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한·캄보디아 노동 및 범죄 구조의 불균형

2025.10.13 08:44:35 호수 0호

최근 몇 년 사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취업 사이트나 SNS 등에서 고소득 보장을 미끼로 입국을 유도한 뒤 강제로 주식 리딩방이나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끌어들이고, 마지막엔 피해자 가족에게 금품 송금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피해는 2022년 1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하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우리나라 대학생이 “캄보디아에 가서 은행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 프놈펜에 갔다가 납치 및 감금을 당한 후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9월에도 캄보디아 프놈펜 번화가 카페에서 50대 한국인 남성이 괴한들에게 납치와 감금, 고문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캄보디아로 5박6일간 여행을 떠났던 40대 한국인 남성도 현지에서 실종 후 혼수 상태로 현지 병원 중환자실에서 발견됐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 시엠립, 프놈펜 등 세계적 명소, 저렴한 물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동남아시아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한국인도 해마다 15~17만명이 꾸준히 방문해 왔고, 최근 범죄 우려 등으로 다소 줄었다고 하지만, 올해 7월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10만명을 넘었다.

캄보디아에선 한국인 다수가 참여하는 박람회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학생들의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봉사 프로그램도 자주 열리고 있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은 바로 이 점을 노린다. 한국 경제 및 한류 위상이 커지자, 한국인을 돈이 되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를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캄보디아는 경찰력과 치안 시스템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 경찰과 공무원 부패로 조직적인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협조도 어렵다 보니 대사관의 즉각적인 대처도 쉽지 않다.

한편 지난달 21일,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모여 민주노총이 개최한 ‘2025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이재명정부를 향해 강제노동 및 폭력 철폐,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노동권 보장 등 이주노동 정책의 전면 전환을 요구했다.

이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월 강제단속을 피해 숨었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2월에는 전남 영암 돼지 농장에서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며 이는 차별과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이주노동 제도가 낳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행사장에선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가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간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까지 소환해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방치를 비판했다.

필자는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사건과 2020년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캄보디아 노동자 사건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두 사건은 ‘한·캄보디아 노동 및 범죄 구조의 불균형’이라는 공통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포천 비닐하우스 사건은 2020년 열악한 노동·주거 환경에서 발생한 산업적·사회적 비극이고, 최근 캄보디아 납치 사건은 한국 자본의 그림자인 불법자금·환치기·도박 범죄망이 연루된 국제 범죄형 사건이다.

이 두 사건 모두 한·캄보디아 간 불평등한 구조를 반영한다. 한국은 캄보디아를 ‘값싼 노동력의 공급지’로, 캄보디아는 한국을 ‘돈이 흐르는 기회의 땅’으로 바라본다. 이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노동 착취와 범죄적 유혹이 공존하는 회색지대가 생긴다.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여성 이주노동자는 난방조차 되지 않는 숙소에서 병든 채 방치됐다. 그녀의 죽음은 ‘빈곤한 캄보디아 청년이 한국으로 와 겪은 착취의 끝’이었다. 반대로, 최근 캄보디아에서 납치된 한국인 대학생은 돈과 이익을 좇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둘 다 경제적 불균형이 낳은 폭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노동을 착취당하는 캄보디아인’이, 캄보디아에선 ‘범죄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이 등장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국 간 인력과 자본의 흐름이 제도적 신뢰 없이 사적 네트워크와 불법 구조에 의존할 때, 착취와 범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번식한다.

한·캄보디아 관계는 단순한 노동 협정이나 관광 비자 문제에 머물면 안 된다. 이제는 인권 중심의 양방향 관계로 재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부·고용노동부, 캄보디아의 내무부·노동부 간 상시 공조 채널을 만들어 이주노동자·교민·현지 취업자 안전망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캄보디아 여성과 프놈펜에서 납치된 한국 남성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사람의 생명은 언제까지 돈보다 가벼워져야 하나?”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안전은 의무고, 돈보다 생명이 귀중하다”고 했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이 11일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 사태와 관련해 외교부에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사건만 총력 대응할 게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협력해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함께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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