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삼성 2인자’ 이학수 빌딩 미스터리

2011.09.30 14:30:00 호수 0호

‘이건희 그림자’ 몰래바이트 뛰었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한때 ‘이건희 오른팔’로 삼성그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전 삼성 전략기획실장).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이 고문의 심상치 않은 바깥 행보가 포착됐다. 아무도 모르게 강남 대형빌딩을 샀는데, 이를 두고 제기되는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이학수 빌딩’은 안 그래도 재계에 이 고문을 둘러싼 요상한 소문들이 돌던 터라 더욱더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서 물러나 두문불출…심상찮은 바깥행보 포착
일가족 회사 통해 강남 테헤란로 19층 건물 매입

‘삼성 2인자’였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이 강남 테헤란로에 대형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이 고문은 시세 차익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매입 경로와 시기 등 ‘이학수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학수는 누구?]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과를 나와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 고문은 1982년 고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된 후 삼성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왔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에 오른 후엔 더욱 그랬다.

계열사 사장들은 이 회장에게 보고하기 전 이 고문을 거쳐야 했다. 한때 이 회장의 인감이 이 고문 손에 있었을 정도다. 그룹의 주요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신뢰를 받았다는 방증이다.

이 고문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등 삼성그룹이 위기 때마다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또 1996년 세풍, 2005년 X파일, 2006년 에버랜드CB 등 잇따른 ‘외풍’도 몸소 막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칠수록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08년 ‘특검 쓰나미’는 피하지 못했다. 이 고문은 특검에 의해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고, ‘삼성 쇄신안’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왔다.

[어떤 경로로 매입?]

이 고문은 자신의 명의로 직접 빌딩을 매입하지 않았다. 이 고문과 부인, 자녀 등 일가족이 대주주와 경영진으로 있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LNB Investment)란 회사를 통해 사들였다.

화제의 빌딩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0-6, 890-7번지에 있는 엘앤비타워. 대법원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부지를 먼저 매입하고, 이 자리에 엘앤비타워를 세웠다.

땅 주인이 된 것은 2006년 3월. 엘앤비인베스트먼트(당시 다성양행)는 두 필지의 토지를 각각 김모씨와 박모씨로부터 매입, 곧바로 관할구청의 허가를 받아 그해 8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이 완공된 것은 2008년 8월이다. 당초 대치동오피스빌딩에서 현 상호로 바뀌었다.

엘앤비타워는 지하 4층 지상 19층의 상업용 빌딩으로, 대지면적 1222㎡(약 370평)에 연면적 1만3936㎡(약 4223평) 규모다. 현재 이 빌딩은 우리은행(128억원),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37억원) 등으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상태다.

[엘앤비는 어떤 회사?]

이 고문의 땅 매입 사실을 전한 언론들은 대부분 회사명을 L&B인베스트먼트로 표기했다. 그러나 법인등기부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확한 사명은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확인됐다. 빌딩도 L&B타워가 아닌 엘앤비타워다.

1990년 4월 설립된 이 회사는 사무실 등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체로, 지난 4월 다성양행에서 엘앤비인베스트먼트로 상호가 변경됐다. 다성양행은 수출입품 대행과 물품매도 확약서를 발행한 ‘오퍼상(개인 무역회사)’이었지만, 빌딩을 매입하면서 업종을 임대업체로 전환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수차례의 증자를 거쳐 현재 200억원으로 불어났다. 총자산은 681억원, 총자본은 190억원, 총부채는 491억원로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59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4억원, 12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매출 58억원, 영업이익 36억원, 순이익 11억원으로 비슷했다. 직원은 4명이 전부다.

[이학수와 엘앤비 관계?]


그렇다면 이 고문과 엘앤비인베스트먼트는 어떤 관계일까. 이 고문은 부인 백운주씨와 사이에 2남1녀(상훈-상호-상희)를 두고 있는데, 지난 8월 말 기준 이들 5명은 똑같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20%씩 보유하고 있다. 자본금이 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각자 40억원씩 투자한 셈이다.

정확한 투자 시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학수 일가’가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시기와 건물 부지 매입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백씨는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부지를 매입하고 보름 뒤인 2006년 3월 말 이 회사의 이사로 선임됐다. 외동딸 상희씨도 같은날 감사로 등재됐다. 모녀는 2009년 3월 다시 중임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과 같은 경로로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재용씨와 이 고문의 인연이다. 둘은 고향이 경남 밀양으로 동향이다. 특히 박씨는 삼성물산·삼성자동차 이사 등을 역임한 ‘삼성맨’출신. 이 고문이 삼성화재 부사장 등으로 있었을 당시 박씨는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장 등을 맡기도 했다.
이 고문의 두 아들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장남 상훈씨는 BoA메릴린치에서, 차남 상호씨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익 얼마나 되나?]

이 고문 일가는 엘앤비타워 부지와 건물의 시세차익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면서 ‘돈방석’에 앉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교통부 조회 결과 엘앤비타워 부지의 공시지가는 이 고문 일가가 땅을 매입하기 직전인 2006년 1월 단위면적(㎡)당 2110만원에서 지난 1월 2760만원으로 올랐다. 공시지가만 따져도 5년 만에 약 250억원에서 340억원으로 뛴 것이다.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공시한 보유 토지의 장부가액은 이보다 많은 410억원이다. 여기에 국세청이 산정한 건물 기준시가(약 250억원)를 더하면 총 6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훨씬 웃돈다. 엘앤비타워는 건축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축빌딩에 속한다. 위치 또한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 중 노른자’라 할 수 있는 테헤란로변 요지에 있다. 지하철 2호선이 약 2분 거리(80m)인 최고 상권으로 꼽힌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추정가는 대략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단순 계산상으로 이 고문 일가는 200억원을 투자한 회사를 통해 2000억원의 부동산을 거머쥔 셈이다. 다시 말해 식구 1명당 360억원의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한 중개인은 “엘앤비타워는 평당 450만원 안팎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매매를 할 경우 토지 및 건물가격과 건축비 등을 합치면 2000억원 정도로 평가된다”며 “얼마 전 이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이 이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매입 시기 문제없나?]

문제는 이 고문 일가가 빌딩을 매입한 시점이다. 이 고문이 ‘삼성 2인자’시절 별도의 회사를 세워 ‘딴짓(?)’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 고문 등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빌딩 부지를 매입한 것은 이 고문이 삼성그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다. 이 고문은 땅을 사들인 2006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맡았다.

이 고문 가족들이 엘앤비인베스트먼트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에 참여한데 이어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우연일까. 이 고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고문을 맡은 것은 2008년 7월.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 엘앤비타워가 완공됐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 관리에 철두철미한 삼성그룹은 임직원의 겸직이나 외부 투자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고문의 규정 위반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윤리규정에 따르면 삼성 임직원은 회사 업무와 동일하거나 무관한 별도 개인회사를 설립하거나 투자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 고문의 빌딩과 관련해 자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대부분 임직원의 겸업·투자를 금지하고 있다”며 “지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회사의 기회를 유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회사의 업무에 전념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규범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일선 복귀 무산?]

이 고문은 3년 넘게 이렇다 할 업무를 맡고 있지 않지만 거대한 존재감은 여전하다.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뒤에도 항상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회장이 가는 곳엔 항상 이 고문이 먼저 나타난다.

이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인 만큼 퇴진 후에도 삼성그룹과 이 회장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고문이 연말 쯤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학수 빌딩’논란이 확대될 경우 이 고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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