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은 한 사람이 유별나게 튀면 된서리를 맞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 문화에서 ‘유일하다’는 특징은 종종 단점으로 작용하곤 했다. 집단생활에서 특별히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유일하다’는 ‘단점’을 지도부 입성 전부터 얻은 정치인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고민정 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가 친 이재명계(이하 친명)로 꽉 채워졌다. 당연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친명계 박홍근 원내대표에 더해 압도적 표 차이로 당 대표에 당선된 이재명 의원, 그리고 친명 최고위원 4명(정청래·서영교·박찬대·장경태 의원)이 지도부로 선출된 것이다.
무거운 어깨
친명 일색인 민주당 지도부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명계 의원이 있다. 고민정 의원이다. 이번 8·28 전당대회에서 고 의원은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친문(친 문재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특히 권리당원 투표와 대의원 투표에서 1위의 정 위원과 근소한 차이를 보여 비명계의 건재함을 알렸다.
고 의원은 권리당원 투표에서 최종 18만4879표(22.02%)를 얻어 23만2126표(약 27.65%)를 얻은 정 의원과 불과 5%p 차이를 보였고, 대의원 선거에서는 3980표(14.2%)를 얻어 4103표(14.64)표의 정 위원과 1% 미만의 차이를 보였다.
당내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에서 크게 밀리지 않은 것이다.
고 의원이 비명계의 건재함을 알렸다고는 하나 친명계의 ‘압승’으로 끝났다는 평가는 뒤바뀌지는 않는다. 당 대표 득표 차가 심하게 났던 것은 둘째 치고, 최고위원 선거에 뛰어든 4명의 ‘비명계’ 의원 중 고 의원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함께 뛰어든 윤영찬 의원은 일찌감치 사퇴했고, 송갑석 의원은 최종 득표율 약 10%에 그쳤다. 이 대표의 독주를 막아보겠다고 야심차게 출마했던 고영인 의원 또한 미미한 득표율(약 4%)을 얻는 데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이렇게 비명계 의원이 하나 둘 낙선하자 고 의원의 어깨는 점차 무거워져갔다.
홀로 지도부에 남아 끝까지 이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느냐, 혹은 고 의원까지 친명계로 분류돼 역할이 미미해지느냐가 민주당 내부의 최대 화두였다.
그는 지난 몇 개월간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재명 불출마론’에 앞장섰던 것도 그였으며 ‘대선 패배 책임론’에 동조했던 것도 그였다.
지난 6월 고 의원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대표에 대해 “나도 사실 이 당선인이 그런 선택(보궐선거 출마)를 한 것에 대해 당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던 바가 있다”며 “이 당선인이 계양을에 나감으로 인해 묶여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 오히려 전국 선거판을 더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었을 텐데 전략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친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런 고 의원의 색채가 최근 좀 달라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 의원이)비명계로 분류되는 것은 사실이나 최근 있었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그렇고, 그런(비명) 색채를 많이 내는 것 같진 않다“며 ”계속 통합을 외치는 고 의원이라 앞으로도 친명 지도부와 잘 융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명 일색 지도부…홀로 살아남아
최근 논조 달라져…친명계로 붙나?
즉 과거 발언들과는 달리 협조적인 자세를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언론 인터뷰에서도 고 의원은 과거의 발언들과는 다른 논조로 이 대표를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친노(친 노무현) 대다수가 친문이 됐던 것처럼 친문도 친명이 되어가는 게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친노와 친문도 구분되지 않았다”며 “친노 대다수가 친문이 됐던 것이고 지금은 그 친문이 대다수가 또 친명이 되어가고 있는 큰 시대적 흐름에 있다”고 현재 당내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고 의원이 정계에 데뷔했을 때는 친노가 친문으로 대거 넘어가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하며 정계에 발을 들였던 바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치러진 조기 대선 당시 그는 대선 캠프 미디어본부 ‘대변인’ 역할을 맡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당시 고 의원은 침착한 메시지 전달과 언론 대응으로 캠프 내 입지를 탄탄히 했으며 이 같은 평가에 힘입어 문 전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까지 발탁됐다.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 건 2년간의 대변인 생활을 마친 해이자 21대 4·15 총선이 있던 2020년이었다. 언론계 인사 4명과 함께 민주당에 입당한 고 의원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지역구였던 광진을에 전략공천 됐다.
당시 상대 당이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내세운 터라 고 의원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정치 신예가 전임 서울시장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추 전 장관이 5선까지 지낸 지역구지만 0선의 후보가 보수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거물을 이길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결과는 고 의원의 승이었다. 최종 득표율에서 오 시장과 약 2.55%p의 격차를 벌리고 고 의원이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때의 승리를 두고 여의도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론에 보도된 ‘주요 격전지 정치자금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고민정, 이수진 두 사람에게 총 1억원가량을 사용했다. 이 중 고 의원에게만 사용된 금액이 6500만원을 상회했다. 저명한 민주당 인사들이 그의 선거유세를 도운 것은 덤이었다. 고 의원의 당선은 순전히 당시 당내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친문 진영의 덕이었다.
결국 배신?
이 같은 배경에서 고 의원이 친명계로 흡수될 것이라고 보는 이는 현저히 적다. 그러나 그의 발언과 최근 민주당 지도부 내부 분위기는 그의 견제가 미미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고 의원은 대의를 위해 무엇을 좇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흐름에 따라 친명계로 흡수될 것인지, 지도부에서 친명계의 독주를 비판할 것인지는 그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