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경찰청장 탄핵 청원을 보는 또 다른 시선

  • 이윤호 교수
2024.11.02 00:00:00 호수 1504호

현직 경찰청장의 탄핵을 요청하는 청원에 수만명이 동의해 관심을 끌고 있다. 경찰 역사상 처음이라는 청장 탄핵 청원의 내용은 ‘경찰과 시민을 죽이는 경찰청장의 지시에 대한 탄핵 요청’이라고 한다. 



지역별 사정이나 인력 부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역 관서 근무 감독·관리 체계 개선 대책’에 따라 과도한 통제가 이뤄지자,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경찰관의 업무 강도만 높아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경찰청장에 대한 탄핵 청원은 어쩌면 올해 들어 대통령을 비롯해 대법관, 국방부 장관, 행안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방통위원장, 심지어 현직 검사에 이르기까지 빈발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탄핵 청원은 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반면, 경찰청장 탄핵은 일선 경찰관들이 청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번 청원서 제기된 경찰의 근무 환경 및 처우 문제는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찰이라는 직업은 ‘열악한 근무 여건과 박봉’으로 표현됐다. 최근 들어 다소 개선되는 듯 보였던 처우 문제가 이번에 다시 공론화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악화된 근무 환경은 온전히 청장만의 탓일까? 청원서 제기된 일선 경찰관의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업무의 과중이라기보다 업무의 편중이나 불균형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설사 경찰관의 업무가 과도하더라도 그것이 청장만의 잘못일까? 일선 경찰관의 업무를 과중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 경찰은 절대적 수치만 놓고 보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결코 열악하지 않다. 경찰관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의 수는 미국·일본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일부 경찰관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만 할까? 

결국은 경찰 조직구조의 문제다. 미국 경찰이 대체로 5-6개의 계급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11개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조직이 철탑 혹은 항아리 형상을 띤다. 일선 현장 근무 계급보다 그들을 지휘·감독하는 계급이 더 많은 것이다. 

경찰조직은 계급을 줄이고 현장 인력이 최대한 많아질 수 되도록 ‘부챗살형’이어야 한다. 지휘·감독하는 계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행정 인력 또는 사무실 근무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외국 학자들은 엄청난 크기의 경찰서를 보고 놀란다. 건물이 크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은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어야 한다. 사이버 범죄 등 외근보다 내근을 요하는 현장 업무도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경찰 입직 창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경찰이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된 원인이 아닐까 한다. 미국서 경찰관이 되려면 Patrolman, 우리로 말하자면 순경부터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왜일까? 경찰 업무는 표준화하기 힘들고, 소위 말하는 ‘매뉴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책으로 배우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경찰 업무를 직접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순경이 아닌 경위 등 간부로서 시작한다면 순경, 경장, 경사라는 일선 경찰 업무를 경험할 수 없지 않은가. 일선 업무를 건너뛴 경찰은 ‘법 집행관(Law Enforcer)’이라기보다는 ‘경찰 행정가(Police Administrator)’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경찰 대책이나 정책이 일선 사정을 모르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경찰청장 탄핵 청원에 담긴 내용을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많은 경찰이 과도한 업무 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정을 경찰청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청장 탄핵보다는 입직 창구 순경으로의 단일화, 계급의 축소, 내근 비율의 절대적 축소 등 조직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라는 청원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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