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화제작 <우리 이혼했어요> 관음증이냐 리얼리티냐

2020.12.08 12:32:11 호수 1300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결혼한 네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시대다. 한때는 마녀사냥의 소재였지만, 이제는 흠으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최근 론칭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으로 아픈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초반부터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다. 이혼한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춰보는 이 프로그램은 최고조에 이른 미디어 관음증일까, 시대를 반영한 리얼리티일까?
 

▲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 ⓒTV조선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스트레스 중 가장 높은 원인은 배우자와의 사별이고, 두 번째는 이혼이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했던 사람과의 완전한 이별은 정신적 고통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도의 영역

당사자가 겪는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아무리 이혼하는 남녀가 늘어났다고 해도, 이혼에 대한 이야기는 긴밀한 관계에서나 할 수 있는 소재에 가깝다. 방송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혼을 경험한 출연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농담의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그러한 자학이 오롯이 진심이었을까. 방송 소재로 쓰이기에 이혼은 여전히 ‘금도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TV조선이 파격적인 설정의 예능을 내놨다. <우리 이혼했어요>다. 

예로부터 유교 질서와 체면을 중시해온 한국사회에서 이혼한 남녀가 2박3일 동안 여행하며 속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설정의 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제작이 무산될 것이라는 예견도 많았다. 


신동엽과 김원희도 이 방송의 제의를 받고 ‘여기는 할리우드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하고, 출연자인 최고기는 채널명을 ‘TV LA’로 바꿔야 한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섭외가 너무 어려워 제작이 무산될 위기를 거쳤으나, <우리 이혼했어요>는 마침내 지난 11월20일 첫 방송됐다. 시청률은 무려 8.995%(닐슨코리아). 3%만 넘겨도 중박이라고 불리는 요즘의 시청률을 감안하면 첫 회 시청률은 역대급이다.

출연자는 8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이영하와 선우은숙, 부부 유튜버로 알려져 있던 최고기와 유깻잎이다. 세대가 다른 두 커플은 이혼 후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혼 13년차 이영하·선우은숙은 가슴에 진 응어리가 절절했고, 7개월 차인 최고기·유깻잎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소탈한 모습이었다. 

이혼한 사람들의 대화는 시청자들을 급속도로 몰입시켰다. “자기야, 나 궁금한 게 있어”라며 그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질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선우은숙에게,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회피하는 이영하의 얼굴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여전히 부부 사이인 듯 서로에게 안마를 해주는 최고기와 유깻잎의 모습이나, <우리 이혼했어요> 촬영 도중 유튜버인 전 남편이 유튜브 방송을 위해 부른 이혼한 여자(배수진)의 아들을 케어하는 유깻잎의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눈길을 끌기엔 충분했지만 ‘이혼을 만남의 실패로 정의하는 데서 벗어나, 성숙한 관계를 설정하고 인생에 대한 이해와 힐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 보고자 했던 제작진에 기획 의도에 부합한 프로그램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혼을 얘기해?’ 시청률 10% 목전
시작된 마녀사냥…2차 상처 우려 

아직 심정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이영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감정을 쏟아내는 선우은숙이나, 전 아내의 아픔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영하의 언행은 두 사람이 진실한 대화를 나누길 바랐던 시청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그뿐만 아니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러 나온 자리에 친구를 불러 진탕 술을 먹으며 선우은숙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조수석에서 뻗어버리는 이영하의 행동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될 희망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시청자는 갸우뚱하게 된다. 

비록 이영하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와 함께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다는 속내를 털어놓긴 했지만, 마지막날 저녁까지 친구들을 불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엔 건널 수 없는 평행선이 그어져 있는 듯했다. 


둘 사이는 둘만 아는 것이라 하지만, 이영하의 행동이 시청자들도 속상함을 느끼는 건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2박 3일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13년 만에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 ⓒTV조선

결혼 기간 중 아버지와 아내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밝힌 최고기가 굳이 유깻잎에게 “우리 아빠는 네 욕 계속 하던데”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보이는 대목이다. 또 어린 아이 앞에서 엄마인 유깻잎을 험담하는 최고기 아버지의 행동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신동엽과 김원희를 비롯해 정가은, 김새롬 등 MC진이 이혼 당사자들의 진솔한 언행에 속 깊은 리액션을 보이면서 자극적인 면을 중화하고 있지만, 시청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모두 감싸기엔 역부족이다.

워낙 예민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보니 <우리 이혼했어요>는 출연자의 작은 행동 하나로 인해, 의미가 퇴색될 확률이 높다. 출연자의 태도가 진솔하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는 관음증적인 프로그램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시청자들의 과몰입으로 출연자에게 2차 상처만 남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편집할 때 컷 하나까지 유독 더 세심하게 선택해야 하는 제작진의 노고가 불가피하다. 

비록 문제점이 보이긴 하지만, <우리 이혼했어요>가 국내 예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경험한 사람들만 알고 있는 등 음지의 영역이었던 이혼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주제로 끌어올린 점, 이혼으로 인해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상처의 깊이를 비교적 선명하게 알린 점, 이혼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던 통념과는 다르게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인식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 등은 제작진의 용기있는 도전이 낳은 산물이다. 

특히 이혼한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 오해와 앙금을 털어놓을 수 유일한 기회라는 점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여지를 주며, 비록 아쉬움이 묻어나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출연자들의 표정과 눈빛, 말 한마디에는 진심이 가득 묻어있었다는 점도 희망적인 부분이다.

오해와 앙금

이제 첫걸음을 뗀 <우리 이혼했어요>가 과연 시대를 앞서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진과 MC진, 출연진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다는 전제가 성립돼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결핍을 채우기보다 상대의 일상을 응원하는 마음가짐이 뒷받침된다면,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국내 예능 역사의 새로운 한 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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