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장애 가진 22명의 작가들

2021.08.03 10:18:49 호수 1334호

“길이 왜 다 구불거려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이 발달장애 작가 16명과 정신장애 작가 6명 등 총 22명의 작품 737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순수한 자기 몰입의 창작과 그 존재 방식을 향한 사회의 관습적인 시선에 던지는 질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1년 기관 의제는 ‘배움’이다. 미술관에서, 미술관에 대해, 미술관을 통해서 배우며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에 작가들이 준비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는 이 같은 배움의 의제를 반영한 전시다. 

너무나 긴 길

이번 전시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작가가 참여했다. 기존 미술제도와 무관하게 오직 자신의 내면에 몰입해 독창적인 창작을 지속해온 발달장애 작가 16인, 정신장애 작가 6인 등 총 22명의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오랫동안 발달장애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전시를 기획해온 ‘밝은방’의 김효나를 초청 기획자로, 김인경과 이지혜를 협력 기획자로 해서 서울을 비롯한 광주, 보령,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작가를 찾아 그들과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했다.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라는 전시명은 작가 김동현의 답변에서 시작됐다. 누군가 세밀하게 묘사된 구불거리는 길이 가득한 커다란 지도 그림을 보고 김동현에게 물었다. “길이 왜 다 구불거려요?” 그러자 김동현은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이에요”라고 답했다. 


발달장애 16인과 정신장애 6인
지도 그림에 대한 질문과 답변

너무나 긴 ‘길’은 전시에 참여하는 발달장애, 정신장애 작가들의 삶과 일상을 의미한다. 조그만 ‘종이’는 이들의 작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독창적 창작을 상징한다. 

이들의 작품은 ‘장애 예술’ ‘아웃사이더 아트’ 등의 미술사적‧사회적 수식에서 벗어나 ‘자기 몰입의 창작활동’으로 기능한다. 전시는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세계를 그 내용과 속성에 따라 ▲일상성 ▲가상세계의 연구 ▲기원과 바람 ▲대중문화의 반영 ▲노트 작업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들은 산책, 그림자, 지하철 노선도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놀라운 독창성을 끌어내 창작의 풍경을 표현했다. 또 가상의 생명체나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들이 활동하는 세계 구현에 몰입하는 창작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기원과 바람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 자체가 창작이기도 한 작가들은 자신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세밀하게 변주해 무한히 반복하는 특성을 보였다. TV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등 대중문화의 요소를 흥미롭게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창작세계 역시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얼굴과 기억’ ‘색면추상’ ‘픽셀’이라는 좀 더 세부적인 주제로 연결되는 작품에 이어 이 모든 창작세계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노트 작업이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길에서 나눠주는 공짜 노트나 값싼 연습장, 이면지는 작가들의 독창적인 세계가 처음 시작된 공간이자 그 세계가 무한히 변주되며 지속되는 주요한 창작 공간이다. 

이면지 등 소박한 노트에
한계를 초월한 독창적 창작

노트 섹션에서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미술 재료가 아닌 작고 소박한 이면지, 공책 등 종이 위에 자유롭고 솔직하게 펼쳐진 낙서와 메모, 스케치, 그림까지 작가들의 다양한 노트를 만나볼 수 있다. 

노트는 창작물로 인식되기 전에는 의미 없고 쓸모없는 낙서,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 여겨져 정기적으로 버려지거나 방치되곤 했다. 연약하고 허름해 때론 버려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노트 작업 속엔 작가들이 몰두한 기나긴 시간, 즉 이들의 삶이 들어 있다. 

김효나 기획자는 “이번 전시는 순수한 자기 몰두의 창작과 그 존재 방식에 관한 사회의 관습적인 시선에 질문을 던지며 ‘자신 안에 갇혀 외부세계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열려 있는’ 상태로 시선의 방향을 달리 해볼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조그만 종이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물리적인 한계를 넘나드는 창작자들의 몰입 세계를 느끼고 나눌 수 있길 바란다”며 “서울시립미술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지 않고 사용자, 생산자, 매개자의 다양한 주체로 환대하며, 미술관을 통해 모두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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