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순이익의 3배 지출
상식 초월한 자금 유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피자나라치킨공주’ 브랜드를 운영하는 ‘리치빔’이 폭탄 배당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순식간에 600억원 넘게 빠져나간 모양새다. 9할 이상은 보유 주식수에 따라 오너에게 귀속됐다. 지분 매각이 지연되자, 차선책으로 회사 곳간을 털었다고 볼 법한 사안이다.

1999년 설립된 ‘리치빔’은 피자·치킨 프랜차이즈 ‘피자나라치킨공주’를 운영하는 중견 외식기업으로, 2023년 말 기준 가맹점 505곳을 확보하는 등 동종 업계에서 확실한 기반을 마련한 모습이다. 이에 힘입어 점진적인 매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2022년 788억원이었던 리치빔 매출은 이듬해 800억원을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는 1000억원을 넘볼 정도였다.
의도된 작업
수익성도 남부러울 것 없는 수준이다. 리치빔의 최근 3년(2022년~지난해) 영업이익은 ▲2022년 134억원 ▲2023년 180억원 ▲지난해 212억원 등이었고, 이 시기에 거둔 연 평균 영업이익률은 20.4%다.
순조로운 영업활동이 거듭된 결과 리치빔은 매우 탄탄한 재정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 리치빔의 총자산 564억원 가운데 부채는 60억원에 불과하며, 외부에서 끌어 온 차입금은 전혀 없다. 부채비율은 적정 수준(200% 이하)을 한참 밑도는 11.9%로 집계됐다.
다만 최근 들어 자본의 감소가 극명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3년 704억원이었던 리치빔의 총자본은 지난해 말 기준 504억원으로 줄었는데, 200억원가량 감소한 이익잉여금이 반영된 여파였다.
이익잉여금 감소는 현금배당 때문이었다. 재무제표 분석 결과 리치빔은 지난해 중간배당 381억원, 연차배당 230억원 등 총 611억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중간배당으로만 95억원을 집행했던 전년과 비교해 6.4배가량 확대된 수치다. 지난해 재무제표에는 배당에 의한 현금 지출은 중간배당 실시에 따른 381억원만 반영됐고, 연차배당 230억원은 올해 들어 회계 처리됐다.
현금배당의 기본 취지가 주주에게 회사의 이익을 환원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적정 수준에서 이뤄지는 배당 정책은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리치빔의 경우 적정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실제로 2023년 58.1%였던 배당성향은 지난해 338.6%로 조정됐으며, 이는 배당에 할애한 현금이 당해 순이익보다 3.4배가량 컸음을 의미한다. 해당 기간 리치빔이 기록한 순이익은 163억원(2023년), 180억원(지난해)이다.

고배당 기조는 설립자인 남양우 대표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겼다. 지난해 말 기준 남 대표는 리치빔 지분 91.5%(4만2971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나머지 지분 8.5%(3990주)는 임직원이 나눠 갖는 구조다.
남 대표는 보유 주식수에 따라 지난해 리치빔이 내놓은 배당금 611억원 중 559억원을 수령했다. 중간배당으로 얻은 349억원(1주당 81만1312원)과 결산배당으로 획득한 210억원(1주당 48만9768원)을 합산한 값이다. 2023년 확보한 배당금 87억원(1주당 20만2296원)을 더하면 최근 2년간 배당 수령액은 600억원을 훌쩍 넘긴다.
최근 리치빔이 실시한 고배당 정책은 선제적 결정으로 읽힌다. 제3자에게 회사를 넘기기에 앞서, 풍부한 이익잉여금을 현금 확보 수단으로 활용한 인상이 짙다.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중견 외식기업 인수가 활발히 이뤄지는 추세다. 2020년 큐캐피탈파트너스와 코스톤아시아를 새 주인으로 맞이한 노랑푸드, 2023년 초 오케스트라프라이빗에쿼티와 얌브랜즈에 인수된 KFC코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남 대표 역시 흐름에 동참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4년 전부터 별도의 자문사 없이 리치빔 지분 인수자를 찾고자 동분서주했고, 급기야 지난해 7월경 PEF 운용사인 ‘SG프라이빗에쿼티’가 리치빔의 새 주인으로 등극할 것으로 점쳐졌다. 이 무렵 SG프라이빗에쿼티는 남 대표가 보유한 리치빔 지분 91.3%를 약 2000억원에 인수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보다 큰 배꼽
SG프라이빗에쿼티는 블라인드 펀드 4호 등을 활용해 인수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인수 시도는 지난해 9월경 사실상 결렬됐다. 양측의 거래조건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절차가 중단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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