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㉔완전히 수동적인 동물들

  • 김영권 작가
2024.11.04 04:00:00 호수 1504호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장이나 반장들은 상부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광분했다.

성과가 좋은 사(舍)나 반에는 상이 주어지고 나쁜 반엔 벌이 주어졌으므로 사장들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하고 조 원장의 좌우명을 대신해서 외치며 발악을 했다. 

생사여탈권

원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장들 중엔 자기가 혁명 정권의 슬로건을 실행하는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자도 있었다.

폭행과 고문이 일상다반사로 자행되어 수많은 청소년이 꽃봉오리를 피우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갔다. 하루에도 많을 때는 서너 송이의 어린 목숨이 떨어져서 공동묘지에 내던져졌다.


또 날이 밝았다. 고립된 섬에서의 막막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원생들은 일렬로 질서정연히 작업장까지 걷기 시작했다.

만일 도중에 좌우를 둘러보거나 앞 사람과 간격이 벌어지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던 사장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선감원에는 염전, 목공소, 세탁소 등의 작업장이 있었지만 초짜들은 대부분 종이꽃을 만드는 곳으로 갔다. 공장으로 들어서면 작업대가 쭉 열을 지어 놓여 있었다. 

초짜들은 조화(造花)의 부속품인 꽃잎, 꽃받침, 꽃자루 따위를 만들었는데, 한 사람당 하루의 정량은 50개였다.

하지만 그 50개는 두세 달 정도 숙달된 아이들도 채우기가 힘든 숫자였는데, 처음 작업장에 나온 아이들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정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녁마다 모자란 숫자만큼 굵은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숙달이 안 된 아이들은 보통 20대씩 얻어터졌고, 손놀림이 제법 빠른 아이들도 매일 몇 대씩은 어김없이 맞곤 했다.

그러다 보니 손바닥이 불그죽죽하게 변해 꼬집어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갑자기 용운 옆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꽃받침을 만드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던 용운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옆의 아이가 어떻게든 매를 모면해 보려고 꽃자루를 대충 빨리빨리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일을 하다보면 쉴 사이 없이 뒤를 오락가락하는 사장이나 반장한테 걸려 느닷없이 몽둥이를 맞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너희 놈들이 억울하다고 지랄할 건 없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려 하고, 이게 네놈들의 본성이야! 전생에 얼마나 악독하게 살았으면 지금 이런 곳에서 이런 꼴로 썩고 있겠어, 응?” 


사장 놈은 지껄이고 있었지만, 그 말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정량을 채우려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는 아이도 없었다. 참고 참았다가 작업이 끝나 방으로 돌아온 후에 변소 간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작업중지’라는 구령이 떨어진 다음에도 원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만들려고 작업대 밑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안간힘을 쓰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운동시간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아쉬워 운동을 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여기저기 맥이 빠져 앉아서는 오직 꽃잎 만드는 걱정만 했다. 

그 종이꽃을 가슴에 달거나 집안 응접실 등에 장식해 놓고 바라볼 사람들은 원생들의 피땀과 고통이 새겨진 꽃이라는 사실을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느닷없는 몽둥이 맞는 소리
남일 같지 않은 처절한 죽음

원생들은 아침에 자리서 일어나 밤에 누울 때까지 완전히 기계 같은 틀 속에서 다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했다.

잠시의 틈도 없이 계속 감시하고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극단적인 분위기는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매를 들면 엉덩이를 갖다대는 완전히 수동적인 동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정 같은 것은 애초부터 통하지 않는, 철투철미하게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거대한 폭력집단이었다. 그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굴복까지도 요구하는 삶이었다.


“아악!”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용운이 쳐다보니 한 아이가 매를 맞다 말고 왼손을 쳐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매가 너무 아프니까 엉겁결에 손을 갖다댔다가 손뼈가 작살났는지 곧 무섭게 부어올랐다.    

“이 새끼가, 니네 집 안방인 줄 알어? 어따 대고 소릴 질러!”

사장은 겁먹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아이 등짝에다 다시 몽둥이질을 하더니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까지 때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앗! 저게 뭐지?”

한 아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 돌아보았다.

운동장 가의 큰 나무 가지에 한 아이가 모포를 찢어 만든 줄로 목을 매달고 늘어져 있었다. 튀어나올 듯한 두 눈과 얼굴은 피가 몰려 시뻘겋게 변하고 혓바닥은 쑥 내민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또 하루는 식당 쪽이 웅성웅성했다. 알고 보니 어떤 아이 하나가 할복자살을 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식당이 텅 빈 시간을 노려 몰래 기어들어가 이것저것 잔뜩 훔쳐 먹고는 식칼로 자신의 배를 갈라 버렸던 것이다.

역한 피비린내와 함께 식당 바닥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히 고여 흐르고 있었고, 벽에도 온통 피가 튀어 있었다. 그리고 피에 범벅이 된 그 아이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굶주려서 빼빼 마른 그 아이의 해쓱한 얼굴은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축사에서 일하던 그애는 언젠가 이런 말을 중얼거렸었다. 

“소 돼지는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은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또 폭력의 공포심도 없이 저토록 해맑은 눈망울인데…… 우린 오히려 짐승보다 더 굶주리고 징그러운 폭행의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 견뎌야 하니…….”

대충 사고사

용운은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처절하게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일이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이기도 했다.

이 속에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던 것이다. 원생이 죽어도 외부로 알려지면 골치 아프겠다 싶은 선감원 측에서는 대충 사고사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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