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경찰 비리, 썩은 사과와 썩은 상자 논리

  • 이윤호 교수
2023.06.24 00:00:00 호수 1434호

경찰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는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시민에 대한 과잉대응으로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급기야는 “경찰에 예산을 주지 말라(Dfefund the police)”거나 더 나아가서는 “경찰을 폐지하라(Abolish the police)”는 시민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국내서도 적지 않은 경찰관들이 각종 비리와 독직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찰이 신뢰는커녕 비난받는 존재로 전락한 건 왜일까?  

일각에서는 경찰의 비리를 개별 경찰관의 독립적인 일탈이거나, 다수의 온전한 사과 속 몇 개의 썩은 사과의 문제로 보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시각은 경찰 지휘부가 듣고 싶어 하는 주장에 가깝다.

반면 경찰 비리를 몇 개의 개별적으로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 사과가 담긴 상자가 썩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무리 좋은 사과라도 썩은 상자에 담으면 썩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썩은 사과가 경찰 비리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실제로는 경찰의 실패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의도의 이기적인 피상적 외양에 지나지 않으며, 문제를 발생시키는 건 경찰관을 직업적으로 사회화시키는 경찰 문화의 비윤리적인 번식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썩은 사과도, 썩은 상자도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 다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썩은 사과 몇 개를 오래 방치하면 상자 안의 모든 사과가 다 썩게 되고 심지어는 상자조차도 썩게 된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사과라도 썩은 상자에 담으면 결국엔 그 안의 개별 사과도 썩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썩은 사과가 문제라는 경찰관 개인의 일탈과 비리로 보는 시각은 마치 Lombroso가 말했던 ‘생래적 범죄자(Born Criminal)’와 같이 원래 흠결 있는 사람이 경찰관이 돼 일탈과 비리를 벌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썩은 상자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심지어 개별적인 몇 개의 썩은 사과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한국 영화 <투캅스>를 보면, 배우 안성기가 분한 선배 경찰은 그야말로 각종 일탈과 비리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던 반면에 배우 박중훈이 연기한 신입 경찰은 그런 선배를 따지지만, 나중에는 소위 직업적 사회를 거치면서 선배보다 더 비리와 일탈을 저지른다.

필자는 이 영화가 썩은 상자, 구체적으로 경찰관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개별 경찰관의 행위는 지침보다는 선배의 윤리적 결함에 대한 행동의 결여나 행동에 의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썩은 상자 속의 사과는 언젠가는 전부 썩고 말지만, 경찰 조직이 문제라고 해도 모든 경찰관이 다 일탈하고 비리에 관련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상자가 썩었을지라도 모든 사과가 다 썩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경찰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설명으로서 썩은 사과 이론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부패한 경찰관이 타고 난, 천부적인 범죄자라는 것이다.

경찰 부패의 통제는 단순히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담은 상자, 즉 개별 경찰관이 아니라 경찰 조직, 조직 속의 개별 경찰관이 아니라 조직을 조사하라고 권한다. 그것은 부패한 경찰관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즉 원래 부패한 사람이 경찰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 조직서 경찰관으로서 직업적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썩지 않는 경찰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당연히 경찰 조직과 그 조직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사과 상자가 잘 썩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즉, 조직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개별 사과, 개별 경찰관이 처음부터 싱싱하고 잘 부패되지 않을 사과, 경찰관을 선별하고, 그들이 썩은 상자에서도 부패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썩은 상자를 개조하거나 새로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하고 가능성도 더 높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먼저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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