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질병관리청이 잠잠하다. 이전 정부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질병관리청이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재유행이 현실화됐다. 이달 하순에 이르면 하루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휴가철과 맞물려 확산세가 커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국적인 물난리로 코로나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사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 중이다.
폭증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발표한 ‘수리모델링으로 분석한 코로나 유행 예측’에 따르면 다수의 연구팀은 이달 말 20만명 중후반대 규모의 확진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감소 추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방역당국 입장에서는 바짝 긴장해야 하는 시기인 것.
당장 고령층이 많은 요양병원과 시설에 비상이 걸렸다. 위중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병상 가동율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 곳곳에 물난리가 발생하면서 수해 지역의 코로나 환자를 관리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당장 수해 복구가 급한 상황에서 코로나 확산 또는 확진자 관리에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에서 이렇다 할 방역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정부의 방역정책을 ‘정치 방역’이라고 비판하면서 ‘과학 방역’을 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문정부에서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정책과는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윤정부 출범 이후 63%에 달했던 긍정 응답이 두 달 반 만에 반 토막 난 것이다.
본부서 청으로 승격한 후…
인사·예산·조직 독립기관
코로나 확산 상황에 대해서는 국민 10명 가운데 6명(62%)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앞선 조사와 비교해 7% 포인트 오른 수치다. 코로나에 대한 국민의 체감 공포는 늘어나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 대응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그 중심에 ‘질병관리청’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문정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정부부처 가운데 한 곳이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정부 주도의 방역정책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질병관리청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했다. 심지어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2020년 9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면서 그 위상도 격상됐다. 정원도 40% 이상 늘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권한을 얹어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질병관리청은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 조직과 인사, 예산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질병관리본부장이던 정은경 전 청장이 초대 청장을 맡았다. 정 전 청장은 코로나 사태 초기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정 전 청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20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청와대는 “방역과 관련해 뛰어난 성과와 업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정 전 청장을 선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 전 청장은 방역의 최전방에서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해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며 “한국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를 대표해 국민 앞에 섰고 매일 투명하게 상황을 발표했다”고 소개글을 쓰기도 했다. 정 전 청장은 문정부 임기 말까지 질병관리청 수장으로 재임했다.
문정부의 ‘신데렐라’였던 질병관리청은 윤정부 들어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윤정부의 코로나 방역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와중에 질병관리청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질병관리청을 두고 ‘질병구경청’ ‘질병관람청’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도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 방역 내세웠지만…
이전 정부와 뭐가 달라?
여야는 지난 2일 21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질타했다. 문정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방역정책, 보건복지부 장관 부재, 정책 신뢰도 하락 등을 비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는 후보자 2명이 낙마한 이후 여전히 공석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여야의 비판에 뭇매를 맞았다. 윤정부가 내세운 과학 방역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백 청장은 “50대 이상 4차 접종 권고”를 문정부 때와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문정부 때도 일부 4차 접종 권고가 이미 있었다”며 “이름은 과학 방역이라 해놓고 국민에게 각자도생하라며 사실상 국가의 역할을 포기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서영석 의원은 “(현 방역정책은)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알아서 각자도생하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냐”면서 “오죽하면 ‘정은경 전 청장을 다시 데려와라. 정은경은 이순신인데 백경란은 원균’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질병관리청을 이야기할 때 질병관람청, 질병구경청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질타했다.
백 청장은 정부부처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과학적 위기관리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타성에 젖어 기존에 해온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게 많다”며 “뭐가 과학적 위기관리인지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잘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잠잠
문제는 현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확산과 재확산을 거듭하면서 코로나 종식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백 청장 역시 지난 4일 “코로나가 천연두처럼 퇴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독감처럼 되는데도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놨다. 질병관리청에 대한 비판 역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