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요시사>는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해 4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연루된 정부부처는 상당히 많다.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질병관리본부(질본) 등이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소극·졸속 행정은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 피해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으면서 피해·사망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빠져나갈 구멍
뚫어준 형국
뒤늦게 사건을 조사한 정부는 가해기업에 대한 제재 대신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위험하다는 정보를 주기까지 했다. 사실상 가해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뚫어준 것이다.
질본은 2011년 8월26일부터 3일간 SK케미칼, 옥시, 애경 등 가습기살균제 생산·제조·판매업체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간담회에서 가해기업은 질본에 “역학조사는 통계상의 상관성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오류가 있다. 직접적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명과 상품명이 발표되지 않아야 한다”며 “발표할 때 표현 수위를 잘 조절해달라”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본은 같은 해 8월31일 역학조사 3단계 중 심층면담 조사 결과 등을 제외하고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 및 출시 자제 권고를 발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질본은 사실상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질본이 은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층면접조사 결과로 나온 피해자 사용 가습기살균제 5개 제품명(옥시싹싹New가습기당번, 세퓨 가습기살균제, 롯데마트 가습기살균제, 애경 가습기 메이트,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18명 중 6명 사망 확인했지만 사망자 4명으로 축소한 부분 ▲피해자 사용 가습기살균제 5개 제품 성분분석 결과로 나온 주성분 PHMG·PGH, CMIT·MIT 화학물질 함유 사실이다.
이 외에도 ▲가습기살균제 제품 생산공장 현장조사(한빛화학, 용마산업사, 애경산업, 아토세이프, 애경에스티, 세퓨, 에스겔화장품, 홈케어 등 8개소) 결과 확인한 제조원과 판매원 ▲세포독성 시험에서 관찰된 폐세포 사멸 효과 관찰돼 독성 및 세 기관지·폐 말단 가습기살균제가 도달 가능하다는 사실 ▲가습기 물 처리제 흡입 시 좋지 않으므로 쓰지 말라는 미국 환경보호청 권고사례를 검토했으나 미발표한 부분 등이다.
질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사용 및 출시 자제를 권고했다. 발표 내용과 관련해 당시 기업들은 보도자료에 대해 위험 요인 표현 변경, 교차비 비공개 등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특조위는 업체명과 상품명이 보도자료에서 제외된 사실을 파악하고 질본이 업체명과 상품명을 제외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는 수용됐다고 판단했다. 특조위 조사 결과 질본 관계자들은 업체명과 상품명 미공개 사유에 대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고, 보도자료 작성 시에 보건복지부 외 타 부처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진술했다.
질본, SK케미칼·애경 말 듣고 제품·성분명 빼고 발표
폐 손상 인과관계 확인 역학조사서 가습기메이트 제외
질본 내부에서는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교차비가 확인돼 원인미상 폐손상의 유력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명확한 인과관계 확인이라는 명목으로 보도자료에 기업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났다.
질본은 가해기업과의 면담이 있기 전,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폐 손상 제품이었던 가습기메이트(CMIT·MIT 제품)를 조사 과정에서 제외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질본은 2011년 4월25일 원인미상 폐 손상에 대한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보도자료가 발표된 8월 말 이후에도 명확한 인과관계 확인을 위해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먼저 질본은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을 실시해 ▲적정 투여량 ▲가습기살균제 폐 도달 시 독성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는 흡입독성시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려 했다.
질본이 PHMG·PGH 제품군에만 실시했던 2011년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의 투여량은 2019년 시험조건으로 환산하면 0.35mg/kg, 0.70mg/kg, 7.00mg/kg이었다. 2011년 예비시험의 투여량이 2019년(CMIT·MIT를 쥐에게 투여하여 실시된 기도 내 투여 시험) 폐섬유화가 확인된 0.29 mg/kg보다 높았다.
그러나 질본은 가습기메이트를 예비시험 대상에서 제외했다. 2011년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의 대상으로 가습기메이트를 포함시켰다면 폐 손상과 가습기살균제 간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조위는 질본의 부실조사 발표로 인해 피해자들의 배상과 구제 지연 및 검찰의 늑장 수사, 공정위의 잘못된 심의처분 등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가습기메이트가 예비시험에서 제외됐던 원인 중 하나는 원료물질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비시험을 시작한 이후 현장조사를 통해 물질을 확인했고 제품 성분이 공개됐다면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험성 안 알리고
문제 제기 안 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질본은 2011년 11월11일 유해성 확인 및 6개 제품에 대한 강제수거 조치를 내렸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의심 피해사례에 대해 신고·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피해조사 확대 및 피해자에 대한 판정 등 정부 대책을 요구했으나 후속 조치는 미흡했다.
질본은 2012년 10월8일 폐손상조사준비위원회 계획을 수립하고 호흡기내과, 소아청소년 호흡기내과, 영상의학, 병리학, 예방의학, 환경보건전문가 등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민관 공동 추천을 통해 22명의 위원을 위촉,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 구성을 마친 폐손상조사위원회는 2012년 12월6일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 1월20일 제14차 회의까지 운영됐다.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주요 활동 내용은 질본과 시민단체 등에 피해 의심 신고를 한 361명에 대한 피해 판정이었다. 피해 판정 기준은 신고를 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건강 이상과 가습기살균제와의 인과성이었다.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 이후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정부로부터 판정받았다. 총 4단계로 ▲1단계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함’ ▲2단계는 ‘가능성 높음’ ▲3단계는 ‘가능성 낮음’ ▲4단계는 ‘가능성 거의 없음’이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는 해당 단계 구성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 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특조위 조사에서 “4단계 구분법으로도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질환이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적절한 방법인지 여부에 대한 토론은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위원회의 진술조사에서 4단계 구분법과 관련하여 ‘근거자료의 부족이나 불확실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4단계 구분법이 폐손상조사위원회에서 이견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단계 구분법은 폐손상조사위원회 전체 입장으로 최종 결정됐다. 조사와 판정에 있어 폐질환에 국한되기도 했다. 위원회 위원들은 폐 손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자료와 근거자료가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활동 시기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인정 및 지원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우선 판정 가능한 질환부터 실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질본은 위원회의 이 같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 규모 조사와 건강이상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및 사후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다.
조사위 의견
묵살에 외면
<일요시사>가 입수한 사참위 내부자료에도 질본은 피해 질환과 피해자들의 피해 양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일부 위원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특조위는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제4차 회의(2013년 3월7일)에서 추가동물실험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제6차 회의(2013년 6월5일)에서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목적을 폐 손상 환자 판정으로 제한한 것도 질본의 소극적 행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 같은 질본의 태도는 폐손상조사위원회 제5차 회의(2013년 4월4일) 당시 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일까지 발생시켰다. 당시 질본과 위원들 사이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청인들에 대한 검사 범위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폐손상조사위원들은 CT 촬영이나 폐기능 검사 등 추가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질본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폐손상조사위원들은 전원 사퇴했다.
결국 질본이 폐손상조사위원들의 입장을 수용해 위원들이 제6차 회의부터 다시 복귀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며 “위원회도 최선을 다했고 그 의견을 질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폐손상조사위원회 1기는 미흡했으나 폐 손상 가능성을 기준으로 피해 판정 기준을 정했다. 결과적으로 129명이 1단계, 46명이 2단계, 39명이 3단계, 144명이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폐 이외의 질환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폐 손상 이외의 질환은 폐 손상 판정 기준으로는 피해 판정이 불가하거나, 피해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추가 실험 필요한데 손 놓기…환자로만 한정
권성동, 기재부와 지원 예산안 삭감에 한몫
정치권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위해 2013년 5월 추경예산안 50억원으로 증액했다. 이 예산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기재부는 국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법 검토의견서에 “법률안 전체 수용 곤란”이란 의견을 밝혔고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서 보건복지부(2011년 8월)와 질본(2012년 2월)이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원료 간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도 기재부와 함께했다. 권성동 의원은 2014년 12월2일 열린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환경성 질환만 정부에서 선보상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면 (중략) 그러면 교통사고든 모든 사고를 다 그렇게 해놔야 한다”며 “교통사고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기재부는 2016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확대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공문서에 허위사실을 작성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관련 관계 차관회의’에서 4가지 안건이 처리됐다.
당시 안건은 ▲신속한 피해신청자 조사·판정추진 ▲피해자 지원 확대 추진 ▲폐 이외 질환 규명 신속 추진 ▲재발 방지대책 논의 등이었다. 환경부는 다음 달인 6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인한 폐질환의 인정 및 지원 기준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제출했다.
고시의 주요 내용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생활 안정자금 및 간병비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기재부는 환경부의 입장에 대해 “제6조(피인정인에 대한 지원범위 및 방법) 입원 기간 중 발생하는 간병비(입원 간병비)는 해당 피해가 발생한 날로 소급해 산정한다. 다만 입원 기간이 아닌 기간 중 발생하는 간병비(비입원간병비)는 제7조제1항에 따라 간병비를 신청한 날로 소급해 산정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생활안정 자금 및 간병비 지원은 소급하지 않는 것으로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결정한 만큼 동 신설조항 삭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
나 몰라라
실제 고시는 개정됐고 2016년 7월1일 이전에 발생한 입원간병비는 포함하지 않게 되는 등 기재부의 원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됐다. 기재부는 이처럼 고시 제6조 5항에 대한 신설 반대 입장을 제시했다. 이후 허위 문구를 작성해 실제 고시는 원안대로 통과됐다. 실제 이 같은 일로 인해 일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기재부 고용환경예산과 사무관 A씨와 사건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은 전부 징계를 받지 않았다. 고시 개정을 추진하던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 직원들은 차관회의 결정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