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중년 남성이 뇌 CT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침대를 가리켰고, 그는 조심스럽게 누웠다. 하얀 조명 아래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이기보다 어디론가 실려가기 직전의 몸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꼭 누워서 해야 하나요? 이렇게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간호사는 “다들 이렇게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 말은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주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멈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환자가 눕는 장면은 너무 익숙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피를 뽑을 때, 초음파나 심전도, 혈압 측정을 할 때도 환자는 자동으로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사람은 누우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눈을 감고 누운 모습은 영락없이 ‘죽음의 자세’를 닮는다. 그래서 노인 환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내가 살아 있는 건지, 실려가는 건지 모르겠다.”
필자의 작품 중에 도시의 밤을 ‘죽은 자로 가득한 공동묘지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도시의 밤이 캄캄해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잠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죽은 자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도 “사람이 잠들어 있는 모습은 죽은 모습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잠든 사람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앞에 놓인 채 움직이지 않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상태를 ‘실존의 침묵’이라고 불렀다.
병원에서 환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환자는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받는 대상이 된다. 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설명되지도 않는다.
물론 모든 의료 행위가 잘못된 건 아니다. 누워야 더 정확하고 안전한 진료가 가능한 경우도 많다. 문제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늘 그래왔기 때문에 환자를 눕히는 병원의 관행이다.
의료 시스템과 기기 대부분은 환자가 누워 있는 상태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의사는 서서 내려다보고, 환자는 침대 위에서 설명을 기다린다. 이 자세의 차이 하나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주체와 객체, 판단하는 사람과 판단받는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든다.
유럽과 미국 일부 병원에서는 이를 깨기 위해 앉은 자세 기반 진료(lean clinic)를 도입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가 의자에 마주 앉아 상담하고 검사한다. 초음파 장비도 침대형이 아닌 기립형 또는 앉은 자세용으로 바뀌고 있다. 설명할 때도 의사가 환자와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춘다.
한국에서도 일부 소아과, 재활의학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비슷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환자를 눕히기보다 ‘앉아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맞이하는 의료’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다.
병원은 의료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의사와 살아 있는 존재가 마주하는 관계의 공간이어야 한다. 의사는 서고 환자가 눕는 구조는 위계의 의료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앉아 눈높이를 맞춰야 관계의 의료가 된다.
모든 환자를 앉혀 진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반드시 눕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검사부터 앉아서 하고, 설명할 때는 눈높이를 맞추고 “왜 눕나요?”라는 질문조차 허락되는 병원.
그런 병원에서 환자는 다시 사람으로 선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한 건물 혹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곳이 많다. 운영 효율을 위해서다. 그러나 치료받으러 온 환자가 병원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죽음을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구조가 과연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이 옆에 있다는 건 환자의 존엄보다 병원의 편의를 앞세운 결과다. 병원과 장례식장은 상징적으로라도 분리돼야 한다. 그래야 환자가 치료받으러 와서 죽음을 리허설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병원은 죽음을 연습하는 공간이 아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어야 한다. 환자는 치료받는 몸이 아니라, 숨 쉬고 생각하며 말할 수 있는 인격체다. 의료는 그의 몸을 눕히기 전에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세워야 한다.
병원 진료실마다 아래와 같이 의료진의 각오를 선언서로 만들어 붙여놓으면 어떨까?
환자의 존엄을 위한 의료 선언서
1. 나는 의사(간호사)로서 환자를 질병이나 숫자로 보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사람으로 대할 것을 다짐한다.
2. 설명 없는 진료와 익숙한 관행보다 환자의 존엄과 이해를 먼저 세우겠다.
3. 환자를 눕히기 전에 말을 걸고, 눈높이를 맞추며,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겠다.
4. 병원은 죽음을 연습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공간임을 마음 깊이 새기고, 치료보다 인간을, 효율보다 존엄을 먼저 선택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