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상식이 통하지 않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인 사이에서 폭력이 난무한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런 비정상이 우리 사회서 발생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교제 폭력’은 현재 또는 전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으로, 가정폭력이나 배우자 폭력을 포함하는 ‘친밀한 관계 당사자 간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의 하나로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간주되는 범죄 행위다. 2023년에만 교제 폭력으로 7만7150건이 접수됐으며, 이는 3년 전과 비교해 56.7%나 증가한 수치다.
교제 폭력을 이해하려면 관련된 스토킹, 보복 등 일련의 범죄 행위를 연장선상에 두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이라고 하면 ‘낯선 사람’을 떠올리지만, 사실 스토커의 대부분은 전 연인이나 전 배우자다. 여기서 스토킹과 교제 폭력의 연결고리가 있다. 연인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스토킹을 이해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교제 폭력은 연인관계가 유지되지 않거나 한쪽이 관계를 정리하려는 경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이별 범죄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별 범죄는 어느 일방은 이별을 바라지만 다른 일방서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이다.
이별을 원치 않는 한쪽서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이것이 지속되면 스토킹 범죄가 되는 것이다. 관계를 계속 맺고 싶은 바람과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이 곧 스토킹이고, 스토킹이 반복되면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보복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때라도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왜 끔찍한 폭력을 가하느냐다.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교제 폭력은 헤어짐과 이별에 따르는 보복적 폭력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랑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안전 이별>서 “이별 그 자체가 비극은 아니며, 이별서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비극”이라고 언급했다. 이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잘못된 이별이 무서운 것은 집 주소, 전화번호, 직장, 가족·친지 등 상대에 대한 정보가 노출돼 피해가 확산되거나 두려움이 많아져 신고도 못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제 폭력 가해자의 77%는 남성이라고 한다. 여기서 교제 폭력의 동기나 이유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연애를 지배와 소유의 관계로 생각하는 남성의 잘못된 가부장적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남성의 몫이고, 여성에게는 만남을 거부하거나 헤어짐을 통보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교제 폭력을 낳고, 헤어질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이별 범죄를 초래하는 것이다.
물론 성숙하지 못한 이별도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남성의 지배와 소유 의식의 문제다. 이별이 자신의 잘못이나 모자람이 아니라 상대 여성의 ‘못됨’ 때문이라는 생각에 폭력마저 정당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남성의 여성 혐오, 분노, 열등감 등이 더해지면 이별을 통보받은 남성은 상실감과 박탈감이 커지면서 증오와 복수심이 증폭된다. 남성 우월의식에 사로잡히면 응징과 보복이라는 폭력의 개연성이나 폭력의 정도는 더욱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