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권위 막말 회의록 ‘블랙 마킹’의 비밀

2023.11.27 10:58:23 호수 1455호

어설픈 가리개 걷어내니…

[일요시사 취재1팀·정치팀] 오혁진·박희영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멍들고 있다. 피해자와 진정인을 위한 회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갈등과 막말로 인한 파행의 연속이다. 회의록에 처리된 어설픈 블랙 마킹도 문제다. 인권위 내부 상황을 더욱 적나라하게 알 수 있으나 피해자와 진정인의 민감한 정보까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21일 <일요시사>는 야권 의원실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는 상임위원의 막말과 끼어들기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민감한 정보를 보호할 때 쓰이는 ‘블랙 마킹’조차 어설펐다. 오히려 이들의 막말을 가리기도 했다. 블랙 마킹이 피해자와 진정인 보호가 아닌 갈등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다 가려진
육두문자

인권위의 결정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11명 인권위원의 판단으로 내려진다. 전원위원회 안건은 인권위원들의 표결로 처리한다. 보통 인권위원 과반인 6명의 동의를 받으면 대부분 통과된다. 임기 3년의 인권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4명을 지명한다. 국회 지명 4명은 여당 몫 2명과 야당 몫 2명으로 나뉜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바뀐 상임·비상임위원은 총 6명이다. 사실상 의견 불일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60페이지 분량의 인권위 제7차 전원위원회 회의 결과 및 회의록 보고 문건은 50페이지가량이 ‘블랙 마킹’으로 처리돼있다. 피해자와 진정인의 정보를 보호하기보다는 이충상·김용원 위원과 이들의 비상식적 발언에 동조하는 문구를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킹 처리도 황당할 만큼 어설펐다. 문건을 인쇄할 때는 보이지 않지만 파일 형태에서는 마우스로 드래그 후 복사·붙여넣기가 가능했다.

7차 전원회의는 지난 5월22일 오후에 열렸다. 이날 한석훈 위원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관계자에 관해 “방청인이 이충상 위원에 대해 상당히 위협적인 언동을 했다. 원만한 회의 진행을 방해하면 퇴장을 명했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방청인으로 들어온 상태서 회의를 진행하면 위협적인 상황서 자유롭게 의사를 발표할 수 있겠냐. 방청인이 위협적 언동을 하면 바로 퇴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석원정 위원은 한 위원의 발언에 대해 “유족분이 방청하신 것이고 이분들이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의 당사자라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이해당사자라고 일반적으로 규정짓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김 위원은 “이게 무슨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권위 갈등은 직원들의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얼굴만 맞대면 진흙탕 싸움
부끄러운 위원들의 ‘말말말’

박진 사무총장은 “현 상황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다. 인트라넷서 직원들이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급된 내용 중 모 조사관이 진정된 사건이 있다”며 “담당조사관과 과장이 이충상 위원에게 불려간 자리서 이 위원으로부터 인트라넷 게시글에 관한 언급을 들은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이 위원은 모 조사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윤 위원은 박 사무총장에게 “‘조사관을 징계해야 한다. 이중처벌이 안 되니 지금 말고 내가 위원장이 되면 중징계를 내릴 것. 조사관에게 전해라. 곧 서기관하고 부이사관 승진이 있는 거 안다’는 발언이 사실이라는 거냐”고 물었다.

서미화 위원은 박 사무총장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으나 김 위원이 “잠깐만”이라며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 위원이 “‘내가 위원장이 되면’이라고 안 했다. 차기 위원장은 다른 분이 될 수 있고 김용원 상임위원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는데 차기 위원장 취임 후에 징계한다면, 징계감”이라며 “무겁게 징계할 텐데 지금 위원장님 재직 중에 아주 가볍게라도 징계하면 징계를 두 번 할 수는 없으니까 조사관에게 나을 것이다. 위원장님 재직 중에 아주 가볍게 징계하면 심지어 징계위원회서 불문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해석은 달랐지만 발언을 인정했다.


남규선 위원은 “피진정인 자격으로 조사관에게 피해자의 징계를 운운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으나 이 위원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수정 위원은 “이 위원이 여러 말씀을 했는데 기본적으로 피해자 보호에 관한 생각이 과연 인권위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결 아닌
갈등 유발

이 위원은 곧바로 “내가 피해자고 조사관이 가해자다. 갑질? 피해자가 아니라 진정인, 피진정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이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이 위원님 말을 내가 따라야 하냐”고 했다.

서 위원은 “이 위원님께 충언하겠다. 인권위 상임위원이면 인권에 대한 어떤 감수성, 가치가 우선돼야 한다. 위원님은 차관급 상급자다. 일개 직원에게 이런 사안이 벌어졌다면 자중해야 한다. 내가 이충상 위원이라면 자진해서 사퇴한다”고 지적했다.

타 회의록서도 유가족과 피해자를 향한 막말은 적지 않았다. 혐오 발언에 관한 블랙 마킹 처리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드래그 후 복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은 적지 않았다.

11명의 인권위원은 전원회의 이전 진정인 또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소위원회 회의를 진행한다. 이 중 침해구제제1위원회(이하 침해1소위)는 김 위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침해1소위의 마지막 회의는 지난 8월1일이다. 이날 침해1소위는 정의기억연대 정기 수요시위 현장에서 터진 욕설을 제지해달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가 낸 진정을 기각했다.

인권위 사무처가 법적 근거가 없는 결정이라며 침해1소위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현행법상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소위 표결에는 김 위원을 포함한 3명의 위원이 참여해 김용원·김종민 위원은 기각, 김수정 위원은 인용 입장을 냈다.


김수정 위원은 “의견이 엇갈린 경우 소위원장이 기각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근거는 인권위법 제13조 제2항의 “소위원회는 구성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용 또는 기각을 결정할 때 이 조항을 적용해 소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소위원회 3인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 넘겨 처리해왔던 것이 ‘관례’다.

제자리걸음
감추기 급급

현재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주도로 한석훈·한수웅·김종민·이한별 비상임위원까지 6명은 ‘소위원회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에 대한 의안을 전원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는 인권위가 탄생한 2001년 이후 단 한 번도 제기된 바 없다. 행정법무담당관도 실제 회의 운영 관행과 전혀 다르다는 의미서 의결정족수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법제처의 판단도 같았다.

법제처 관계자는 “유권해석은 가결이 되지 않으면 부결이 된다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권위원회법 제13조의 의결을 가진 가결로 축소 해석할 필요가 없고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서 법령 규정의 문자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각해 해석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법제처는 인권위의 오랜 관례를 깨려는 위원들의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법제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소위원회서 진정 사건을 처리할 때 가결이 아니면 부결이라고 보거나, 위원회법 제13조를 권고 결정에 한정하여 가중된 의결정족수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타당하지 않다 ▲의결과 가결, 부결의 개념, 법 문언의 형식, 다른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관의 입법례와 이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더 나아가 위원회법의 목적과 취지, 위원회 결정의 효력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위원회 설립 이후 지속돼온 의결정족수 규정에 관한 해석과 적용을 위 새로운 주장에 근거해 변경할 수는 없다 ▲소위원회는 위원회법 제13조에 따라 각하, 기각, 권고 등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진정에 관해 의결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의결할 수 없다. 따라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경우, 위원들 간에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공통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면 본래 전원위원회에서의 위임 취지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이 위원회 위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다.

입맛대로 고쳐먹는 관례
단 1명만 반대해도 리셋

법제처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을 포함한 인권위원 6인은 관례를 깨려는 의지를 표출 중이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의견서를 언급하면서 “헌법의 여러 조항과 민법, 상법 등 의결이나 결의, 가결만을 의미함이 명백하지만 법제처는 반박하지 못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권위법의 새 해석하에서도 종전에 비해 실무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다. 소위서 1명만 진정 기각 의견인 경우에는 인권위법의 새 해석하에서는 소위 기각이 가능하지만 인권위의 실무에 있어서는 2명의 인권위원의 의견이 존중돼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없을 것이라는 이 위원의 주장과는 다르게 인권침해나 차별 행위의 피해자가 제기한 진정 사건이 기각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와 진정인의 입장서 신중한 판단을 기해야 함에도 단 1명의 반대로 사건이 초기부터 기각되는 건 인권위의 역할 축소나 다름없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인권위원 6인의 움직임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관례가 깨지면 그만큼 피해를 보는 진정인이 늘어난다는 거다. 이충상 위원이 주장한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전원회의서 기각돼도 울분을 토하시는 분들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공무원 노조는 이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약 80%는 소위원회서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경우, ‘다시 위원끼리 논의(40.6%)’를 하거나 ‘전원위 상정 논의 후 3인이 동의하면 전원위에 상정(39.6%)’해야 한다고 답했다. ‘3인 정족수 미달로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은 2%에 불과했다.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쌍방이 더 주장하고 자료를 제출할 것이 없어 재상정할 것이 아니다. 이 안건은 인권위의 운영에 관한 것이라서 인권위원들이 이 안건에 관해 최고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외부에 최고의 전문가가 따로 없기에 노동조합의 주장처럼 외부의 전문가에게 사실 조회를 하거나 청문회를 할 필요가 없다.”

법제처 무시
의견 고집만

송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전원회의서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께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누구에게 무식하다, 오만방자하다,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방청인들도 지켜보고 있는 회의다. 회의의 품위나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의 무게에 대해 위원님들이 더 엄격하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이 공무원 노조를 향해 오만함이 섞인 발언을 하기 이전에 송 위원장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는 게 어떨까? 그는 인권위의 추락이 자신을 포함한 일부 인권위원들에 의한 결과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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