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론스타 승소 의미와 2022년 논쟁이 남긴 교훈

2025.11.19 09:33:10 호수 0호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ISDS(국제투자분쟁) 판정 취소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18일 최종 승소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오늘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가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했다”며 2022년 중재 판정에서 인정됐던 2억1650만달러와 이자 지급 의무가 모두 소멸했다고 발표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 사건은 특정 정부의 공로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없다”며 대통령 부재 국면에서도 국제법무국 등 실무진이 이어온 분투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건의 출발점부터 돌아보면 론스타 사태는 어느 한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정부의 판단과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되며 만들어진 복합적 결과였다.

이 사건은 김대중정부가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순간 시작됐다.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산업자본 규제 미정비 속에서 이 매각은 논란의 씨앗이 됐다.

뒤이어 노무현정부에서는 BIS 비율 조작 의혹, 헐값 매각 논란, 산업자본 적격성 논란이 폭발했고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 문제까지 발생해 향후 ISDS의 쟁점이 되는 ‘정치·행정 개입 논란’이 만들어졌다.


이명박정부는 2012년 외환은행의 하나금융 매각을 승인했고, 그 직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세금 부과 등을 근거로 46억달러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이후 박근혜정부는 광범위한 국제 법리 공방을 수행하면서 장기전에 본격적으로 대응했고, 문재인정부는 2022년 일부 패소 판정이 나오자 이를 “여전히 부당하다”고 판단해 즉시 취소 절차를 신청했다.

이어 윤석열정부는 취소 신청의 법리적 완성도를 보완하며 대응팀을 재정비했고, 마지막으로 이재명정부에서 2025년 ICSID 취소위원회가 배상금 전액 취소 결정을 내리며 분쟁이 최종 마무리됐다.

이렇게 보면 론스타 사태는 한 정부가 잘못해서 생긴 사건이 아니라, 여러 정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판단한 결과가 국제분쟁으로 누적된 매우 복합적인 국가 시스템의 문제였다.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2012년 매각하며 약 4조7000억원을 챙겨나간 과정은 처음부터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감사원이 2006년 “자격 없는 투자자가 은행을 차지했다”고 발표하면서 금융감독의 공백과 비일관성이 드러났고, 규제의 모호성은 시장 신뢰를 흔드는 ‘헐값 매각’ 프레임으로 확산됐다.

정부와 감독 당국의 승인 절차가 정치 상황·여론·시장 변수에 따라 흔들렸다는 의혹도 이어졌다. 결국 이 같은 불명확성이 결국 ISDS의 단초가 됐다.

10년 넘게 이어진 ISDS 과정에서 한국은 ‘행정 결정이 해외 투자자의 이익을 훼손했는지’를 두고 방어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국제분쟁 대응체계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22년 중재판정부가 론스타 요구액 중 4.6%만 인정했을 때조차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론스타는 “배상액이 너무 적다”고 불복했고, 한국 정부는 피해 산정 방식과 세금 판단이 여전히 부당하다고 보며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국제중재는 국내 정치의 격전지로 번졌고, 한동훈 장관의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는 판단을 두고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국익을 판단하는 문제조차 정치 논리로 재단되며 소송 전략이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ICSID 취소위원회는 2023년 11월부터 심리에 착수해 절차를 2025년 9월에 마무리했고, 최종적으로 한국 정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배상금은 전액 취소됐고, 대한민국은 법적 책임을 면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공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고, 여권은 국익을 지킨 승리라 평가한 반면 야권은 “정치적 자화자찬”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번 판정의 본질은 정치적 공방보다 훨씬 더 깊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한국이 왜 22년 동안 이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구조적 문제의식이다.

승소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행정 결정이 국제무대에서 법적 책임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사실, 즉 ‘최악의 결과는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론스타 사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 금융감독 체계의 일관성 부족, 외자 규제의 모호성,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그리고 국제중재 대응의 전문성 미비를 반복해서 드러냈다.

특히 정치권이 ISDS 전략을 두고 극단적으로 갈라섰던 장면은 국가 소송이 정쟁의 도구가 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승소의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드러났던 감독 공백과 자격 판단의 불명확성을 바로잡고, 외자 투자·매각 과정에 정치 개입 논란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성을 강화하며, ISDS 대응 체계를 제도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승소가 끝이 아니라, 한국 시스템을 다시 설계할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22년 만에 끝난 론스타 분쟁은 한국이 국제분쟁에서 승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고, 동시에 우리 금융·행정 시스템의 그늘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법적 승리는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제도적 교훈은 우리를 다시 긴장하게 만든다.

한국은 이번에 이겼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기려면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제도를 고쳐야 할 숙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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