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거리 빠조직’ 말 많은 이재명 팬덤 해부

2022.08.23 06:00:00 호수 1389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BTS(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아미(BTS의 팬덤 이름)의 성공이기도 했다. 이름 없던 무명시절부터 BTS를 사랑한 ‘아미’들은 BTS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이제 이 같은 팬덤 문화가 아이돌들의 전유물만은 아닌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 몇몇 거물 정치인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거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인의 ‘팬덤’은 아이돌의 ‘팬덤’처럼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지자들 사이에 ‘팬덤’이 몰려온 것이다. 몰려온 팬덤은 기존 정당 지지자들과 결을 달리한다. 기존 지지자들이 이념에 따라, 정책 노선에 따라, 혹은 자기 이익에 따라 표를 찍었다면 이들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팬심으로 투표한다.

호평과
부작용

팬덤은 인물의 정당이 어디건 본인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한다. 정계는 이 같은 팬덤 정치를 좋지 않게 평가하고 있다. 팬덤은 정치의 대중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호평받기도 하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더 많이 받고 있다.

팬덤이 정치인의 대중성을 함몰하고 극단적인 성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의 일이다. 그 중심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5월 말, 긴급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 집중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우리 편의 큰 잘못은 감싸고 상대편의 작은 잘못은 비난하는 잘못된 정치문화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민주당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잇따른 성비위 문제와 쇄신하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 지난 여당 시절 저질렀던 여러 실책들 때문에 대중은 하나둘 민주당에 등을 들렸고, 돌린 등은 좀처럼 다시 되돌려지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당 쇄신이 필요하고 해결책으로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제시했다.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은 비단 박 전 비대위원장의 주장만은 아니었다. 비명(비 이재명)계의 대표격 이원욱 의원은 지선 패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덤이란 단어 자체에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이 의원은 “팬덤은 건전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미(BTS 팬덤)’들이 소녀시대가 뜬다고 소녀시대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BTS가 잘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것이지, 훌리건처럼 운동장에 난입하지는 않는다. 이들(이재명 의원의 강성 지지자)은 팬덤이 아니라 ‘훌리건’으로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이 이날 언급한 훌리건은 왜곡된 팬심으로 공정한 경기를 방해하는 극성 스포츠 팬층을 말한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동안 이 의원의 팬덤이 비명계 의원들과 박 전 비대위원장 등 이 의원에 반기를 든 세력에게 일종의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문자폭탄을 받는 건 강성 비명계 의원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의원실에는 종종 배신자를 뜻하는 수박이 배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강성 팬층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의원의 팬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킨 ‘손가락혁명군(이하 손가혁)’과 대선 때 대거 유입된 ‘개딸(개혁의 딸들)과 양아들’ 그리고 당의 개혁을 바라는 ‘대세층(중도세력)’이다. 

손가혁은 이 의원의 핵심 지지층을 형성한다. 이 의원은 현재 이들이 해체했다고 믿고 있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손가혁의 회원 대부분은 아직도 이 의원의 지지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직 건재한 손가락혁명군, 총사령관에 ‘명?’
지난 10년간 선봉서 활동…불어난 2030 세력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직후인 2010년 초부터 이 의원의 곁을 지켜온 이들은 그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손가혁은 본래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경 형성된 인터넷 사조직이다. 이들은 온라인 활동으로 비주류 정치인인 이 의원을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정치적 개혁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손가혁을 설립했다.

이후 2015년 경선 직전에는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으로 카페명을 바꿔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고, 대선 경선이 끝난 후에는 ‘재명 투게더’로 이름을 다시 한 번 바꿨다. 손가혁은 이 의원의 개혁 성향에 반해 그에게 뜻을 걸고 있는 세력이다. 이 의원의 진보적인 인권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정책에 특히 큰 점수를 준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급작스러운 자살이나 성비위 문제 등으로 와해된 급진 개혁 세력 또한 손가혁으로 대거 흡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의원의 팬덤 내에서 뿌리가 깊은 만큼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 성향도 가장 강하다. 이른바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테러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이들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의 주된 무기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인터넷 기반으로 정보 공유를 활발히 하며 SNS나 타 세력의 홈페이지, 뉴스 기사 등에 댓글이나 비난 글들을 주로 올린다.

이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경선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펼칠 때 손가혁 회원들은 야권 사이트 등에서 친문(친 문재인) 성향의 글들을 주로 비판했고, 나아가 친문 세력 전체에 대해 조롱 섞인 비난 글을 다수 개재했다고 알려진다.

이 의원 또한 이 같은 손가혁의 팬심을 자기 정치에 적극 활용해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 의원 본인이 이런 팬덤을 ‘창시’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의원은 실제로 2015년경 본인의 SNS에 ‘손가혁 모집요강’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글에는 “1. 손가락이 건강하고 건전할 것 2. 옳은 말과 글에는 마구 흥분할 것 3.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을 것 4. 새누리당, 일베 요원이 절대 아닐 것 5. 비록 적이라도 욕은 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


이후 세가 불어난 손가혁 회원들을 데리고 이 의원은 SNS를 통해 정치운동을 빠르게 전개해나갔다. ‘SNS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다. 이 의원은 SNS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에서의 지명도를 업고 성남시 복지사업에 대한 성과를 널리 알렸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손가락혁명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기사에 욕설 댓글이 난무. 응원 댓글 좀 부탁합니다”(2015년 9월경 이 의원이 올린 글에서 발췌) 등의 부탁을 대놓고 하기도 했다.

이들의 강성 성향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빛을 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탄핵 역풍을 기억하고 있던 정치세력 모두가 ‘탄핵’이란 단어를 쉬쉬할 때, 강성 성향의 이 의원 지지자들은 탄핵이란 단어를 서슴지 않았다.

이 의원 본인 또한 이들의 환호에 힘입어 촛불 시위 현장에서 당시 야권 세력 최초로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나간 직후 민주당 지도자가 대거 모인 촛불 집회에서 이 의원은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다”며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주장해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의 열띤 성원을 받았다.

이때의 탄핵 발언은 후에 그를 대통령 후보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재명 탄핵 사이다’란 동영상이 인터넷에 빨리 퍼지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론이 공론화됐고, 몇몇 언론은 이 의원을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공신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 초년생부터 그의 곁을 지킨 손가혁 멤버들이 이 의원 팬덤의 코어를 형성하고 있다면, 코어 가장 가까이에는 지난 대선 때 유입됐던 ‘개딸’로 불리는 2030 여성 세력들이 있다. 이 의원의 딸뻘 연령층인 이 세력은 이 의원의 팬으로 유입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법 강한 결집력과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뜨거운 열정
반감 세력도

한 드라마에서 나온 ‘개같은 성격의 딸’이란 대사를 대중은 ‘개딸’이란 단어로 줄여 사용했는데, 이후 누리꾼들은 성격이 괴팍하고 괄괄한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개딸을 즐겨 사용했다.

이 의원의 개딸 지지층은 본인들을 가리켜 ‘개혁의 딸’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손가혁 회원들은 이들이 손가혁 설립 당시 본인들이 가졌던 열정만큼 매우 뜨거운 팬층이라고 치켜세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세대 포위론을 적극 수용해 2030 남성 표심을 공략한 바 있다. 세대 포위론이란 20대~50대 이상의 표심을 장악해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3040대 표를 에워싸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이 전 대표는 정통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20대의 표심을 돌려놔야 했다.

그 방법은 성별 갈리치기였다. 이 전 대표는 젠더 갈등이 심한 현대의 사회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정치로 끌어들였다. 20대 남성들이 당하는 역차별 문제를 공론화시켰고 여성가족부의 무용론을 주장했다.

또 지난 몇 년간 사회에서 발생한 각종 젠더 이슈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20대 남성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남성들을 열광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동시에 2030 여성들의 반감도 대거 샀다.

이 같은 국민의힘 모습에 반감을 산 세력이 이 의원의 지지층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측의 세대포위론에 대항해 여성표 결집을 시도했다. 이재명 대선 캠프는 이 전 대표가 주장한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대선운동 과정에서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2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박 전 비대위원장을 직접 영입한 것도 이 의원 본인이다. 20대 여성뿐 아니라 일부 남성도 팬층에 합류했다. 이들은 ‘양아들’이라 불리는데, 뜻은 ‘양심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양아들 또한 개딸과 함께 현재 이 의원의 핵심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향도 이들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중 하나는 정치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상의 유행어나 밈에 익숙한 이들이기에 어려운 정치현상을 재밌게 바꿔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종종 이 의원을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빗댄다.

예를 들어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데뷔시키자’나 ‘이재명 센터 해’ ‘이잼 덕질’ 등 친숙한 용어들을 붙여 대중에게 ‘정치’를 전달했다.

개혁 의지 ‘개딸’ 
양심의 ‘양아들’

그러나 이 ‘덕질’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손가혁 회원들이 했었던 타 세력에 대한 공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타깃은 주로 친문 의원들이다. 개딸은 본래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닌 이 의원 개인을 지지해 당에 편입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전통 민주당 세력인 친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이 의원을 옹호할 때 자주 친문에 총구를 겨눈다.

지방선거 후 몇몇 인사가 이 의원의 책임론을 언급하자 개딸들은 그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일을 주도했고 주요 인사들의 사무실에는 ‘치매’ 대자보를 걸어 도배하는 작업을 했다. 또 친문 의원실을 공격하기 위해 ‘팩스 공격’이라는 방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이들이 사용한 팩스 공격은 수백통의 팩스를 의원실에 보내는 방법인데 여기서 보내는 종이는 그냥 일반적인 A4 용지가 아니라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의 이른바 ‘검은 종이’ 팩스다.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잉크가 빨리 닳게 돼 의원실에선 프린터기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팩스 공격을 기억하는 친문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때 한동안 옆 의원실에 프린터를 빌리러 갔던 기억이 난다”며 “정말 종일 팩스가 왔고 잉크가 소진됐다. 잉크값 처리하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의원의 마지막 팬층은 민주당 내 ‘대세층’이다. 사실 이들을 팬층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하나 최근 이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충성심이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기존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을 배척하자는 데 동의하면서 팬덤에 흘러들어왔다. 때문에 손가혁과 개딸 팬덤군에 비해서 충성도와 결집도는 가장 약하다.

대세층은 당의 개혁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이던지 지지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 의원만큼 좋은 인사는 없다. 친문 세력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지난 대선에서 인기와 실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표로 당선된다면 ‘손가혁’과 ‘개딸’층과 같이 확실한 팬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 내 중론이다.

이 의원의 득세를 저지하려는 비명 세력에게 이들은 좋은 포섭 대상이지만 그들의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들의 상대로 떠오른 박용진 후보에 대한 결집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마땅한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 친문 세력에게도 이들은 깊은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유동층

팬심이 두터운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매우 유리하다. 흠들림 없는 지지율은 정치인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들을 구해오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노사모가 그랬고, 박 전 대통령의 박사모가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호남 기반의 강력한 팬층의 도움으로 대통령까지 당선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건강함’을 유지했을 때 대통령 당선이 실현됐다. 이제 반대로 이 의원이 팬덤의 행보를 감시해야 할 때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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