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의 굴절된 사랑학

2025.11.11 10:27:36 호수 1557호

삐뚤어진 사랑의 파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뉴스>가 호평을 듣고 있다. 변 감독은 다양한 소재·배경으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로 요약되는 사랑의 파국을 다룬다. <길복순>에선 부족한 액션 연출 솜씨와 과도한 세계관 설정 욕심을 드러냈다. 다시 장점을 극대화한 <굿뉴스>는 변 감독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변성현 감독의 신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굿뉴스>는 지난달 17일 공개돼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굿뉴스>는 지난 1970년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인 요도호 사건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요도호 사건

변 감독은 지난 2012년 <나의 PS 파트너> 개봉 이후 지금까지 사랑의 파국을 중심 소재로 삼아 영화를 연출해 왔다. 이별의 아픔·집착·소유욕 등 다양한 이유로 삐뚤어진 사랑이 파국으로 연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사랑이 그럴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삐뚤어진 사랑이 파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현실에서도 빈번해서 핍진성을 얻는다.

<나의 PS 파트너>는 각각 이별의 아픔과 성격의 한계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적당히 수위를 유지한 19금 요소로 화제성을 얻었고, 결말에 이르러 드러나는 색다른 전개는 큰 화제가 됐다. 남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임에도 젊은 여성 관객의 호응을 얻어 흥행한 영화로 기억된다.

이후 변 감독은 폭력·정치·액션 등 연출 영역을 확대하면서도 같은 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선 조직폭력배와 언더커버의 우정이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다. 2022년 작 <킹메이커>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씨의 기이한 인연을 매개로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변 감독이 두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의 묘한 경계선이다. 그래서 <불한당>에선 두 주인공의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를 놓고 다양한 평이 오갔다. 그는 “사랑”이라고 못 박았다. 변 감독은 “저는 <불한당>은 멜로 영화라고 규정했고, 영화 촬영 전에도 다른 멜로 영화를 주로 봤다”고 설명했다.

변 감독은 <길복순>에선 표현하지 않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변질을 다뤘다. <길복순>에서 다룬 동성애·근친 등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다. 표현하지 않았거나, 표현할 수 없을수록 감정은 집착으로 변한다. 그래서 <길복순>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집착 때문에 사건을 일으킨단 공통점이 있다.

<굿뉴스>는 “사랑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닐 때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요도호 사건은 일본 적군파 활동가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이념의 조국 평양으로 갔던 사건이다. 이념에 대한 광적인 집착도 결국 사랑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영화 속 주인공들도 조국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컸단 공통점이 있다.

<길복순> 과도한 세계관 설정 욕심
<굿뉴스> 장점 극대화로 방향 제시

인정 욕구도 결국 사랑이다. 이뤄지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랑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변 감독의 관심사는 그 “어디로 튈지 모른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변 감독은 극장 개봉에선 <나의 PS 파트너> 이후 이렇다 할 재미를 못 봤다. <불한당> 개봉 당시엔 변 감독 자신이 흥행 감점 요소였다. 각종 성희롱·정치·지역 비하 의혹이 불거져 영화 흥행에도 악영향이 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악평이 이어져 96만명만 극장을 찾는 참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2차 시장에서 주목받았고, 슬럼프에 빠졌던 배우 설경구를 재발견해 부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킹메이커>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극장이 침체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길복순>은 저조한 흥행이 이어지던 변 감독에게 넷플릭스란 새로운 출구를 열어준 작품으로 통한다. 하지만 <길복순>은 변 감독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 작품이다. <길복순>은 미국 액션 영화 시리즈 <존 윅>의 세계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티가 많이 난다.

두 영화엔 “살인청부업자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거시적 설정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이 4편의 본편과 1편의 스핀오프를 통해 세계관을 천천히 공개할 동안 <길복순>은 한 편의 영화에서 설정 공개를 과도하게 남발하다가 서사가 망가졌단 평가가 많다.

이는 스핀오프 드라마 <사마귀>로까지 이어져 혹평을 들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제작자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사장은 평소 “세계관보다 영화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세계관 확장에만 집중해서 영화를 망치면, 세계관도 함께 망한다.


변 감독은 평소 빠른 편집과 만화적 연출 등 비주얼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인다. <굿뉴스>에선 이를 특히 잘 활용해 점프 컷으로 유머를 연출하는 등 서사와 비주얼을 적절히 조화시켜 호평을 들었다.

<굿뉴스>가 변 감독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길복순>이 부실한 서사와 소질 없는 액션 연출 때문에 혹평을 들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비주얼과 서사를 두루 잘 챙기다가 서사를 무시한 영화 2편을 공개한 후 감독 경력이 사실상 끝난 인물로는 이명세 감독이 있다.

대체로 비주얼 좋지만
때때로 망가지는 서사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란 평가를 받던 이 감독은 2005년과 2007년 각각 <형사 DUELIST>와 <M>을 공개한 후 엄청난 혹평을 듣고, 흥행도 망쳤다.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가득 찬 절정의 화면 연출 실력을 보여줬지만, 서사가 모두 깨졌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주인공들의 감정은커녕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길복순>의 액션엔 <존 윅> 시리즈가 왜 액션 영화 팬에게 호평을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연출이 다수 있다. <존 윅> 1편이 개봉했던 지난 2014년 이전엔 <제이슨 본> 시리즈 특유의 핸드헬드·셰이키 캠 촬영이 보편화됐다.

이 시리즈의 액션은 정교한 편집을 기반으로 연출됐다. 따라서 카메라를 흔들면서도 와이드 숏을 적절히 삽입했기 때문에 관객이 액션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아류작들이 범람하면서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말았다.

<존 윅>은 이 참사들을 뒤로 하고 다시 현실성을 추구하면서 카메라를 과하게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연출을 고수했다. 따라서 주연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스턴트 배우들의 액션 실력과 감독의 연출 능력이 부실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변 감독은 <존 윅>의 액션과 <킹스맨>의 현란한 촬영을 동시에 추구했다. <존 윅>에선 악역을 맡은 스턴트 배우들이 주인공에게 덤비는 속도까지 세밀하게 조절해 어색하지 않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변 감독은 현란한 촬영에만 집중했을 뿐, 액션의 흐름은 무시해서 매우 어색한 연출이 이뤄진 것이다.

부족한 액션


<길복순>은 흥행했으면서도 악평에 시달린 묘한 작품이다. 변 감독은 <굿뉴스>를 통해 어색함을 버렸고, 장기를 가다듬었다. 변 감독의 장점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란 주제를 빠른 편집과 만화적 연출로 버무리는 것이다.

다만 <굿뉴스>에선 김건희 여사 풍자 등 흐름과 맞지 않은 어색한 현실 정치 풍자가 지적받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연출할 수 있으려면 서사의 치밀함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변 감독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다. <굿뉴스>는 변 감독의 장점이 언젠가 극대화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보여준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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