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일촌’ 맺기와 ‘파도타기’로 온라인 인맥 지도를 넓혔던 추억의 플랫폼.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흐름을 빼앗기고 트위터·페이스북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싸이월드가 ‘두 번째 부활’을 외치며 올해 하반기 우리 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1999년 국내 첫 ‘인맥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모토로 닻을 올린 싸이월드는 2001년 ‘미니홈피’라는 혁신적인 개인 공간 서비스를 선보이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당시 경쟁 서비스였던 프리챌의 유료화 실패는 싸이월드에겐 호재로 작용했다. 늘어나는 트래픽에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지만,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된 후 안정적인 서비스와 네이트닷컴과의 시너지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2004년 1000만명, 2007년 2000만명을 넘어 32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국민 SNS’ 타이틀을 굳혔다. 이용자들은 ‘도토리’로 미니미와 미니룸을 꾸미고, BGM을 구매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뽐냈다. ‘퍼가요~’와 함께 좋은 글과 사진을 공유하고, 방명록에 안부를 묻는 소소한 일상은 2000년대 청춘들의 ‘디지털 문화’ 그 자체였다.
수익도 어마무시했다. 2009년까지 이어진 전성기 동안 싸이월드는 도토리 판매만으로 연 1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싸이월드의 아성은 모바일 시대의 거센 파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PC 기반 서비스에 안주하는 사이 페이스북·트위터 등 기민하게 모바일에 적응한 글로벌 SNS들이 젊은 층을 빠르게 흡수했기 때문이다.
‘페트 직격탄’을 맞은 싸이월드는 2019년 사실상 서비스가 종료됐다. 이후 2022년 싸이월드제트가 야심 차게 부활을 선언했지만 수차례 연기를 거듭하며 기존 이용자들의 실망감만 안겼다. 영상, 다이어리 등의 주요 게시글 대부분이 복구되지 않은 것이 실패의 큰 요인이었다는 게 당시 업계의 분위기였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싸이커뮤니케이션즈(이하 싸이컴즈)가 지난해 11월 싸이월드제트로부터 사업권과 자산을 인수하며 마침내 ‘진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싸이컴즈는 3200만명의 회원 정보와 170억장의 사진, 1억5000만개의 동영상 등 방대한 데이터 복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회원 수가 국민 인구 수 절반을 넘는 만큼, 개인정보 보안도 철저히 한다는 계획이다. 싸이컴즈는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GDDR) 수준의 기준을 적용하며 올해 상반기 베타 서비스를, 하반기 정식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싸이월드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은 단연 ‘추억’ 소환에 있다. 싸이컴즈는 복원된 사진과 동영상을 고화질로 제공하고, ‘마이홈’과 ‘클럽’ 기능을 통해 개인 공간과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3D로 진화한 ‘미니미’ 또한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싸이월드의 앞길이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 스레드, 페이스북 등 쟁쟁한 SNS들이 시장을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숏폼 콘텐츠를 앞세운 인스타그램의 철옹성은 매우 공고하다.
과거의 향수만으로는 10·20세대는 물론, 반복된 부활 예고에 지친 30·4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일촌이나 방명록, 댓글과 같은 데이터 복구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제대로 된 추억 소환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점도 존재한다.
특히 방명록 등의 데이터는 이전 법인 간의 백업 과정서 한 차례 소실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싸이컴즈가 내세우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차별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일상 공유보다는 ‘개인적 기록과 소통’에 집중하는 네이버 블로그의 성장세는 싸이월드의 ‘마이홈’ 서비스가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이홈은 앱 첫 화면이자 사용자의 개인 공간으로, 카카오톡 ‘멀티프로필과’ 유사하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고 사진과 글을 쉽게 작성·관리할 수 있다.
또 미니게임 등 게임 요소를 접목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수익 모델까지 확보하려는 전략도 엿보인다. 일촌의 경우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과거의 인맥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새로운 관계 맺기에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는 게 싸이컴즈의 구상이다.
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 다음과 국내 대형 게임사인 넥슨 출신의 함영철 대표를 비롯한 IT 업계 베테랑들로 구성된 싸이컴즈의 전문성 역시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결국 싸이월드의 재기는 단순한 추억팔이를 넘어, 현재의 SNS 환경서 사용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난항이 예상되지만, ‘나만의 공간’에 대한 니즈와 충성도 높은 기존 이용자층, 아울러 새로운 기술력의 융합은 싸이컴즈가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어볼 만한 이유다.
올해 하반기 싸이월드가 잊혀진 왕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SNS의 판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왕의 귀환(?)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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