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기 쉽다. 당연히 범죄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절대 다수의 범죄는 가해자도 그 피해자도 사람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전통적 범죄, 특히 대인 범죄는 절대적으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자연인이겠지만 사실은 자연인 외에도 기업 또는 법인(corporation)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최근 동물애호가들이 늘면서 애완동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고, 범죄 피해자로서의 반려동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추세를 반영하듯, 범죄학에서도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학대는 물론이고, 자연환경의 훼손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들을 관심의 초점으로 하는 ‘환경 범죄학’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반대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자연인이 아닌 법인 또는 기업의 범죄행위인 기업범죄(Corporate crime)나, 이를 확장해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olor crime) 또는 엘리트범죄(Elite crime)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에서는 소위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Act)’이라는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동물의 법률적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 최대의 ‘동물법률보호기금(Animal Legal Defense Fund)’은 최근 동물을 피해자, 범행 대상, 표적으로 하는 다섯 가지 대표적 행위로, 동물에 대한 방임(Neglect), 의도적 학대, 투견이나 투계, 유기, 수간을 지정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동물학대를 가정폭력의 범죄로 지정하고 있으며, 더욱 극적인 변화는 이런 범죄의 피해자로 해당 동물뿐 아니라 그 보호자도 범죄의 피해자로 간주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변화는 아마도 애완이나 반려동물이 그냥 동물에 그치지 않고 가족으로 여기고 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그 저변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워싱턴 주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있었다. 주 대법원은 동물 보호자도 동물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가의 심의에서 보호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동물학대는 가정폭력의 범죄라고 지정했다.
해당 판결은 주 양형개혁법(Sentencing Reform Act)과의 충돌을 함축하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이 법에서는 ‘피해자(victim)’에 대한 특정한 규정, 즉 범죄 피해는 혐의가 인정된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람(person)’이나 재산(property)’에 감정적, 정신적, 신체적 또는 재정적 손상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아직은 동물이 ‘법인격(legal person)’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인간만이 피해자로 불릴 수 있다고 ‘양형개혁법’은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하급법원에서는 동물학대법(Animal Cruelty Law)은 우선적으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동물의 보호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보호자를 피해자로 인정하려면, 보호자가 동물에 대한 소유권과 그로 인한 재산권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동물학대법이 아니라 고의적인 기물파손의 피의자로 가해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불복한 주 정부가 주 대법원에 항소한 결과, 애완동물의 보호자도 피해자며, 가정폭력의 범죄고, 보호자에게도 파괴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하급법원의 판단을 뒤집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형개혁법에서 피해자를 ‘혐의가 인정된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람이나 재산에 대한 감정적, 심리적, 신체적, 또는 재정적 손상을 입은 모든 사람’으로 규정했듯이, 보호자도 동물학대의 결과로 적어도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해악(harm)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판단의 배경에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하고, 당연히 동물학대의 피해자로 인식한 것이다. 동물학대를 가정폭력의 범죄라고 지정한 것은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이 동물학대와 가정폭력의 연계를 수십년 동안 수많은 연구에서 지적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해결책은 동물학대가 일종의 가정폭력의 범죄로 인정되고, 따라서 동물학대법이 동물뿐만 아니라 그 보호자도 동물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