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태’ 뉴진스 미래

2025.03.31 08:51:09 호수 1525호

국민 걸그룹 빚더미 앉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회사와 자회사 대표 간의 갈등에 소속 아이돌이 끼어들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다툼처럼 보였지만 팬과 여론이 연예인 쪽에 서면서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 최근 1년여 동안 이어진 갈등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이돌 측의 완패였다. 모든 화살이 전면에 나섰던 아이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차별 피해자인가, 거짓말쟁이인가.



지난해 4월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어도어는 하이브의 자회사로 아이돌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하이브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갈등은 빌리프랩, 쏘스뮤직 등 또 다른 자회사로까지 번지며 법정 공방으로 확산했다.

등 돌린 여론

이때까지만 해도 뉴진스는 갈등의 주체가 아니었다. 민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실제 사태 초기에는 민 전 대표가 하이브와 ‘맞다이’를 벌이는 모양새였다.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공세에 기자회견으로 맞섰다. 특히 민 전 대표의 1차 기자회견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여론을 흔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를 어도어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고 같은 날 김주영 현 대표를 선임했다. 2019년 하이브 CBO(최고브랜드관리자)로 합류해 2021년 11월 어도어 대표가 된 지 3년 만에 자리서 내려온 것이다. 이때부터 하이브 사태에 뉴진스가 직접 참전하면서 전선이 넓어졌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 엄마’로 불리며 멤버들과 유대감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뉴진스 멤버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시상식 소감 등을 통해 민 전 대표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지만 어도어나 하이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9월 뉴진스 멤버들이 유튜브를 통해 ‘기습’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크게 요동쳤다.

이들은 “저희가 원하는 건 민희진 대표가 대표로 있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의 어도어”라면서 민 전 대표의 복귀를 주장했다. 이어 “데뷔 후에도 많은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연습생 시절 영상과 의료기록 등 사적인 기록이 공개됐다.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회사에서 이런 자료를 유출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됐다”고 폭로했다.

국정감사에서까지 언급된 멤버 하니의 ‘무시해’ 주장도 이때 나왔다. 하니는 이날 라이브 방송 중 하이브 건물서 자신을 무시하라고 한 매니저의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상상도 못한 일을 당했는데 사과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켜주는 사람도 없는데 은근히 따돌림받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니는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하이브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데뷔 초반부터 어떤 높은 분을 많이 마주쳤는데 인사를 한번도 안 받으셨다”며 “직업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하니는 해당 인물을 정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방시혁 하이브 의장으로 추정됐다.

뉴진스가 라이브 방송, 국감 출석 등을 통해 언급한 내용은 고스란히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대표이사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던 민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어도어를 완전히 떠난 이후부터다. 당시 민 전 대표는 어도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하이브가 변하지 않아 시간 낭비라는 판단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시작은 내용증명이었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해 11월13일 민 전 대표 복귀, 하이브 내부 문건 속 뉴진스를 부적절하게 언급한 것에 대한 조치, ‘무시해’ 발언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면서 2주 안에 이런 요구사항이 시정되지 않으면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도어 제기한 가처분 소송서 완패
그룹명 바꾸고 독자활동 꾀했지만…

하이브 내부 문건으로 알려진 ‘음악산업리포트’ 내용 중 ‘뉴아르(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를 언급하며 ‘뉴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라는 문구를 문제 삼은 것이다. 연예기획사와 아이돌의 동향 및 평판 등을 적나라하게 기재한 음악산업리포트는 국감서 공개돼 큰 논란을 일으켰다.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해 11월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하이브와 어도어가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거나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배경이었다. 당시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계약 해지가 가능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어도어는 법적 대응으로 맞섰다. 지난 1월 광고계약 체결금지 및 기획자 지위보전 가처분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광고뿐만 아니라 뉴진스의 작사·작곡·연주·가창 등 모든 음악 활동과 그외 부수적 활동까지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뉴진스 멤버 부모들이 만든 SNS를 통해 알려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공모를 통해 결정된 ‘NJZ’라는 새로운 그룹명을 공개하고 독자 활동에 나섰다. 홍콩서 열리는 콘서트에 출연해 신곡을 공개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거침없던 뉴진스의 행보는 최근 나온 법원의 판결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가처분 소송서 어도어의 손을 들어주면서 뉴진스는 독자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지난 21일 “현재까지 제출된 뉴진스의 주장과 자료만으로는 어도어가 전속계약상의 중요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전속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해 전속계약의 토대가 되는 상호 간의 신뢰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뉴진스 측이 주장한 11가지의 전속계약 해지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어도어는 뉴진스에게 정산 의무 등 전속계약 상 중요한 의무를 대부분 이행했다”며 오히려 “뉴진스의 일방적인 전속계약 해지 통보로 어도어가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어도어는 매우 높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명의 연습생이었던 뉴진스의 성공적인 연예 활동을 위해 오랜 기간 전폭적 지원과 노력을 하고 대규모 자금까지 투자했다”며 “데뷔 후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 뉴진스가 전속계약 체결 후 2년여 만에 일방적으로 전속계약 관계서 이탈한다면 어도어로서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고 덧붙였다.

뉴진스는 판결 이후 홍콩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해 무대를 진행한 뒤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어도어와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가처분 인용 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의 팬덤인 ‘팀버니즈’는 끝까지 멤버들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뉴진스의 앞길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여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점이 뉴진스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동안 뉴진스가 대형 연예기획사인 하이브, 어도어와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팬덤과 여론의 전폭적인 응원이었는데 이번 가처분 판결 이후 지지세가 꺾이고 있다.

뉴진스의 행보에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뉴진스가 <뉴욕타임즈>와 진행한 인터뷰가 기름을 부었다. 뉴진스가 인터뷰서 한 “K-pop(팝)에서는 회사가 아티스트를 제품처럼 취급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마치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등의 발언에 “선을 넘었다”는 말이 나왔다.

가시밭길


법조계는 뉴진스가 본안 소송서 이길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뉴진스가 주장한 바가 단 하나도 법원서 인정되지 않은 만큼 판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결과는 그대로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뉴진스가 현 상황서도 하이브나 어도어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일각에서는 천문학적인 ‘위약금 엔딩’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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