합의안이 ‘보완책’ 수준으로 수렴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정부가 참여하는 다자협의체인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추가 논의가 진행 중이며, 이 기구의 합의는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업계 표준화와 정책 반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효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6월 체결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제2차 사회적 합의는 장시간 노동 완화와 산재 예방 등 포괄 대책으로 확장됐으며, 이후 특별관리기간 운영, 이행 점검 등 정책과 업계 표준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한편 국내 새벽 배송은 지난 2015년 한 온라인 식료품 플랫폼이 상용화하면서 본격화됐다. 퇴근 후 장보기가 어려운 맞벌이 가구의 불편을 줄이고 아침 정시 수령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익일 오전 7시 전 배송’ ‘풀 콜드체인’을 핵심 슬로건으로 삼았다. 이후 주요 유통사로 빠르게 확산됐다.
콜드체인은 신선식품이 생산–보관–분류–운송–배송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품목별 적정 온도(냉장·냉동·상온)를 유지시켜,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는 물류 시스템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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