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휴대폰 구매 금액에 차이를 두지 못하도록 지원금을 제한했던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11년 만에 폐지된다. 앞으로는 매장별로 가격 정책이 달리 적용될 수 있어 조건을 잘 비교하면 이른바 ‘공짜폰’ 구매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2일부터 단통법이 폐지되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변경되는 내용은 ▲휴대폰 지원금 공시 의무 폐지 ▲추가 지원금 규제 완화 ▲가입 유형·요금제별 차별 금지 규정 폐지 ▲선택 약정 이용자 추가 지원금 허용 등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단통법이 폐지된 후부터는 이동통신사의 휴대폰 지원금 공시 의무가 폐지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요금제·가입 유형별 지원금을 누리집 등을 통해 자율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시지원금의 15% 이내로 제한됐던 유통점(대리점과 판매점) 추가 지원금 상한도 사라진다. 또 번호이동·신규가입 등 가입 유형별 지원금과 요금제별 지원금에 대한 엄격한 차별 금지 규정도 없어져 이동통신사와 유통점이 다양한 형태로 영업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단통법의 보완책으로 시행돼왔던 선택약정제도는 유지된다. 선택약정제는 단말기 지원금 대신 25%의 요금할인 혜택을 받는 방식으로, 기존엔 유통점 추가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변경됐다.
이날 방통위와 과기정통부는 “이번 결정으로 이동통신사와 유통점의 경쟁이 활성화돼 이용자 혜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정책이 통신시장 활성화 및 이용자 혜택 증가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알뜰폰(이동통신 재판매 사업자, MVNO) 이용자가 증가 추세인 점 등 단통법 시행 당시와 비교해 시장 환경 자체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에서 지난 1월 발표한 ‘알뜰폰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르면 알뜰폰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16.6%인 948만명으로 집계됐다.
알뜰폰 이용자 대다수는 자급제 단말기를 구입해 사용하기 때문에, 단말기 보조금 제한을 완화하는 이번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더한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매장별로 서로 다른 가격이 제시되면서 소비자의 혼란도 예상된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방통위·과기정통부는 “단통법 폐지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 혼란과 불완전 판매(판매자 설명과 계약서가 상이한 경우) 등 소비자 피해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며 “특히 정보 취약계층의 지원금 소외나 알뜰폰 대상 불공정 행위 등 제도 변경으로 인한 역기능이 나타나지 않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겠다”고 설명했다.

단통법은 지난 2014년, 이동통신사들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인한 가격 정보 불균형과 고객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당시 소비자들은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판매점을 찾아 이른바 ‘휴대폰 성지’를 돌며 발품 경쟁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 정보를 잘 아는 일부만 혜택을 보는 구조가 문제로 부각됐다.
이외에도 같은 단말기와 요금제를 선택하더라도 구매 시점이나 판매점에 따라 수십 만원의 가격 차이가 나는 일이 비일비재해 일명 ‘호갱(호구+고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법 시행 이후에도 문제가 해소되지 않자 다수의 언론에선 “단통법은 소비자의 구매 부담을 키워 판매량을 감소시켰고, 마케팅비를 줄여 수익성이 개선된 이동통신사만 배불렸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선 ‘단통법 폐지 및 바람직한 가계 통신비 저감 정책 마련 토론회’를 열어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단통법 폐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통신 이용자를 보호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목표 아래에서 무엇을 달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제조사에 대한 규제 및 유인책을 수립하고, 유예기간을 부여해야 한다. 이용자 보호 및 알뜰폰 사업자·소형 유통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장도 “폐지가 목적이 아닌 이용자 이익 증대가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면서 “유통업계와 시민단체, 제조업계 등의 의견을 많이 듣고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철 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실장은 “단통법이 폐지될 경우, 법 시행 이전에 나타났던 문제 재발이 충분히 예상된다”며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위한 단통법 폐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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