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의 막내아들이자 장남인 최정규씨가 기타 비상무 이사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일단 큰딸 최현수 대표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지만 최종적으로는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포석이란 관측도 나오는 상황. 최 대표의 좋지 않은 성적표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한다.
깨끗한나라가 7년째 오너 3세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경영을 이끌고 있는 최현수 대표의 동생 최정규씨가 수년 전 최대주주로 올라선 데 이어, 최근엔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경영수업
대한펄프공업이 모태인 깨끗한나라는 1966년 고 최화식 창업주가 세웠고, 1980년 최병민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았다. 1985년 금강제지를 인수한 뒤 생활용품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달 26일 업계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정규 기타 비상무 이사를 사내 등기임원으로 선임했다. 2020년 3월 기타 비상무 이사에 올라 깨끗한나라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지 2년 만이다.
최 이사는 1991년 6월생으로 올해 만 31세다. 나이가 30대가 되자 경영승계를 위한 경영 수업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최 이사의 회사 내 직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깨끗한나라 본사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 조직인 기획·회계·금융 분야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가 과거 경영기획실장과 경영기획담당 상무 등을 지낸 것처럼 최 이사도 회사의 기획·재무 부서에서 근무하며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가 경영을 이끄는 동안 깨끗한나라의 경영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최 대표는 2019년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20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깨끗한나라는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되찾은 이후 2016년까지는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며 매출 7000억원(2016년 매출 706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후 매출액은 ▲2017년 6599억원 ▲2018년 6263억원 ▲2019년 5941억원 ▲2020년 5915억원 ▲지난해 5786억원으로 계속 줄었다.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유해성 논란’ 여파가 컸다.
수익성 면에서도 ▲2017년 -252억원(적자전환) ▲2018년 -292억원 ▲2019년 51억원(흑자전환) ▲2020년 520억원 ▲지난해 130억원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발 당시 마스크 판매 효과로 깜짝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지난해엔 국제 펄프 가격 상승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
1979년생인 최 대표는 일찌감치 경영 수업을 받았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졸업 이후 지난 2006년 깨끗한나라에 입사했다. 마케팅팀과 생활용품 사업부 등을 거쳤다.
최 대표는 전무로 재직할 당시 개발한 기저귀 브랜드 ‘우리아기 첫 순면 속옷’과 아기용 프리미엄 물티슈 ‘비야비야’의 흥행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너 3세 가운데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다는 해석이 나왔고, 최 대표는 향후 깨끗한나라를 이끌 후계자로 언급됐다.
하지만 최 이사는 최 대표이사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선보인 바 없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경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장녀 최 대표의 승계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업계 내에선 최종적으로 최 이사가 깨끗한나라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관측한다. 경영승계를 좌우하는 지분에서 최 이사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다.
사내이사 선임… 지분서 절대 우위
경영 최전선엔… 그래도 아들 우선?
현재 기준 최 이사의 지분율은 15.96%(600만2594주)로 누나 최현수(7.63%)·최윤수(7.62%) 대표보다 각각 2배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누나 둘 지분을 더해도 최 이사 지분율에 못 미친다. 최 회장과 구미정 여사 지분율은 각각 3.63%와 4.92%다. 단일 최대주주는 희성전자(20.42%)다.
2008년까지만 해도 깨끗한나라 최대주주는 최 회장(67.58%)이었다. 그러나 계속된 적자로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최 회장은 2009년 사돈기업인 희성전자에 지분을 넘겼다. 이후 깨끗한나라가 살아나자 최 회장 일가는 2014년 다시 지분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대학생(미국 유학 등)이었던 최 이사로 승계 무게추가 쏠렸다. 이전까지 최 이사가 소유한 깨끗한나라 주식은 ‘0’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분 승계 상황을 보면 최정규 이사가 깨끗한나라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범LG가에서 ‘장자승계의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최 이사에게 경영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 이사가 이제 막 회사 경영에 발을 들였고 나이도 30대 초반으로 어린 만큼 경영권을 이어받으려면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에 산적한 숙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릴리안 생리대 파동 이후 줄곧 하락세를 이어오던 깨끗한나라는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판매량이 급증해 2020년도 영업이익이 1년 만에 10배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듬해엔 다시 130억원으로 급감했다. 깨끗한나라에는 호재로 작용했던 코로나마저 끝을 보여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가족회사 내부거래 의혹도 해결해야 한다. 깨끗한나라는 주식회사 보노아와 케이앤이 이외에 특수관계회사로 온프로젝트 등을 두고 있다. 온프로젝트는 차녀 윤수씨가 대표로 있는 광고대행사다. 2015년 8월에 설립됐고 주로 깨끗한나라의 광고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온프로젝트에 매년 수수료 명분으로 20억원 안팎의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7년 동안 총 127억2349만원의 수수료가 온프로젝트에 지급됐다.
앞서 깨끗한나라는 가족회사 나라손, 용인시스템의 내부거래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두 회사 모두 윤수씨가 경영을 맡았었다. 특히 나라손은 1993년에 설립된 화장지 제조기업인데, 그간 100억~300억원의 연간 매출 가운데 95% 이상을 깨끗한나라에서 냈다.
산적한 숙제
인력 파견 업체인 용인시스템도 깨끗한나라로부터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챙겼다. 특히 2017, 2018년에는 깨끗한나라가 용인시스템에 지급한 연간 수수료만 각각 323억, 335억원에 달했다. 다만 깨끗한나라는 아직까지 대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아 현행법상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