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묻지마 범죄, 왜 경찰만 탓하나?

  • 이윤호 교수
2023.08.13 06:53:31 호수 1441호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가 사회를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살인 예고’라는 해괴한 ‘묻지마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심지어 제1야당 대표에게 폭탄 테러를 예고하는 협박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전국의 모든 경찰관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폭탄 테러나 살인 예고 글에 일일이 출동해 확인하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시민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에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찰은 특별 경찰 활동을 벌이겠다, 검찰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핵심 대책은 강력한 처벌이라는 사후 대응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범죄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사전 예방이다. 범죄는 한 번 발생하면 반드시 피해자와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일단 발생한 피해는 그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회복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고통과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뿐이랴. 무차별 범죄는 온 국민을 범죄의 간접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원하는 시간에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직장과 사회, 가정생활까지 제약을 받게 돼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련의 결과들은 사람들에게 사회와 국가, 그리고 타인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고, 사회에 불신풍조를 유발하게 된다. 이런 범죄의 사회적 역기능 때문에 범죄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못하거나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돼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범죄가 발생하려면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란 대체로 범행의 동기를 가진 ‘잠재적 범법자’, 그가 범행할 표적으로서 ‘범행의 대상’, 그리고 ‘범행할 기회’라는 세 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경우에 따라 ‘범행의 기술’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 같은 필요충분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범죄는 일어날 수 없다. 여기서 경찰이 가장 관련이 높은 것이 범행 기회일 것이다. 경찰이 순찰 등 활동을 통해 잠재적 범죄자가 범행 동기를 일반 시민을 표적으로 무차별 범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경찰 활동을 통한 예방은 너무나도 미미할 따름이다. 가장 바람직한 예방은 당연히 아무도 묻지마 범죄를 하려는 동기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의 예방은 당연히 그 동기로 알려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정신장애, 그리고 만성적인 분노를 사람들이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 불만과 만성분노는 대체로 격심한 상대적 박탈과 좌절의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일련의 요인과 요소들이 경찰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묻지마 범죄에 대해 경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물론 범죄의 사전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방적 순찰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지만, 우리 경찰이 전 국민에게 하루 24시간 어디서나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로 합당한 순찰을 제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경찰이 할 수 있는 차선책은 무엇일까?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해 범인을 파악해 범행을 차단하거나, 진행 중인 범행이라면 신속하게 제압해 피해자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범인을 검거해 신속하고 확실하고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해 잠재적 범죄자에게나마 범행의 동기를 억제하거나 최소한 지연시키는 것밖에 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와 시민 모두가 경찰만 바라보고, 경찰만 탓할 것인가? 범죄는 사전 예방이 최선이고, 예방을 위해서는 범행 동기를 제거하거나 해소하는 것이 요구된다면, 묻지마 범죄의 동기와 근원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상대적 박탈과 좌절, 그로 인한 사회적 소외와 이어지는 사회적 분노와 증오가 해소되거나 해결돼야 하고, 정신장애가 원인이라면 정신장애가 치료돼야 이런 유형의 범죄가 예방될 수 있는데, 이는 사회구조적 문제이고 공중보건이나 정신건강의 문제지 결코 경찰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경찰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정을 익히 경험하는 몇몇 나라에서는 그래서 이미 범죄 문제를 형사정책만의 문제와 접근이 아니라 ‘공중보건 모형(Public Health Model)’을 추구하는 추세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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