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기사 폭주 vs 만취 손님’ 택시사고 공방전

2011.10.08 11:10:00 호수 0호

수상한 택시사고, 정말~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사고. 어쩌면 확인된 것보다 ‘미스터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감시의 눈’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거짓말은 불과 몇분 만에 들통 나는 첨단 멀티미디어 시대라지만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의혹’이 둥둥 떠다니는 나라, 진실을 가리는 법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가운데 지난해 추석 연휴 첫 날 일어난 교통사고 판결이 1심과 달리 2심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기사와 잠만 잤다고 주장하는 손님. 법원은 1심에서 택시기사의 손을 들어 손님에게 징역형을 내렸지만 2심에선 손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날 밤, 좁은 택시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추석 연휴 첫 날 일어난 교통사고 판결, 2심에서 전혀 다른 결과!
기사 “손님이 때려 사고 났다” 손님 “술에 취해 자고 있었을 뿐”


지난해 추석 연휴 첫 날인 9월21일 새벽 3시30분. 오래전 막차가 떠난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인근에서 한 남자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대며 택시를 잡던 회사원 A(41)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B(70)씨가 운전하는 택시 조수석에 몸을 싣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적막한 거리, 부쩍 차가워진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던 택시는 장한평역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고 천천히 속력을 높여 달리던 얼마 뒤, 택시는 갑자기 옆 차선의 택시와 부딪친 뒤 인도로 돌진해 가드레일과 가로수, 지나가던 여성 C(28)씨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C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손님이 때려서?



사고로 말미암은 피해는 명확했지만, 사고 직전 좁은 택시 안에서 벌어진 상황은 애매모호했다. 처음 사고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건 택시에 탔던 회사원 A씨였다.

택시운전자 B씨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조수석에 앉은 손님 정씨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더니 멱살을 잡고 마구 때렸다”며 “폭행을 피하려고 머리를 숙이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사고를 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A씨는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을 뿐 때리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운전자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 A씨의 운전자폭행치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지난 2월 징역 3년6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B씨가 사고 직후 뇌진탕 등 상해를 입은 상태로 A씨의 허리를 붙잡고서 “살려주세요, 112에 신고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주요한 근거가 됐다.

한편 B씨는 별개의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데 대해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며, 항소하지 않아 올해 5월 확정됐다.

잠만 잤을 뿐!

하지만 A씨와 검찰의 쌍방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조경란)는 지난달 22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재판이 진행될수록 사고에 대한 B씨의 증언이 달라진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택시 안에서 A씨가 했다는 욕설의 내용과 맞았다고 주장하는 부위의 순서 등에 대한 B씨의 진술이 경찰, 검찰, 원심과 항소심 법정에서 계속 달라지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또 사고로 오른쪽 눈 부위가 붓고 피가 날 정도로 다친 B씨와 달리 A씨가 거의 다치지 않은 것에 비춰보면 당시 A씨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폭행이 이뤄지는 동안 정상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어려웠을 텐데도 차량이 완만히 가속된 사실도 B씨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속력은 시속 52㎞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상당한 상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B씨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직전의 또 다른 교통사고도 영향을 미쳤다. B씨가 신호가 바뀐 뒤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옆 차로 택시를 스치는 사고가 났지만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 억울함을 호소하는 B씨가 이 사고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고도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은 점도 무죄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정황상 B씨의 주장은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고, 원심에서 제시된 유죄의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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