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김기현 후보가 대표로 당선됐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당선됐다. 이 두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할 우리나라 거대 정당의 총선감독이다.
그런데 앞으로 1년 동안 선수도 뽑고 전략도 세우고 팀워크도 다져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두 대표가 본격적인 총선 시즌을 맞이해 정치적 동력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불법 특혜’ 의혹이 사법 리스크가 됐고, 김 대표는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 나온 ‘땅 투기 및 토건비리’ 의혹이 언제 또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두 대표에게 더 괴로운 건 의혹이 같은 당 후보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같은 당 후보끼리 치열하게 싸우면서 상대 후보의 의혹을 가장 강력하게 제기했던 사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당시 박 후보는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고, 이 후보는 박 후보의 ‘최순실과의 밀착관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두 후보는 2008년과 2013년 각각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경선 후유증으로 임기 내내 계속 앙숙으로 지냈다.
그후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쌍방의 의혹이 문재인정부 때 사실로 드러나 구속됐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이낙연 후보가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그 여파로 이 대표는 대선서 0.7% 표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지금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8·28 전당대회 경선 때도 같은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김 대표도 지난 3·8 전당대회 경선 때 타 후보로부터 나온 ‘울산 KTX 인근 땅 투기 및 토착·토건비리’ 의혹에 시달렸다. 이 대표나 김 대표가 당선 소감에서 타 후보들을 품어 원팀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외쳤지만, 이들 의혹은 이미 상대 당으로 넘어가 시퍼런 칼날로 변해 이 두 후보의 목을 죄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전당대회서 당선된 대표는 대선후보 선출과 대선 승리가 목표고,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지거나 대통령 핵심 세력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 반면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서 당선된 대표는 공천권 행사와 총선 승리가 목표고,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차기 대선후보 0순위가 된다.
이는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 경선이 대표 후보에겐 실제 대선후보 경선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박 전 대통령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대표가 된 후 당내 기반을 다져 대선후보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 실마리가 돼 정권을 내려놓기도 하고 임기 후 구속되기도 한 것처럼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 경선 때 불거진 의혹도 상대 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총선서 패할 수 있고, 나중에 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구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표 한 명의 의혹 때문에 당이 전멸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원래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는 총선을 승리로 이끌 대표를 뽑고 전당대회가 끝나면 총선 승리를 위해 모든 후보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왜 같은 당 후보끼리 서로 공격하며 치킨게임을 하는 걸까?
전당대회 경선서 제기한 의혹이 상대 당의 공격 호재가 돼 대표 자신은 물론 당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왜 치명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걸까?
앞서 언급했듯이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 경선은 향후 공천권을 행사해 총선서 승리하면 바로 대선후보가 되거나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당 대표에게 있어 공천권 행사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된다는 말이다.
이명박정부 초기에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친이계(친 이명박계)가 공천권을 휘두르자 공천서 탈락한 친박계(친 박근혜계)가 '친박연대'를 창당해 당이 쪼개졌고, 이명박정부 말기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강력한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두르며 4년 전 보복공천을 한 바 있다.
당시 친이와 친박으로 나뉜 이분법적 정서가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2020년 총선서 패했고 지난해 대선서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은 공천 문제로 인한 탈당이나 분당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공천 문제를 풀기 전에 먼저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의혹을 푸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정한 공천을 하더라도 총선을 진두지휘할 총선감독의 사법 리스크와 의혹이 해결되지 않으면 총선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총선감독이 만나 민생을 살린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사법 리스크와 의혹을 적당히 봐주는 선에서 총선을 치르자고 약속이라도 한다면 그땐 우리 국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민생 문제 해결은 다음달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 원내대표와 협력해서 추진해도 늦지 않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