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태’ 연루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현역의원 평가서 하위 20%에 든 김 부의장이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옮겨가면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김 부의장을 향해 “줄 서면 다 취업되는 거냐”고 꼬집었다. 사건의 핵심인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22년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지만, 석연찮다는 눈초리다.
지난 3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로 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김 부의장이 신한은행 채용 비리 연루 의혹에 관한 명쾌한 소명을 내놓지 못하면서 민주당서 컷오프 수순을 밟았다. 김 부의장은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이 없고 ‘소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특이자 자녀
리스트 관리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윤승욱 전 신한은행 부행장을 비롯한 인사부장들이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총 8회에 걸쳐 반기별로 시행된 신입사원 채용 과정서 특혜를 제공하거나 점수를 임의로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검찰은 조 회장과 임원들이 면접위원의 공정한 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2018년 10월 재판에 넘겼다. 양벌규정에 따라 신한은행 법인도 함께 기소됐다.
취재를 종합하면, 신한은행서 외부청탁 지원자와 신한은행 최고 임원·부서장 자녀 특별관리 명단이 발견됐다. 남녀 합격자 성비를 맞추기 위해 154명의 서류면접점수가 조작되기도 했다.
서울동부지검 주진우 당시 부장검사는 조 회장 외 임원들이 면접위원의 공정하게 심사할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2013년~2016년 신한은행 신입 지원자 중 26명이 채용 과정서 불공정한 혜택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26명 중 합격한 부정 입사자는 22명이다. 판결문에 언급된 부정 입사자들 중에는 김 부의장의 자녀도 포함돼있어 공분을 샀다.
신한은행은 김 부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 금융감독원 임직원, 고액 거래처, 신한은행 계열사 임직원 등이 포함된 이른바,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 ‘특이자’는 국회의원, 유력 재력가 등 신한은행 영업 및 감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 자녀, ‘임직원 자녀’는 신한금융지주 부서장 이상의 자녀를 뜻한다.
이 관리 리스트는 지원자별 경로, 비고 등을 나눠 작성됐다. ‘경로’란에는 특이자에 관한 전형 결과 등을 알려줘야 하는 사람을, ‘비고’란에는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에 대해 취합한 정보를 적었다.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리스트 관리
취업난 허덕이는 청년, 박탈감 안겨
검찰이 압수수색한 2013~2015년 신한은행 내부 자료에 따르면 김 부의장(당시 민주당)과 정우택·김재경(당시 자유한국당)이 채용 청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김 부의장은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 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김 의원은 정무위원회 위원이었다.
자료에는 ‘2015년 上(상반기) 신입행원 특이자’란 제목의 문건이 있다. ‘비고’란에는 ‘thru 김영주, 정우택, 김재경 의원’이라 적혀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thru’는 채용을 처음 부탁한 인물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부의장은 2014년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 때 자신의 지역구인 정선희 영등포 구의원의 자녀인 오모씨의 채용을 청탁했다. 오씨는 1차 면접서 탈락 대상이었지만 ‘별도의 REVIEW(재검토)’ 절차를 거쳐 부정 합격했다.
오씨는 1차 실무자 면접 결과 ‘논리력, 언변 다소 부족, 질문의 의도, 상대방 의견의 핵심을 파악 못하는 느낌, 발표 시 설득력·논리력 부족’으로 탈락 수준인 DC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합격 지시가 내려오면서 면접 결과와 달리 합격했다.
2014년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은 그해 4월29일부터 시작됐는데, 김 부의장은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다.
또, 압수수색 문건에는 정 의원이 당시 신한은행 고위층에게 김모씨의 채용을 청탁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신한은행의 2015년 상반기 신입사원 모집 일정은 2015년 4월15일부터 2015년 7월9일까지 진행됐는데, 당시 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2014년 6월~2016년 5월)을 맡고 있었다.
‘방탄 은행’
김 리스크
김 의원도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당시(2012년 7월~2014년 5월)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K 신문사 사주의 자녀에 대한 채용을 청탁했다. 2013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과정서 정모씨의 합격을 청탁했다.
당시 신한은행은 학점과 나이 등을 기준으로 ‘필터링 컷(Filtering Cut)’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씨는 연령 필터링 컷에 해당해 탈락했지만 청탁받은 지원자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아 부정 합격했다. 또 1차 실무자 면접 결과 DD 등급으로 탈락 대상이었지만, 평가자 몰래 등급을 임의 상향시켜 부정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부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김 부의장은 “내가 은행 출신이긴 하지만 신한은행과는 전혀 친분이 없다. (공소장에)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면 누군가 나를 사칭하고 다닌 것 아닌가 싶다”며 “채용을 청탁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과 김 의원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답했다.
이밖에 은행권 관리·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 임직원도 판결문에 나왔다. 1심 판결문 기준,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장 김모씨, 대외협력팀장 박모씨, 부원장 조모씨, 비서실장 이모씨 등이 부정 입사자와 연루됐다.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은 인사담당자 등 실무진만 형사 책임을 지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재판부가 조 회장의 직접적 관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조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부행장과 인사부장 김모씨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았다. 다른 기간 인사부장으로 일한 이모씨에게도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조카손자, 금융감독원 임원 아들 등 3명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로 인해 다른 지원자가 피해를 보지는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조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로 판결했다.
이어진 항소심은 3명의 채용 비리 혐의마저 무죄판결했다.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2년 6월30일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부행장과 인사부장 김모씨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았다.
찜찜한 판결
정치권 비화
다른 기간 인사부장으로 일한 이모씨에게도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기업에 헌법상 채용의 자유가 있으며 ▲이들이 상위권 대학 출신에 기본적 스펙을 갖췄고 ▲별도의 채용비리처벌법이 없는 점 등을 무죄로 판단한 이유로 들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정 수준의 스펙을 갖춘 지원자는 청탁을 받아 채용하더라도 현행법상 문제삼기 어렵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기업의 채용 심사 단계별 재량은 폭넓게 보장돼야 하며 일정 범위서 점수를 보정하는 것은 문제삼을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또 특이자의 합격 과정서 조 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성비 관련 남녀평등고용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1·2심 모두 “여성에게 불리한 기준을 일관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일부 지원자들의 부정합격으로 인한 업무방해 부분 등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심 판단을 유지했다.
결국, 채용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사기업의 채용의 자유’ 등을 내세워 무죄 판결한 2심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thru 김영주’ 부탁 의미?
김 “누군가 나를 사칭했다”
이는 동종 채용 비리 사건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왔던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로 해석됐다. 앞서 대법원은 2020년 3월 비슷한 구조의 채용 비리가 문제됐던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확정한 바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법원 판결로 권력층의 채용 청탁이 용인되는 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앞서 채용 비리 대상자의 입사를 취소한 우리은행의 경우처럼, 채용 비리 연루자의 채용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이 대법원서도 무죄 확정판결을 받자 기득권층의 채용 청탁을 사법부가 용인한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도 쏟아졌다. 특히, 2017~2018년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김 부의장이 채용 청탁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논란이 가중됐다. 취업난에 허덕이던 청년들에게 채용 비리는 박탈감을 불러 일으켰다.
김 부의장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징계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금융정의연대, 정의당 청년본부 등은 2020년 6월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서 ‘국회의원 채용 비리 의혹 진상규명 및 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서 김 부의장에 대해 형사처벌과 별개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신한은행 채용 비리 공소장과 판결문에 김영주 의원의 실명이 기재돼있음에도 단 한 번의 검찰 조사도 받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승수 변호사도 “(김영주 의원은 당시)정무위원회 간사였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면 업무방해죄 교사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는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공천서 컷오프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김 부의장은 자신의 채용 청탁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앞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민주당의 평가 기준 중에 채용 비리·음주운전·성비위 등에 해당할 경우 50점 감점을 하게 돼있다. 채용 비리 부분에 대해서 (김 부의장이)소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50점을 감점하는 바람에 0점 처리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도의적 책임론
무죄면 그만?
김 부의장이 2014년 연루된 신한은행 채용 청탁 비리 의혹에 관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해 컷오프됐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김 부의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에 신한은행 채용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지만 채용 비리와 관련해 경찰조사를 받은 적도 없고 검찰서 연락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KBS <시사직격>에 제가 마치 연루된 것처럼 기사가 나왔지만 한참 뒤에 보도 관계자들이 와서 사과했다”면서 “이 대표가 내가 채용 비리를 소명 못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난 소명했다”고 반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