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가치로 표시되는 세상 모든 물질의 가치는 시간이 가면 자연 감소한다. 간혹 귀중한 사료적 가치나 보존 가치가 있는 골동품이라면 예외가 되기도 한다.
때론 가치가 오르락 내리락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난다면 예외가 없다. 가격이 오른다는 게 반드시 물질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결과 물건에 표시된 숫자(가격)가 커지기도 한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가격 변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돈(가격)과 사물의 관계는 평행하지 않아서 그 명목가치와 실질적 가치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원화 가치에 달러화의 관계가 개입되면 얘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어떤 통화로 가격을 표시하느냐에 따라 상대적 가치는 시시각각 변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의 값이 오르기를 고대한다. 그것이 본질 가치가 아니라 숫자일 뿐이라도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건 주식과 부동산이다. 이것의 가치 평가는 너무도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므로 시장가격에 의해 표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도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경제를 보면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의 대폭락 조짐이 보인다.
경제의 흐름에 이상 징후가 느껴진다는 얘기다.
세상에 돈이 많아져서 무엇이 나쁠까? 유례없이 늘어나는 통화량 때문에 인플레가 된다지만 정작 심각한 건 개인의 실질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구경도 못 해본 돈이 그저 늘어났다는 이유로 내가 가난해진다”는 역설적인 현상에 대해 간단하고도 명료한 설명은 찾기 어렵다.
통화 가치 안정을 본연의 임무로 가진 한국은행은 무기력해 보인다.
몇 년 만에 집값이 5배, 10배 뛰어도 누구도 그것이 인플레이션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집 가진 사람들만 행복한 저물가 시대엔 금리가 0%대까지 끌려 내려왔다. 기이한 집값 상승이 한국은행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도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대주주라기엔 민망할 만큼 터무니없이 적은 주식을 가졌지만, 오너는 헌법에도 없는 경영권을 절대 불멸의 권리처럼 주장하며 회삿돈을 마음대로 움직인다.
이런 오너라면 주주들에게 후한 배당을 한다는 생각은 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채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주식시장은 조금만 좋아질 만하면 증자 물량을 폭탄처럼 터뜨린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회사를 분할하거나 합병해서 수급 구조를 바꿔버린다.
그들만의 리그, 발행시장(도매시장)서 언제 얼마나 물량을 쏟아낼지 모른다.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거래하는 개미들은 소매시장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고객과 비슷하다.
애당초 돈 벌기도 힘들고 주식시장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화폐량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러운 경제 성장의 결과도 아니다.
그런데도 금리만 더 내리면, 돈을 더 많이 공급하면, 집을 더 많이 지어서 공급량을 늘리면, 채권 발행을 늘리고 주식을 더 많이 찍어서 시장에 풀어내면 정말 상황이 나아질까?
모든 기능과 효용엔 한계가 있다. 이 모순적 상황이 맞이한 한계는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 추락을 시작한다. 그다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시장의 체계적 위험(System Risk)이 커지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체계적 위험이 발현되면 그게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채권이든 하나의 시장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금융경제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
과잉(Surplus)의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소가 과속 팽창한 통화량에 있다. 호흡 부족 환자에겐 산소호흡기를 통해 강제호흡이라도 할 수 있다.
과호흡은 심리적, 발작적 증상이라 스스로 안정시키지 못하면 답은 없다. 화폐량 증가가 그렇다. 임계 속도에 이르면 경제는 발작을 시작할 것이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우리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지금도 금리인하 소식만 기다린다. 끝까지,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전투적 자세를 고수하는 모양새다.
[조용래는?]
▲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 <또 하나의 가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