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현혹> 제작진이 제주 숲에서 촬영을 마친 뒤 쓰레기를 남긴 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27일 한 제주도민은 자신의 SNS에 ‘드라마 촬영하고는 쓰레기를 숲에…에휴, 팬분들이 보낸 커피 홀더랑 함께…’라는 글과 함께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비닐봉투와 일회용품, 빈 생수병은 물론 인화성 물질인 부탄가스통까지 뒤엉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자칫 잘못하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특히 배우 얼굴이 새겨진 컵홀더까지 발견되면서 현장이 곧바로 특정 작품의 촬영지임이 드러났고, 팬들이 응원차 보낸 선물이 쓰레기더미 속에 방치된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늦게 끝난 촬영 탓에 어두워서 현장을 꼼꼼히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
촬영 현장은 통상 수십 개의 조명 장치들이 가동되는 장소인데, 그 밝기 속에서 쓰레기를 보지 못했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도 비판이 거세다. “정말 깜깜해서 치우지 못했더라도 다음날 다시 와서 확인했어야 한다” “촬영하면서 정리만 제대로 했어도 저 정도 양의 쓰레기가 남을 수가 없다” “저게 어둡다고 안 보일 쓰레기 양인가” 등의 냉담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책임 회피성 변명으로 들린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이 ‘민폐’ 논란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KBS2 <남주의 첫날 밤을 가져버렸다> 제작진은 촬영 과정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 병산서원 건물에 못질을 해 원형을 훼손해 논란이 일었다. 결국 KBS 측은 공식 사과와 함께 해당 촬영분을 전량 폐기했으며, 관계자 일부는 법적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23년에도 유사한 문제들이 잇따랐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촬영팀은 제주 유채꽃밭에서 촬영을 이유로 시민의 출입을 막고 고성을 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같은 해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제작진은 병원에서 아픈 아내를 찾아온 시민의 이동을 가로막아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작품만 달라졌을 뿐 ‘현장 민폐’라는 본질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방송사와 제작사 간의 외주 구조, 빠듯한 제작 일정, 지역 사회와의 소통 부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사들은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외주 제작을 확대해 왔고, 제작사는 정해진 기간 안에 방대한 분량을 촬영해야 하다 보니 현장 정리나 안전 관리가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촬영 장소를 제공하는 지역 주민과의 사전 협의나 사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갈등이 불거진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그러나 업계에선 단순히 일정이나 비용 문제로 돌리기보다는, 제작진 스스로의 의식 개선과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드라마가 아무리 화제작으로 떠오른다 한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신뢰를 잃는다면 빛은 바래기 마련”이라며 “제작 환경과 현장 관리까지 작품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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