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대구는 보수의 심장으로 통한다. 박정희정부의 산업화 시대를 시작으로 보수 정당의 기반이 됐으며 빨간 깃발을 꽂기만 해도 당선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꺾은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대구가 지난 6·3 조기 대선 이후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이재명 대통령은 TK(대구·경북)출신이다. 그는 대선후보 당시 대구에 갖은 공을 들였다.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달 1일 대구를 찾아 막판 구애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도 좀…
이 대통령은 “대구는 우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그리고 저 이재명에게 참 어려운 곳이다. 이제는 좀 다를까”라고 물은 뒤 “저는 그럴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책이면 어떻고,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냐.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실력파’”라며 실용 정치를 거듭 강조했다.
TK에 산적한 현안도 막힘없이 뚫겠다고 자신했다. 이 대통령은 대구의 숙원 사업이던 신공항을 언급하며 “사업 지연 요인을 조속히 해소하겠다. 신공항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취수원 다변화 등 주민 숙원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신공항 스마트 물류단지 조성과 영일만항 확충 지원도 약속했다. 아울러 미래 신성장을 위한 바이오산업 육성과 이차전지·철강·수소 산업 동력, APEC 성공 개최 지원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의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려 동성로 광장 일대가 마비되는 일도 벌어졌다. 12·3 비상계엄과 국민의힘이 내란의 강을 허우적거리던 때인 만큼 민주당에서는 TK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23.22%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으면서 마의 30%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람이 쉽게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백날 2번 찍던 사람들인데, 아무리 1번을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손이 쉽게 움직이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과반이 넘는 67.62%를 득표했다. TK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첫 TK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셈이다.
‘실용주의’ 먹혔나? 지지율 50%
요동치는 여론 바라보는 국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오름세를 보였다. 주목할 점은 TK도 민심의 흐름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낙제점을 줬던 보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12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한 6월2주 차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를 묻는 질문에 긍정 평가가 58.6%, 부정 평가가 34.2%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은 47.7%로 나타났으며 3주 차에는 1.5%p 오른 49.2%, 4주 차에는 0.9%p 오른 50.1%로 상승세를 보였다. 취임 한 달 만에 TK에서 과반이 넘는 긍정 지지율을 견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이 보수의 마음을 움직였단 평이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내분으로 인한 반사이익 효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6월 4주차 민주당 지지도는 50.6%인 반면 국민의힘은 30.0%에 머물렀다.

두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가 95% 신뢰수준에 ±2.0%p, 정당 지지도 조사가 95% 신뢰수준에 ±3.1%p다. 응답률은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가 5.8%, 정당 지지도 조사가 4.9%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부여당을 향한 훈풍이 불고 있지만, 이런 숫자는 정권 초반의 기대감에 기반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정 지지율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 긍정 76.0% ▲박근혜 전 대통령 54.8% ▲문재인 전 대통령 81.6% ▲윤석열 전 대통령 긍정 52.1% 등으로 나타났다. 탄핵 정국 이뤄진 대선의 경우 다른 때보다 국정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단 분석이 뒤따른다.
어그러진 숙원 사업에 또다시 ‘싸늘’
대구 신공항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
문제는 이 같은 상승세를 이정부가 유지할 수 있는지다. 지지율은 오르내리는 게 자연스럽지만 현 상황에서는 작은 실책도 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경북 포항시 숙원 사업인 영일만 횡단대교 사업이다. 지난달 21일 정부 2차 추경안에서 포항-영덕고속도로 예산 2043억원 중 영일만 횡단대교 구간의 공사비 10821억원을 전액 삭감하자 곧바로 ‘TK 홀대론’이 나왔다.
2008년 처음 등장한 영일만대교는 매년 건설 계획과 국가도로망종합계획 등에 이름을 올렸지만 사업 적정성 검토를 거치면서 ‘경제성 부족’ 판정을 받아 번번이 무산됐다.
영일만대교 사업이 또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지역구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김정재·이상휘 의원은 공동 성명을 내고 “포항과 경북의 숙원인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이 이재명정부 시작과 함께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며 “정부는 ‘불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추경안에서 영일만 횡단대교 공사비를 전액 삭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토교통부는 최적 노선 선정을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고 정부 의지만 있다면 연내 착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업연도 전반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불용 가능성을 핑계로 예산을 삭감한 것은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에 대한 의지가 부족함을 천명한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민주당도 반발에 나섰다. 민주당 포항북구지역위원회와 포항남구·울릉지역위원회는 “국민의힘은 영일만대교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지 말라”며 “정부가 추경 예산에서 영일만대교 건설 예산을 뺀 것은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이어 “영일만대교는 이미 노선이 확정됐는데도 대안 노선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윤석열정부”라고 주장했다.
이정부가 TK 홀대론을 불식시키려면 공약으로 제시한 지역의 핵심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그중에서도 대구 신공항 건설사업은 TK를 향한 이정부의 의지를 볼 수 있는 가늠자로 꼽힌다.
발 맞출까?
새 정부 정책에 지역 사업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여야의 협치도 중요하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행정부시장은 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구 당정협의회에서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지역 공약을 하나하나 국정과제로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과의 연대는 필수”라며 “이번 당정협의회를 통해 선정된 사업들이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어, 새 정부의 국정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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