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71)총알 빗발치는 파도 속으로

  • 김영권 작가
2025.09.29 04:31:37 호수 1551호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앗!”

갑자기 용운이 신음을 흘렸다.

“왜 그래?”“총알이 귀를 스쳤나 봐.”

“괜찮아?”

“형, 상체를 숙이고 빨리 뛰어! 우릴 죽여도 된다는 특명을 내렸나 봐.”


“악마 새끼들!”

두 탈출자

두 탈출자는 마산포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뛰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펄 속에서 속도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곳은 무릎까지 빠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진흙 위를 기다시피 해야 했다. 황소도 삼킨다는 늪지대 얘기가 떠올라 용운은 머리털이 곤두서기도 했다.

“앗, 따가워…….”

앞서 가던 피에로가 갑자기 한쪽 발을 치켜들었다.

“왜 그래?”

“조개껍질에 찔려나 봐.”

“많이 아파?”

“음, 푹 찢어진 듯해. 급하니 우선 바닷속으로 숨자.”


“피가 많이 흐르면 안 돼. 바닷물이 피를 마구 빨아낼 텐데. 형, 일단 런닝구로 발을 감자.”

진흙으로 칠갑이 된 러닝셔츠를 찢어 발을 싸맸다. 이제 몸에 걸친 것이라곤 팬티 하나뿐이었다.

그때 바로 뒤쪽에서 셰퍼드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는 개펄 앞에서 잠시 멈칫거렸으나 곧 자신의 사명을 떠올렸는지 철벅거리며 쫒아 들어왔다.

“형, 잡히면 우린 끝장이야. 어서 앞만 보고 뛰어들어!”

용운은 피에로를 부축하며 재우쳤다. 그러나 그 순간 셰퍼드가 피에로의 종아리를 물고 늘어졌다.

피에로는 넘어져 뒹굴며 진흙투성이가 된 채 신음소리를 냈다.

용운은 다급한 나머지 진흙을 한 움큼 집어 퍼런 빛을 내며 위협하는 개의 눈에 대고 세게 비벼댔다. 개는 어쩔 줄 모르고 빙빙 맴을 돌며 컹컹거렸다.

그때 뒤 쫒아온 감시병들이 쌍욕을 섞어 소리쳤다.

“저 개보다 못한 인간 종자들! 이젠 어쩔 수 없다. 제대로 겨냥해서 죽여 버려! 포상금이 있어.”


뒤이어 하이에나의 웃음과 같은 괴이한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둘은 곧장 헐떡거리며 뛰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깊은 펄 속을 딛고 빼는 발소리만 들려왔다.

“아얏!”

갑자기 피에로가 소리를 내지르며 푹 엎어졌다.

“다리에 맞았어.”

“형, 일어서야만 해. 조금만 힘을 내.”

용운은 그를 일으켜 끌며 다급히 말했다.

“으음…… 그래, 빠삐용을 생각하며…….”

피에로는 그 상황에서도 영화 장면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검은 콜타르 같은 바다
지옥서 꿈을 찾아 수영

이윽고 바닷물이 찰랑찰랑 발목을 적셔 왔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수록 수위는 급속히 차올라 곧 배꼽을 넘어섰다.

“자, 출발이다!”

“좋아!”

총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그들의 뒤를 ㅤ쫒아왔다. 총알은 무정하다.

두 어린 탈출자는 러시안 룰렛보다도 더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운명을 시험하는지도 몰랐다. 순간은 영원과 통한다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다.

둘은 급히 심호흡을 한 뒤 바다에 몸을 띄웠다. 개소리와 총소리가 마구 섞여 밤바다를 흔들었다.

그 소리는 그들의 목숨을 일촉즉발의 순간에 멈추고 앗아갈 것만 같이 맹렬했다.

둘은 사력을 다해 검은 콜타르 같은 바다를 헤쳐 나갔다. 추적자들의 소리는 차츰 모깃소리처럼 희미해졌다.

여름이라지만 새벽 물은 차가웠다. 더구나 저 멀리 까마득한 마산포를 바라보자 벌써부터 몸이 떨렸다.

만일 저 넘실거리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도중에 좌초한다면, 지금 살아 숨쉬는 이 몸뚱이는 하나의 사물(死物)이 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표류하게 될 터였다.

“꿈을 찾아 가자!”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이 지옥에서?”

“응.”

“이곳을 빠져나가면 과연 천국이 있을까? 그곳은 어떤 천국일까?”

용운과 피에로는 서로 격려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천천히 헤엄을 쳐 나갔다.

차츰차츰 선감도는 멀어지고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로 진입했다.

하지만 마산포는 눈앞에 가물가물하기만 할 뿐 아무래도 가까워지지가 않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해변 위에서 바둥대는 두 마리의 개미처럼 보였다.

저수지나 얕은 해변에서 수영 연습을 할 때와는 달리 깊고 물결이 거센 한바다에서는 아무리 힘껏 헤엄을 쳐도 얼마 나아가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물살에 떠밀려 후진하기도 했다.

그래도 용운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한 뼘씩 한 뼘씩 전진해 나갔다.

세상에서 겪었던 온갖 고생을 떠올리며, 엄마를 생각하며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았다.

“구름아, 같이 가!”

자기 별명을 부르는 소리에 용운은 헤엄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피에로가 저 뒤에서 힘겹게 물결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용운은 팔을 수면 위에 쭉 편 채 기다렸다. 가까이 다가온 피에로의 얼굴은 창백한 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형, 왜 그래? 아직 반도 못 왔구만.”

“몰라. 생각보다 훨씬 힘드네…… 아까 갯벌에서 찔린 발이 저리고…… 총알 맞은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이상해. 피가 계속 흐르는 게 아닌가 몰라.”

피에로는 울상을 지었다. 그는 평소에 괴로울 때도 웃는 표정을 일부러 짓곤 했는지라 그것은 좀 생소한 느낌을 용운에게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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