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장지선 기자 = 건국대는 그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지난 10여년간 불거진 김경희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은 5대 사학을 꿈꾸던 건국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교육부 감사, 검찰 조사 등 외부 충격이 가해졌지만 의혹은 깨끗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학교 관계자들의 반발만 거세지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서 ‘건국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대표인 유현경 여사를 만났다. 유 여사는 건국대 설립자 상허 유석창 박사의 자녀로, 7남매 중 셋째 딸이다.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과는 시누이-올케 관계다.
유 여사는 김 전 이사장이 건국대 법인에 이사로 들어갔다가 이사장에 오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학교 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3년부터다.
김 전 이사장의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최근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가 언론을 통해 크게 다뤄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돈의 액수는 수천억원 대에 달한다. 감사원의 교육부 감사를 통해 알려진 임대보증금 문제는 건국대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임대보증금 사용 내역,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을 수사하는 과정서 나타난 의혹이 집약돼있기 때문이다.
유 여사는 이에 대해 “2014년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는 과정서 검찰이 축소 수사를 하는 바람에 상황이 이만큼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유 여사와 일문일답.
유석창 박사의 딸…김경희 전 이사장 시누이
대신해 학교 정상화 비대위 대표 맡아
-검찰이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축소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4년 검찰 수사 당시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했다면 여러 의혹이 속 시원하게 해소됐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학교법인계좌를 열람하기는커녕 재판 과정 중에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까지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김 전 이사장은 집행유예로 나왔고, 이사장직에 딸인 유자은 현 이사장을 앉힐 수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은 물러났지만 학교는 여전히 김 전 이사장 손아귀에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학교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제대로 수사를 안 했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건국대 수사를 했던 O 검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검사를 많이 만나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정의로운 분이었다. 김 전 이사장의 추가 비리가 의심된다며 미술품 비자금과 관련해 고발하라고 비대위 측에 조언도 해줬다. 법인계좌를 열람하기 위해 김 전 이사장의 비자금 창구로 의심됐던 화랑 예맥을 고발한 거다.
또 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매번 김 전 이사장의 공판에 나와 공소 유지에 힘썼다. 당시 김 전 이사장 재판 중 공소장 변경(김 전 이사장의 골프 접대 명단을 실명서 비실명으로 변경)이 크게 문제가 됐다. 그때 (공소장 변경을) O 검사가 신청했는데 상당히 난감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분명 O 검사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검찰 윗선서 개입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건국대 수사 과정에선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다 외압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해 말 O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이때 O검사가 나에게 “(법인) 계좌를 추적해 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고 말했다.
또 수사를 지휘했던 C 부장검사도 되게 열심히 했다고 자문 변호사에게 들었다. 자문 변호사는 C 부장검사와 지인인데, 사석에서 C 부장검사가 “아무리 봐도 (김 전 이사장은)구속감 인데 위에서 계속 수사를 더 하라고 그런다” “화가 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그 C 부장검사가 현재 김 전 이사장 골프 접대 리스트에 이름이 있던 안대희 전 대법관(전 건국대 석좌교수)이 근무하는 로펌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점이다. 이 로펌에는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하기 직전 동부지검 차장 검사도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수사팀에선 (건국대 문제가)큰 사건이라고 생각해 수사 의지가 충만했다. 법인계좌를 봐야 한다는 요청이 수차례 윗선으로 올라갔지만 위에서는 더 보충하라는 말만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이면 끝날 수사가 6개월가량 걸렸다.
수사 직전에는 정관계 고위 관계자들이 건국대 석좌교수로 들어왔다. 또 검찰 출신들을 대거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했으며, 국내 5대 로펌이 사건을 수임했다. 이런 것들이 수사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더 꼼꼼히 하라는 취지 아닐까?
▲수사와 재판을 지켜보면서 김 전 이사장의 파워를 실감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 거였다.
이미 검찰에서는 김 전 이사장의 불구속 기소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김 전 이사장 재판에 보조 참가할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서 알았다. 당시 변호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앤장, 광장, 바른, 태평양, 세종 등 주요 로펌을 김 전 이사장이 이미 선임한 상태라 마땅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법무부장관 출신인 K 변호사를 통해 검찰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P 변호사를 어렵게 소개 받았다. P 변호사는 박근혜정부 때 장관급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다. 이분은 당시 동부지검 고위관계자를 잘 안다고 했고, 그 분과 바로 내 옆에서 통화까지 했다.
둘 다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 “이미 끝났는데 관여하지 말라”는 말이 들렸다. 그날 저녁 K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P 변호사가 사건을 맡기가 어렵겠다고 하더라.
이때가 2014년 5~6월경으로 김 전 이사장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이미 끝났다는 게 말이 되나. 실제 동부지검은 김 전 이사장의 개인 비리만 수사하면서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도 집행유예로 끝났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지켜봤다
의문과 의심을 지울 수 없다”
-2014년 사태가 불거졌을 때 유 여사가 이사장 자리를 두고 집안싸움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언론서 내가 이사장 자리에 오르고 싶어 나선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이는 김 전 이사장이 설립자 유가족을 음해할 목적으로 퍼트린 소문에 불과하다.
김 전 이사장 1심 공판 때 증인으로 나간 적이 있다. 이 때 김 전 이사장 측 변호인이 PPT까지 준비해 그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 나에게 ‘(건국대)이사를 하고 싶냐’고 물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앞으로 건국대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교육부서 관선 이사가 와서 학교를 정상화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질문을 끝내버렸다.
김 전 이사장 측은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집안싸움으로 축소하려 했다. 설립자 가족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고발했다고 몰아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2013년 전에는 어땠나. 원래 학교일에 관심이 많았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유석창 박사)는 딸들이 학교에 오는 걸 싫어했다. 딸은 현모양처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학교 운영은 남동생 일윤(여섯째)과 승윤(일곱째)이 했다. 사실 아들만 대접을 받았다.
딸들은 학교와 담을 쌓고 살았다. 일곱째 동생과 올케(김 전 이사장)가 학교 자리 문제로 싸웠을 때 우리 딸들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집안싸움으로 비치는 게 싫어 오히려 더 학교 일에 신경을 끄고 살았다.
-평생 학교랑 담을 쌓았는데, 이제야 나서는 이유는?
▲김 전 이사장이 김진규 전 총장을 건국대로 데려오면서 학교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이때도 김 전 이사장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가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내렸다.
건국대는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는 평생 양복 한 벌, 신발 한 켤레로 가난하게 살았다. 일류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게 아버지의 유지였다. 그런 학교가 망가지는데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학교에 반기를 든 교수들이 잘려나갔고 한 학생은 학교가 나서서 불법적으로 퇴학까지 시켰다. 성명서 쓰는 데 조금 도와줬다고 직원들이 면직당하는데 누가 나서겠나. 자식들이 나서서라도 학교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년 간 교육부, 언론, 수사기관 청와대 등에 수차례 진정서와 호소문을 제출했지만 제대로 된 해명이나 답변을 받은 적이 없다.
-유 여사와 김 전 이사장 사이는 어땠나?
▲여자 형제들과 김 전 이사장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올케-시누이로서 인격적으로 어긋난 행동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오히려 김 전 이사장이 학교 발전에 힘써줘서 고마웠다. 일곱 째 동생이 7년 동안 이사장을 하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일들을 김 전 이사장이 해냈다.
더클래식500, 스타시티 등 현재 건국대를 대표하고 있는 굵직한 사업들은 다 김 전 이사장이 이룬 것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입속의 혀처럼 시누이들한테 잘했다. 늘 식사를 하러 가도 ‘뭐 드시겠어요?’ 묻곤 했다.
가끔 맛있는 거 사주면 자매들은 너무 좋았다. 김 전 이사장이 돈 쓸 때는 잘 썼다. 그런데 우리가 바보였다. 아버지가 지하서 그럴 거다. ‘저렇게 바보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학교가 이 지경이 됐지’라고. 원망 많으실 거다.
-올케가 이사장이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일윤(김 전 이사장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김 전 이사장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우리 형제들에게 잘했다. 또 23년 동안 학교 이사장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 1990년도 초반에 이사로 들어가고 96년도 정도 상무이사가 됐다. 그러다 2001년 노조위원장 등 학교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이사장에 올랐다.
형제들은 김 전 이사장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이사장에 됐을 때도 응원해줬다. 그저 학교가 잘되기만 바랐고, 실제로 김 전 이사장이 숙원사업을 이뤄내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향후 건국대 정상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확실한 재수사밖에 없다. 더 이상 감춰져서는 안 된다. 학교가 완전히 곪아있다. 제대로 된 수사로만 학교를 치료할 수 있다. 현재 학교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돼있다.
김 전 이사장의 횡령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건국대에 대한 평가가 A등급서 B등급으로 강등됐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건국대에 대학구조개혁 조치를 내렸는데, 김 전 이사장 비리로 인한 등급 강등이 원인이다.
“믿고 맡겼는데 망가뜨렸다”
건국대는 이 조치로 2020년까지 입학정원 대비 4%를 감축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 45억원 재정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라임 사업 예산도 30% 삭감됐다. 적립금도 바닥났다. 약 2000억원의 적립금이 김 전 이사장 시절 80~90%를 각종 사업으로 소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건국대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수 있다. 충격파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뒤흔들어서라도 학교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게 설립자 가족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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