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0일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과 사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 해직자 간의 ‘종업원 지위확인’ 법정소송건에 대해 부산고법에 파기 환송했다. 부산고법이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없어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복직을 기대하고 있는 용인기업 해직자들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미포조선의 입장은 여전히 불변인 까닭이다. 싸움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대미포조선 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최종 판결이 난 것도 아닌데 노동계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부산고법은 10월31일 제3차 심리를 진행 이후 오는 12월5일 4차 심리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4차 심리가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가 봐야 하지 않겠냐”고 입장을 표명했다.
고용승계 요구하자 해직
현대미포조선은 법정인 소송을 통해 회사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법적인 소송을 계속 진행한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럴 경우 용인기업 해직자들은 불투명한 미래 앞에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에서 헤어나기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해직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용인기업은 지난 1978년 설립이후 2003년 폐업신고 이전까지 현대미포조선 사내 작업장에서 선박엔진 열교환기와 시 밸브(sea valve), 세이프티 밸브(safety valve) 검사 및 수리 업무 등의 일을 해왔다.
현대미포조선은 1975년 선박 수리를 시작한 이후 2005년 4월까지 수리선 8천40척, 개조선 1백75척 등 모두 8천2백여 척의 실적을 보유했다.
용인기업의 경우 현대미포조선은 용인기업이 모집해 온 근로자에 대해 회사가 요구하는 기증시험을 실시하게 한 후 채용여부를 결정했으며 시험합격자에게는 회사가 직접 지급하는 수당을 지급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용인기업 소속의 근로자들에게 대해 징계를 요구하거나 승진 대상자 명단을 통보하는 등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 승진, 징계에 관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사내 협력업체이지만 현대미포조선의 감독 하에 일을 진행했으며 임금, 수당, 각종 복지 등은 현대미포조선 정직원과 같은 대우를 해줬다.
문제는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남아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서 선박 수리사업 매출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빌미로 고임금의 용인기업 대신 사내에 입주한 다른 하청기업에게 일감을 줬다는 것.
현대미포조선은 용인기업이 지난 2003년 1월31일 폐업을 하기 전까지 2년 6개월 동안 거의 일감을 주지 않고 기본급에 70%에 해당하는 월급을 지급해 왔다는 게 해직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한 해직노동자는 “폐업신고 이전에도 계속 근무를 하기 원한다면 하청업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수차례 회유가 있었지만 그 당시 월급에 반절도 안되는 곳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용주관계에 있던 현대미포조선에게 고용승계를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결국 강제퇴사를 당했다는 것이다.
실제 A씨의 경우 퇴직 당시 19년 넘도록 근무하면서 손에 쥔 퇴직금은 3천여만원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현대미포조선 근로자들의 임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문제는 또 있다. 6년의 시간 동안 법적인 공방이 이어지면서 용인기업 해직자 30명 중 이미 2명은 정년이 58세가 됐고 10명 정도가 55세가 되면서 복직이 된다 하더라도 정년에 걸려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해직노동자들과 관련업계에선 최종 판결이 해직자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난다 하더라도 이들이 회사에 복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100% 확신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은 이에 대해 “노동계와 해직자들의 주장을 너무 믿지는 말아 달라”고 말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자 세계 수리조선 경기가 장기적인 침체에 들어갔고 해운경기도 악화되어 수리물량 자체가 적어지게 되고 조선소들이 가격파괴를 선언하며 예상보다 빠르게 한국을 위협하며 따라왔다는 것.
그래서 현대미포조선은 1996년부터 구체적인 계획 아래 신조선 사업을 활성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수리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으며 수리물량을 못 준 것이 아니라 없어서 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용인기업 해직자들을 만나 사내 다른 하청기업으로 취업을 알선한 사실은 있지만 회유 차원은 아니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부산 고법의 4차 심리 이후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적 소송을 진행할 뜻을 내비췄다.
현대미포조선과 용인기업 해직노동자가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울산에선 그 결과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이 대립구도의 마지막 결론에 대한 관심 탓이다.
“법적소송 끝까지 하겠다”
한편 최근 현대미포조선은 11월3일 실적 공시를 통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9천2백89억원과 1천4백5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66%와 57.27% 증가한 수치며 당기순이익도 1천4백19억원으로 75.7% 늘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한 법적 공방으로 회사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피와 땀으로 고생해 벌어준 돈을 노동자를 해고하고 탄압하는 비용으로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