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까지 교체해 달라” 아파트 ‘누수’ 덤터기 논란

2025.08.26 15:16:20 호수 0호

관리사무소 “누수 맞다” 주장
전문가 점검 결과 “흔적 없어”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아파트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 중 하나가 ‘누수 문제’다. 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 갈등은 윗집과 아랫집 사이를 넘어, 세입자·집주인·관리사무소까지 얽히면서 쉽게 풀리지 않는 소송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지난 2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아파트 세입자인데 누수 덮어 씌우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도와주세요’ 글의 사례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글 작성자이자 아파트 세입자인 A씨는 며칠 전 아랫집으로부터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연락을 받았다. 관리사무소 역시 해당 사진을 제시하며 A씨의 집에서 누수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관리소에서 권했던 특정 업체 대신 직접 전문가를 불러 확인을 진행했는데 다른 점검 결과를 받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배관이나 고무 패킹에서 새는 물은 전혀 없었으며, 아랫집이 문제 삼은 노란 물방울은 단순 결로 현상으로 곰팡이는 환기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지어 배관을 30분 이상 가동해도 누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집은 “천장 나무가 젖었으니 인테리어 교체까지 해달라”며 공사를 요구했고, 관리소 측에서도 “왜 우리가 알려준 업체를 안 썼느냐”며 노발대발했다.

여기에 관리실 기저실장은 “세입자는 빠지고 집주인과만 이야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고령의 나이여서 직접 현장에 나설 수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결국 책임 당사자가 아님에도 A씨는 홀로 관리사무소와 아랫집의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A씨는 “집주인이 80세 노인이시고 현실적으로 현장 감정이 불가능해 저희에게 일임하셨다”며 “공정하게 조사되길 바라기도 하고 과잉 요청하고 있는 것이 너무 괘씸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해당 글을 본 누리꾼들은 대부분 세입자 A씨를 응원하는 분위기다. “덤터기 씌우려다 실패한 것 같다. 관리소와 아랫집이 짜고 있는 것 아니냐” “나무가 한번 젖었다고 그렇게 빨리 썩지 않는다” “배관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결로나 환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등의 의견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업계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배관 누수라면 배관 주변(나사산 부근 또는 배관 표면)에 흔적이 있어야 한다”며 “방울이 맺히고 나무가 젖어 있는 것으로 보면 결로와 환기 부족으로 보인다. 천장 청소한다고 물 뿌리는 경우에 젖는 경우도 봤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비슷한 경험담을 전하며 “저희도 아랫집이 결로를 누수로 몰아갔지만, 결국 원인은 외벽 크랙이었다”며 “관리실에서 섭외한 업체가 무조건 윗집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작년에 세를 준 집에서 누수가 발생했다는 한 누리꾼은 “12층인데 찾고보니 14층에서 누수가 발생했었다. 마냥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누수”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역시 누수 문제는 단순히 윗집·아랫집 문제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용배관, 외벽 크랙, 심지어는 환기 문제까지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법률적으로 세입자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누수 손해배상은 소유자가 책임지며, 세입자는 특별한 과실이 없는 한 배상 의무가 없다”며 “아랫집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감정을 통해 책임 소재를 가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누수 문제는 당사자 간 합의가 어려울 경우 법적 절차로 넘어간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랫집이 윗집 소유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법원은 전문 감정인을 지정해 원인을 규명한다. 감정 비용은 원고가 선납하지만, 패소한 쪽이 부담하게 된다.


보험 활용도 유력한 대응 수단이지만,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일배책)은 보상 범위가 제한적이다. 본인 집 피해만 있을 경우에는 해당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이 보험은 타인의 신체 또는 재물에 끼친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래층에 누수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누수 탐지 비용, 긴급 방지 비용 등은 손해방지 비용으로 인정돼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 또 누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배관 교체, 방수 공사 등도 규모와 목적이 적절하면 손해방지 비용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A씨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관리사무소의 역할이다. 공동주택관리법 제55조에 따르면 관리사무소는 공용 부분의 유지·관리, 민원 접수, 회계 처리, 안전 관리 등으로 업무가 제한된다. 세대 내부 문제에서 특정 업체를 강요하거나 원인과 책임을 단정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누수 분쟁의 근본적 문제는 과학적·객관적 근거 없이 ‘윗집 책임’으로 몰리는 관행이라고 지적한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공정한 감정 절차를 보장하고, 관리사무소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누수 탐지 업체 관계자는 “층간 누수 갈등을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송 절차가 만만치 않아 가능하면 협의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다”며 “그럼에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26일 <일요시사>는 ▲아랫집이 요구하는 구체적 보수 범위와 비용 규모 ▲관리사무소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돌렸는지 ▲집주인 명의의 보험 가입 여부 등의 질의를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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