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택에 침입한 강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가해진 애프터스쿨 출신의 배우 나나(임진아)의 대응이 정당방위 결정으로 나오자 의아해하는 반응이 뜨겁다.
구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6시쯤, 30대 남성 A씨는 흉기를 든 채 나나 자택에 침입했고 이를 막기 위해 나나와 모친이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흉기에 의한 턱 부위 열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침해가 있었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피해자들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시민의 안전권을 보호한 합리적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라는 호응과 함께 ▲정당방위의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 ▲자력방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안전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 등 여러 불편한 질문을 남겼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1항에 따르면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해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2항에는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황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돼있다.
다만, 야간이나 그 밖에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경악, 흥분, 당황했을 때 방위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방위의 기준은 그 특성상 예측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사법기관은 종종 ‘상당성’ 또는 ‘비례성’이라는 추상적 기준을 내세우지만, 시민이 실제 상황에서 이를 고려하며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택에 모르는 남성이 침입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에 일반인이 ‘어느 정도까지 힘을 써야 비례성이 인정되는가’를 고민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판단은 사후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법원은 냉정한 잣대로 시민의 대응을 평가한다. 이번 결정이 정당방위로 인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는 운이 좋았던 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대응 방식에 따라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법리는 시민의 직관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시민은 언제나 사후 판단의 불확실성 속에 놓인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이 시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긴다는 점이다. 강도나 침입자의 위협을 실제로 겪는 상황은 극심한 공포와 충격이 동반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도망가거나 맞서게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억제되지 않은 힘이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 판단은 이 같은 인간적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정당방위 인정은 시민에게 ‘어느 정도는 괜찮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항상 판단을 잘해야 한다’는 역설적 압박을 남긴다. 게다가 정작 법은 무엇이 지나치고, 무엇이 정당한지 여전히 명확히 말해주지 못한다.
정당방위 인정의 폭이 넓어졌다고들 하지만, 그 폭이 ‘얼마나 넓은지’조차 시민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국가의 보호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당방위가 넓게 인정되는 것이 시민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정당방위가 확장될수록, 그만큼 국가가 공권력을 통해 보호해야 할 공간이 개인의 손으로 이전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국가가 지키지 못하는 영역을 개인이 스스로 보호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깔려 있는 셈이다.
치안 불안이 커질수록, 정당방위 인정 결정은 일종의 ‘위로’처럼 기능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시민이 생명의 위협 앞에서 국가 대신 스스로 무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구조 자체가 문제며, 이번 결정은 오히려 그 구조를 고착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과연 정당방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도 던진다. 겉으로 보기에 정당방위는 시민의 생명·신체를 지킬 권리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을 써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히 보호받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신체적 약자는 침입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정당방위를 행사하더라도 ‘상대적 비례성’ 때문에 오히려 불리한 평가를 받을 위험도 있다.
이처럼 정당방위 제도는 표면적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에게만 실질적인 방패 역할을 하게 된다. 사법기관이 이번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이 정의롭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제도가 구조적으로 갖는 불평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회적 분위기다. 최근 몇 년 사이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메시지가 강화되면서 온라인에서는 무기류나 방호장비를 구매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정당방위 사례가 언론에서 긍정적으로 조명될수록, 극단적 자력방어 문화를 부추길 위험도 커진다.
시민이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이 문제의 핵심인데, 그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개인의 ‘대응 능력’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흐름이다. 이번 결정도 결과적으로 이런 사회적 경향과 맞물려 ‘강하게 대응하는 것이 옳다’는 단순한 해석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법적·윤리적 균형을 잃는 길이다.
경찰이 내린 정당방위 결정은 특정 사건에 대한 사후적 판단일 뿐, 앞으로의 모든 상황에 적용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번 결정으로 “가정 침입자에게 대응했다가 벌받을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제압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사회적 메시지로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
법적 판단은 엄밀한 조건과 맥락을 토대로 내려지지만, 사회의 해석은 언제나 단순하고 빠르다. 무엇보다 이 간극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이번 판결은 정당방위 인정이라는 긍정적 결론에 안주해서는 안 될 문제를 던지고 있다. 법적 기준의 불명확성,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안전의 책임,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 자력방어 문화의 확산 등은 정당방위 여부 문제보다 더 심각한 질문들이다.
정당방위는 시민의 재산권을 포함한 권리를 지키는 제도여야 한다. 그러나 그 제도가 국가의 책임을 흐리게 하고,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처해 있는 조건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를 차별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제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당방위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가 돼선 안 된다. 시민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회는 정당방위가 자주 논의되는 사회가 아니라, 정당방위가 필요 없는 사회다. 이번 사건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우리는 정말 안전한가, 그리고 그 안전은 누가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