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수사 관전포인트

2018.06.26 08:24:25 호수 1172호

사상 초유의 사법부 vs 검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법원의 재판 거래와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등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처음으로 검찰이 사법부를 상대로 하는 수사인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 농단 수사를 맡았던 특수부에 배당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관련자들의 PC 하드디스크 실물을 통째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요청 자료에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하드디스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관련자들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함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직접 관련된 자료들 중 수사에 꼭 필요한 자료들을 한정해 제출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드디스크 요청

검찰은 당초 대법원 자체조사를 맡았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대법관)’이 조사를 실시했을 때 발견된 문건들 뿐 아니라 의혹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조사단은 법원행정처 컴퓨터서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진실 규명 작업”이라며 “한정해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하드디스크 자체로 봐야 한다. 관련자들 참관 하에 필요한 자료를 추출하고 불필요한 자료나 개인정보 이런 부분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 있다”며 “추출한 자료만 주게 되면 그 자료들이 언제 생성됐는지, 변동됐는지 하는 부분을 포렌식으로 다 확인해야 하니 (하드디스크)실물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압수수색이 아닌 임의제출 형태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 방식의 선택은 사건에 따라 적합한 최적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사전에 수사 방식을 한정한다든가 배제한다든가 하지는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이어 “수사 방식의 선택 문제는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일 뿐”이라며 “수사기관의 판단에 맡겨진 문제”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관련 자료를 모두 확보해 검토한 뒤 고발인 조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범죄 혐의에 대한 통상적인 수사다. 일반 국민에 대한 수사 방식과 절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판사 개인의 비리가 아닌 전직 대법원장까지 연루된 사법부의 조직적 범죄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의혹을 조사한 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양승태 전 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일부 재판들을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관련 문건들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아 형사처벌을 할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후 형사조치도 고려하겠다고 해 혼선이 빚어졌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 15일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시민단체 등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고발한 20건의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 배당했다가 지난 18일 특수1부에 재배당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국정 농단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주로 맡아온 곳인데, 검찰의 최정예 부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 역시 사안의 중요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최정예’ 특수부 배당
강도 높은 수사 예고

이런 가운데 법원 밖에선 여전히 ‘재판 거래’ 의혹을 규탄하는 집회가 계속됐다. 

한 법학과 교수는 “그 판결이 단지 대법원에 의해 선고됐다는 이유로 정당하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공식 사과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법원이 갑자기 해명자료를 내놨다. 앞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큰 사건을 두고, 최종심 법원이 마치 당사자인 양 수사 초기부터 변호에 나선 모양새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 사건 관련 정리’라는 제목의 ‘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대법원은 참고자료를 통해 ‘같은 내용의 소송 두 건에 대한 원심(2심)의 판결이 엇갈려 이를 통일해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소부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날 참고자료 배포는 KTX 여승무원 사건 판결을 둘러싼 ‘재판 거래’ 의혹의 검찰 수사에 대비해 미리 방어 논리를 내놓은 것으로, 헌법기관이 취할 행동은 아니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KTX 해고 승무원 쪽인 ‘KTX 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21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 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선 대법원을 규탄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대법원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법원행정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달라고 요청한 다음날 곧바로 재판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대법원은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법 농단 의혹을 은폐하고 범죄 혐의자들을 비호하는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역할?

이들은 “이런 상황서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검찰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하더라도 범죄 혐의자들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현재의 법원서 제대로 된 재판이 가능할지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서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된 대법관 및 법원인사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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