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양형의 불편한 진실 – 감경 인자로서의 반성문

  • 이윤호 교수
2024.05.31 13:05:31 호수 1482호

범죄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의자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형이 선고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선처를 구하려는 의도로 제출한 반성문과 합의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려는 형사공탁이 상식을 벗어난 양형의 이유가 되곤 한다.



실제로 적게는 수십번서 많게는 수백번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것이 감형의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유인해 추행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어금니 아빠’도 1심서 선고된 사형이 2심에서는 “죄질이 중대하다”면서도 반성문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2019년 1심 사건서 양형기준이 적용된 사건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양형기준에 ‘진지한 반성’이 적용된 사건은 전체 범죄군 중에서 39.9%였고, 성범죄의 경우 70.9%에 달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진지한 반성’이 형의 감경 요소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범행이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피의자와, 그렇지 않는 피의자에 대한 양형은 구분돼야 한다.

그럼에도 반성문의 효력이 미치는 적용 대상을 비롯해 반성의 시기·방법·내용 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성문은 양형서 ‘참고자료’에 불과함에도 현실에서는 단순 참고자료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변호사는 피의자에게 반성문 제출을 권하고, 심지어 반성문을 대필하는 업체까지 성행하고 있다. 대필 반성문이 진지한 반성인지, 반성문이 참고자료로 수용되는 게 옳은지 되짚어볼 일이다. 

진정한 반성은 재판부가 아닌 피해자 및 가족에게, 글이 아닌 행동으로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자가 그 사죄를 받아들여 용서해야 진정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성문은 적어도 피해자가 ‘승인’할 때만 참고자료로 쓰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서 반성문은 “판사님, 검사님, 죄송합니다. 용서하고 선처해주십시오”라는 읍소만 가득할 뿐이다.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형의 감경을 위한 억지 수단에 불과하다.

사실 ‘배척(exclusion)’보다는 ‘포용(inclusion)’이 최선의 형사정책일 수 있고, 이런 면에서 전제가 되는 건 피해자의 용서다. 용서는 관계와 피해 회복의 필요조건이기에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최근 형사정책의 큰 흐름은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다. 회복적 사법의 핵심 키워드가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사법제도가 ‘범죄자-지향(offender-oriented)과 범죄자-중심(offender-centered)’서 ‘피해자-지향(victim-oriented)과 피해자-중심(victim-centered)’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문이 감경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현 세태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반성문이 원래 취지에 맞게 작동하려면 반성의 진정성과 피해자의 용서가 전제돼야 한다. 진정성 검증을 위한 최고·최후의 방법은 어쩌면 피해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피해자(영향) 진술(victim (impact) statement)’ 기회 부여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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