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병의 마이웨이 ‘꼬이네’

2008.12.02 09:33:20 호수 0호

정몽근·유재필 명예회장 ‘같기도’ 행보 사연

재계를 대표하는 두 명예회장이 경영 은퇴 이후 유사한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주인공은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과 유재필 유진그룹 명예회장. 두 노장은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미련 없이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서 그룹 자문역할을 맡고 있다. 평소엔 골프 등 취미와 외부활동에 전념하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두 명예회장은 대학 인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공교롭게도 대학 인수 프로젝트가 난항에 난항을 거듭하며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올해 66세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과 76세인 유재필 유진그룹 명예회장. 각각 유통과 건설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두 노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경영 은퇴 이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2006년 말 건강상의 이유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장남인 정지선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며 후계구도에 마침표를 찍은 것.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5년 만에 35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이때부터 정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해왔다.

현대백, 서원대 인수 추진

유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는 1984년 레미콘, 시멘트 등 건설소재업체인 유진기업을 세운 뒤 이듬해 장남 유경선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이후 유 명예회장은 1994년 2월 자신이 1980년대 후반부터 설립을 주도한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초대회장으로 선임돼 지금까지 14년간(6선) 레미콘조합을 꾸려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임기가 2년이나 남은 레미콘조합 회장직에서 돌연 사임했다. 유 명예회장의 사실상 재계 은퇴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과 유 명예회장은 각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뒤 간간이 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을 다독이는 등 여전히 그룹의 든든한 우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룹을 직접 이끌지 않을 뿐이지 회사 내부 행사는 물론 집안과 외부 경조사, 재계 모임 등에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점은 두 명예회장이 은퇴 이후 ‘같지만 다른’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인수가 그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충북 청주의 서원대학교 인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은밀히 의사를 타진하다 지난 7월 서원대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서원대 채권단에서 먼저 채권 인수 협상을 요청했다는 후문. 무엇보다 평소 육영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인 정 명예회장의 적극적인 인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06년 6월 100억원을 투자해 ‘현대백화점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 이후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대학 인수를 검토해왔다. 정 회장이 50억원, 정 명예회장이 20억원 가량의 사재를 출연했다. 나머지 30억원은 현대쇼핑, 현대홈쇼핑 등 그룹 계열사 출연금으로 채워졌다. 이 복지재단은 아동 대상 장학사업뿐아니라 복지시설 지원 등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과 관련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 명예회장은 직접 대학 인수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역시 사회공헌 일환에서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광운대학교가 타깃.

평소 교육사업에 강한 애착을 보인 그는 지난 2월 그룹과는 전혀 별개인 개인의 투자 형식으로 사재를 내놓고 광운학원 재단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레미콘조합 회장직 사임 당시 업계에선 유 명예회장이 광운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이 추진한 대학 인수 모두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대학 인수 프로젝트가 난항에 난항을 거듭하며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점은 두 명예회장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현대백화점그룹과 서원대 측은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채권 평가액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예상하는 채권인수금액은 150억원 정도. 반면 채권단 일부 관계자들은 이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재필, 광운대 러브콜

서원대는 1992년 재단(당시 운호학원) 이사장이 거액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피한 후 이사체제와 부채 해결 등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을 겪어왔다. 급기야 2003년 취임한 박인목 전 이사장마저 최근 이사회 등을 속인 혐의(업무방해 등)로 검찰에 불구속되면서 내홍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인수를 추진하던 현대백화점그룹은 인수와 포기, 검토 등을 반복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 결국 다시 조심스런 태도로 돌아선 분위기다.

사정은 유 명예회장도 마찬가지다. 당초 1300억원 정도를 투자할 복안이었던 유 명예회장은 지난해 말 광운대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지만, 재단 설립자와 임시이사들 간 이해관계 충돌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자 최근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운대는 입시부정사건과 법인운영권 다툼으로 1997년 2월부터 제1기 임시이사단이 운영을 대신해 왔다.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학교 설립자 측과 임시이사단 간 갈등 등으로 광운학원 정상화 계획에 대해 승인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 은퇴 이후 상징적인 측면에서 그룹을 돌보면서 제2,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명예회장이나 고문들이 교육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 이후 재벌그룹들의 대학 인수 시도 소식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이해관계자들 의견 차이로 매각 작업들은 하나같이 지지부진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