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재명정부 외교, 균형의 시험대에 서다

2025.10.24 09:56:00 호수 0호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 오는 29일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이튿 날엔 트럼프와 시진핑이 미·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반도가 국제 정치의 한복판으로 소환된 셈이다.



이번 만남의 표면적 주제는 ‘세계평화와 관세 협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패권과 선택’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균형의 외교 시험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늘 강대국의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잡아야 했다. 냉전의 대립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자유와 시장을 내세우며 동맹의 결속을 강화하고, 중국은 공존과 상생을 외치면서도 사실상 영향권 유지를 노린다. 그 사이에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으로 줄타기를 해왔다.

하지만 모호함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선택의 시대에 들어섰고, 기술·안보·경제의 경계가 모두 무너진 복합 패권의 전장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관망할 여유가 없다.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다. 미국은 관세 협상을 빌미로 친미 기술 블록을 강화하며 한국에 사실상 충성을 요구할 것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제국으로 변신을 자랑하며 한국에 동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기술과 시장, 원자재와 소비처를 동시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 수출길이 좁아지고,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 안보 리스크가 커진다. 경제 안보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실상은 경제 종속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재명정부는 균형 외교를 내세우지만, 세계는 균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AI 반도체, 양자기술, 클린 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서 ‘탈중국·탈한국’ 공급망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압박하며 기술 흡수를 가속화하고 있다. 양쪽 모두 파트너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는 자기 진영의 ‘부속품’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이번 회담의 또 다른 핵심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연속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럴수록 미국은 한·미·일 안보 공조를 강화하고, 중국은 자극 자제를 요구한다. 결국 한국은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압박 사이에서 외교적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처지다.

이정부가 추진하는 ‘평화 프로세스 2.0’은 북한과의 대화보다 미국과 중국의 계산에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재시작점이 될지, 동북아 신냉전의 예고편이 될지는 결국 이 균형의 줄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자유를 말하지만, 그 자유의 중심에는 패권 유지가 있다. 중국은 공동 번영을 말하지만, 그 번영의 구조 속에는 종속적 질서가 있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자율을 외치지만, 실제 자율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신뢰의 균형에서 시작된다. 힘은 언제든 무력으로 변하지만, 신뢰는 대화와 제도로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이나 중국의 언어가 아니라, 한국의 언어로 된 ‘평화의 문법’이다. 한국은 이미 중견국이 아니다. GDP 세계 10위, 군사력 6위, 기술력 상위권. 그러나 여전히 스스로 전략을 세우기보다 외부의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피동 국가에 머물러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이 진짜 전략 국가로 서는 마지막 시험대다. 이정부가 이를 평화의 계기로 삼을지, 아니면 패권 게임의 말로로 남을지는 외교의 언어가 아니라 선택의 방향에서 판가름 난다.

한국은 지난 22일, 장영실함을 띄우며 기술 안보 자립을 외쳤다. 이제는 외교에서도 자립을 외쳐야 한다. 한국이 진정한 중재자·균형자로 서려면, 미국의 눈치도 중국의 압박도 넘어서는 한국형 국제관이 필요하다.

패권의 시대에도 평화의 문을 여는 국가는 존재했다. 핀란드는 냉전 속에서도 대화의 통로를 지켰고, 스위스는 중립을 넘어 신뢰의 브랜드가 됐다.

한국도 이제는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 대신 “무엇을 지킬 것이냐”로 답해야 한다. 평화란 힘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단순한 두 나라의 회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평화를 설계할 것인가, 패권에 종속될 것인가. 이제 그 답은 외교관의 손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 속에서 써 내려가야 한다.

한국이 미·중 정상회담 장소만 제공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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