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죄학 분야에 종사자들 사이에서 “피해자 혹은 생존자, 어느 용어가 더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용도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라는 용어는 전형적으로 최근 성폭력을 겪은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며, 추가적으로는 범죄를 논의할 때 또는 형사사법제도 참고할 때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반면 ‘생존자’라는 용어는 범죄 피해로부터의 회복 과정을 거쳤거나 회복 중인 사람을 나타내고, 추가적으로는 성폭력의 장.단기 영향을 논할 때 주로 쓰인다.
즉, 피해자는 범죄 희생자에 대한 해악이나 손상으로 규정되고, 생존자는 그 이후 그들의 삶으로 규정될 수 있다.
최근 추세는 피해자보다는 생존자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라는 용어가 통용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형사사법제도 내에서 범죄의 대상이 된 사람을 기술하는 동시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특정한 권리를 제공받는 지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관과 검사는 범죄가 그 사람에게 발생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반대로 생존자라는 용어는 ‘가해자’의 존재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나 함축이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피해자 없는 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는 가해자가 있기 마련인데, ‘생존자’라는 용어는 가해자의 존재를 요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두 용어는 각자의 위치와 자리 및 역할이 있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다. 피해자가 형사사법제도 안에서 필요한 법률적 규정이라면, 생존자는 범죄 피해를 겪은 사람이 치유 과정을 시작했고, 자신의 삶에서 일말의 평화를 얻었다는 일종의 피해자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상황이나 자신의 위치에 따라 자기 역할에 더 잘 맞는 용어를 사용하기 마련이고, 두 용어는 상호 교환적으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나 사법제도에 기반을 둔 활동가라면 피해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반면 지역사회 기반의 활동가와 서비스 제공자라면 생존자라는 용어를 선호할 것이다. 범죄 피해를 겪은 사람 중에서도, 자신을 생존자로 동일시하는 사람은 자신을 피해자로 보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치유 과정을 통해서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생존자라는 용어가 더 선호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피해자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어감 또는 암시를 함축할 수 있으며, 생존자로 하여금 자신이 무기력하거나 연약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생존자라는 용어는 반면에 범죄라는 외상적 사건의 희생자로서의 지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역경에 직면한 자신의 강점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조한다.
또 피해자라는 용어는 생존자에게 가해진 폭력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특성을 지닌다. 반면 생존자라는 용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생존자를 단순히 범죄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강하고 능력 있는 개인으로 보도록 한다.
그렇다면 피해자라는 용어는 사용돼서는 안 되는 것인가? 형사사법제도의 핵심적인 관점인 이 용어는, 개인이 어떻게든 손상을 당하거나 부당한 취급이나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피해자라는 딱지가 항상, 특히 성폭력의 생존자에 대한 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반드시 적절한 건 아니다. 많은 생존자에게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더욱 재강화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지지와 지원을 추구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신분, 지위, 입장에 따라 용어 선택의 선화가 있을 수 있지만, 두 용어 모두 필요하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거나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도 없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