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아들 학폭’ 법무부-경찰 핑퐁게임

2023.03.06 10:40:31 호수 1417호

검증 안 했나 못 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신임 경찰청 국사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문제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들의 학교폭력을 감싸기 바빴던 정 변호사의 과거 행보가 드러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으나 법무부와 경찰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정 변호사를 거르지 못했다. 오히려 ‘몰랐다’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다.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 정모씨의 학교폭력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해자 측과 끝까지 소송을 진행했고 자신의 도덕성에 흠결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사검증 책임이 있는 법무부와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판결문까지 존재하는 와중에 정 변호사 개인의 일이기에 알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내정?

정 변호사는 자신이 국수본부장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지난달 25일 사퇴했다. 대통령실이 임명을 발표한 지 2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학폭 가해자 가족의 공직 적격성 논란과는 별개로, 5년 전 언론에 보도된 사안조차 걸러내지 사태를 두고 윤석열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법무부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한 이유가 무기력해진 셈이다. 인사정보관리단은 윤석열정부가 기존의 청와대서 감찰 업무를 맡았던 민정수석비서관 제도를 비판·해체하며 ‘과학적 인사 시스템’을 강조한 결과다. 하지만 이번 인사 문제로 정부의 인사검증 제도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특히 인사검증관리단이 소속된 법무부 수장인 한동훈 장관은 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27기 동기다. 검찰과 법무부 내부서조차 윤석열정부서 요직은 검찰 출신이 독차지하다 보니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법무부에 근무 중인 한 검사는 “검찰 출신이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시스템의 문제다. 그래서 검찰 출신이면 검증도 하지 않고 쓰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면서도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인사정보관리단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씨의 학폭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8년 11월로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정씨가 동급생을 1년 가까이 괴롭힌 사실,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은 피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사실 등이 고스란히 언론에 보도됐다.

피해자 극단적 선택 시도했는데 감싸기·소송
5년 전 보도 몰랐다? 인사정보관리단 뭐 했나

정치권에 따르면 정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씨의)부모님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2차 진술서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전부 코치해서 썼다”고 증언했다. 2018년 3월 교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 회의록에선 정 변호사와 아내가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할 것”이라며 아들을 감싸기만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정씨가 2018년 7월 춘천지법에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소송 판결문에 담겼다. 정씨는 2017년 5월부터 2018년 초까지 동급생 A군에게 “돼지 XX”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는 등 1년간 언어폭력을 일삼으며 괴롭혀 2018년 6월 대책위에서 강제전학 등 처분을 받았다.

정씨 측은 ‘A군의 주장이 과장돼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 측은 같은해 9월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2019년 4월 대법원도 재차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징계처분이 확정됐다.

당시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을 지냈고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인사정보관리단을 휘하에 두고 있는 한 장관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도 검찰 출신으로 학폭 논란 당시 현직 검사였던 정 변호사와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국수본부장 후보자 추천권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을 위해 후보자 세평 및 인사검증 기초자료를 수집한 경찰청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비판받고 있다.

국수본부장 선발절차는 원서접수→서류심사→신체검사→종합심사→경찰청장 추천→행정안전부장관 제청→국무총리 경유→대통령 임용 순으로 진행된다. 종합심사 단계서 경찰청이 후보자에 대해 직무수행 능력 등을 종합 심사해 경찰청장이 후보자 1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검 내부서 “인권보호관 시절부터 소문 안 좋아”
대통령실, 일사천리로 사의 수용…문책은 안 해


다만 실질적인 인사검증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이 맡았다. 국수본부장의 계급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인 치안정감으로, 행정안전부 인사관리상 고위공무원단에 포함돼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 대상이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정 변호사가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 대상이었는지조차 “확인해줄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현행법상 국수본부장(치안정감)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만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1차 검증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반드시 모든 고위공무원에 대한 검증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통령실의 의뢰가 있으면 1차적으로 형식적인 검증을 한다”고 밝혔다. 검증을 했다는 것인지, 안 했다는 것인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정 변호사의 사의를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일사천리로 수용했다.

윤 대통령도 강한 어조로 정 변호사에 대해 비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중앙지검 내부에서는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지검 관계자는 “애초 검찰 출신이 요직에 대부분 들어가니 국수본부장도 사실상 정 변호사가 내정돼있던 셈”이라며 “정 변호사가 인권보호관 시절부터 소문이 좋지 않았는데 몰랐다는 건 거짓말로 보인다. 결국 윗선에서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책임 일관

중앙지검 한 검사도 “아는 사람만 알았을 내용이라고 해도 서초동 바닥이 워낙 좁다 보니 전혀 몰랐다는 입장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특히 정 변호사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소속 B 검사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중앙지검서 같이 근무했다. B 검사는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문제가 익명으로 보도된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소속이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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