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비례’ 출산-사교육비 상관관계

2023.03.15 06:00:00 호수 1418호

애 없는데 학원비만 천정부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 인구정책 표어가 2020년대에 다시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아니 어쩌면 지나치게 잘 이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녀를 적게 낳는 대신 지원은 ‘몰빵’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출산율과 사교육비,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역학관계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2주 간격으로 나온 통계가 사회를 강타했다. 출산율과 사교육비. 하나는 너무 낮았고 하나는 너무 높았다. 완벽하게 반비례 곡선을 그린 두 통계치는 현 상황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는 ‘고착화’ 상태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역대 최저

2010년 3월12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사교육비 잡아야 출산율 오른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정부정책 뉴스 포털이다. 기사는 “막대한 사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대체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썼다. 

13년 뒤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10년 1.22명(47만171명)의 합계출산율은 0.78명(24만9000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출생아 수로 따지면 반 토막 난 수준이다. 2010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이었다. 지난해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에 이른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으로 한정하면 52만4000원까지 치솟는다. 2배 넘게 늘어났다. 


지난달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와 ‘2022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2013년 이후 OECD 꼴찌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2020년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약 280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체감효과는 없다시피 하다. 중구난방으로 지원이 이뤄지면서 출산율 반등에 실패한 것. 낳는 것을 넘어 기르는 것이 더 어려운 사회환경, 사교육비 부담 등이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혔다. 

지난 7일에는 사교육비 관련 교육부와 통계청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전국 초·중·고교 약 3000곳에 재학 중인 학생 7만4000명가량을 대상으로 ‘2022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공동 실시했다. 초·중·고교생이 학교 정규교육 과정 외에 사적 수요에 따라 개인적으로 지출하는 학원비·과외비·인터넷 강의비 등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꼴찌
280조 쏟아부어도 효과 없어

그 결과 지난해 초·중·고교생이 쓴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원으로 나타났다. 2007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직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던 전년도 수치를 넘어섰다. 1년 새 학생 수는 1%(532만명→528만명) 가까이 줄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23조4000억원) 대비 10.8%나 늘었다.

사교육 참여율은 78.3%로 2021년(75.5%) 대비 2.8%포인트 상승해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았던 2020년 67.1%로 떨어졌다가 2021년 75.5%로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도 상승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체 학생(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 포함)을 기준으로 41만원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만 보면 52만4000원에 이른다.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다. 소득수준별 교육격차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는 64만800원으로 전체 구간에서 가장 높았고, 300만원 미만의 가구의 사교육비는 17만8000원으로 가장 낮았다. 

심민철 교육 디지털교육기획관은 “코로나를 겪은 초등학생의 경우 언어 습득, 글을 읽는 문해력이 영향을 받아 짧은 글을 쓰게 되고, 공백 기간 동안 결손에 대한 보충 수요가 학부모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2021년 8월 감사원은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 분석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교육비는 주거, 취업과 함께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당시 보고서에는 “제3차 기본계획 수정계획에서 취업·사교육비 관련 정책 과제 다수를 부처 자율과제로 분류해 그 비중이 제3차 기본계획보다 감소했다”며 “취업·사교육비가 저출산의 주요 요인임을 감안해 대책 추진 시 고용노동부, 일자리위원회, 교육부 등과 협업 또는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명시했다. 

전년도 기록 1년 만에 갱신
‘충격’ 교육부 부랴부랴 대책

사교육비와 주택가격, 실업률은 출산율·혼인율과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사교육비가 늘어날수록 출산율과 혼인율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를 수행한 이민호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혼인율은 주거비용과 실업률과의 상관관계가 일관되게 나타났다”며 “특히 초등과 고등 부문 출산율은 사교육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집값이 안정되고 취업이 돼야 결혼을 하고, 사교육비가 적정 수준이어야 아이를 낳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재 사회 상황은 암울하다. 집값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취업시장은 점점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예산지원’ 방식의 출산율 대책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반등 없이 말 그대로 ‘미끄럼틀’ 수준의 하락을 기록 중이다.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불명예는 차치하고 바로 앞 순위와도 차이가 크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이 안 되는 국가도 한국뿐이다. 

사교육비 상승은 공교육 강화라는 대책으로 이어지곤 했다. 학교 바깥에서 학습하려는 아이들을 안으로 끌고 와야 한다는 의도다. 하지만 공교육 붕괴는 이제 더 이상 논란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출산율과 마찬가지로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대 최고


교육부는 2년 연속 사교육비 수치가 치솟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정책으로 2009~2015년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상반기 중에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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